[안탈리아 인터뷰] ''우리도 피·땀·눈물 입니다''…김길식 감독의 뉴 안산 포인트
입력 : 2020.02.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안탈리아(터키)] 조용운 기자= "사람 일은 모르는 겁니다. 안산이 고향인 만큼 도전할 때라고 봤죠."

줄곧 웃음을 짓던 김길식(42) 안산그리너스 감독의 눈빛이 한 차례 달라졌다. 한 달여 부임 기간을 돌아보며 걱정을 가리던 미소가 멈췄다. '안산은 안 될 것'이라는 지배적인 평가에 "사람 일은 모릅니다. 정말입니다"로 답할 때였다.

김 감독은 임완섭 감독이 떠난 안산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참신한 인물을 찾던 안산은 전남 드래곤즈, 광주FC의 코치를 지내고 지난해까지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를 역임했던 김 감독의 비전을 높이 샀다.

안산은 올해 또 한 번 새 출발한다. 창단 후 최고 성적을 거둔 지난해 영광은 감독 및 주축 선수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져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린다. 터키 안탈리아 전지훈련은 백지가 된 안산에 새로운 색이 입혀지는 시간이다.

그만큼 생소하다. 이탈 자원을 메운 선수 대다수가 20대 초중반이다. 유망주였다가 잠시 시들었거나 프로의 높은 문턱을 실감한 젊은 선수들이 많다. 이들을 끌고가야 할 김 감독 역시 '초짜'다. 프로팀 감독 첫 도전치고 상당한 난이도다.

그래도 택한 이유가 뭘까. 안탈리아 숙소에서 만난 김 감독은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한살이라도 젊을 때 도전하자는 생각이었다"라고 말했다. 포부에 비해 현실은 제한적이다. 알고 왔지만 너무 많이 떠났다. 그럴수록 "선수 핑계를 대면 한도 끝도 없다. 지금 환경에서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각오를 다진다.

물론 쉽지 않다. 외국인 선수라도 대형 영입이 있으면 희망을 걸겠는데 지금은 경쟁팀들의 영입 소십만 접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헛웃음이 나온다. "담배를 피지 않는데 처음으로 흡연 생각이 날 정도"라고 고충을 농담으로 대신한다.

새로운 판을 짜는 만큼 기존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김 감독이 새롭게 만들 안산은 맞더라도 공격하자는 것. 그는 "솔직히 내려선다고 해도 맞지 않겠나. 맞을 바엔 우리도 조금 부딪혀봐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공격을 강조한다. 선수단도 어리니 많이 뛰고 압박할 수 있다는 기조다.

그라운드에 흘려야 할 세 가지로 피·땀·눈물을 꼽았다. "BTS의 피땀눈물을 따라한다기보다 우리도 피땀눈물을 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피의 열정, 땀의 노력, 눈물의 승리를 보일 것"이라며 "감독은 보스가 아니다. 솔선수범하는 리더가 되겠다"라고 말한다. 또 선수 출신의 경험과 이론 중심이 결합된 코칭스태프 구성은 또 다른 편견에 맞서는 대목이라 여러모로 지켜볼 것이 많아진 안산이다.



- 안탈리아에 오면서도 여러 고민이 있었을텐데.

"갑작스럽게 선임돼 선수 파악이 안 된 상태로 전지훈련을 왔다. 선수 파악이 가장 먼저였다. 기존 선수들이 빠져나가서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안산만의 색깔을 만들려고 고민을 많이 했다. 젊고 밝은 팀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우리팀 철학을 '피 땀 눈물'로 정했다. 피의 열정, 땀의 노력, 눈물의 승리가 정의다. 선수들의 연령층이 낮아서 끈끈한 팀을 만들고자 한다."

- 초보 감독임에도 철학이 구체적인데.

"내 철학은 선수 핑계를 대지 않는 것이다. 선수 평가는 하겠지만 주어진 현실, 스쿼드 안에서 최대한 좋은 팀을 만드는 것이 내 역할이다. 선수 핑계를 대면 한도 끝도 없다. 지금 환경에서 만드는 것에 자신감이 있다. 어린 선수들이 우리 철학에 잘 녹아들어 색깔을 보여주면 방향성이 나올 것 같다. 안산 팬들에게 우리 색깔을 보여줄 수 있다."

-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빠른 템포, 공격적인 축구를 좋아한다. 팀 플레이 스타일을 어떻게 해야할지 코칭스태프와 고민이 많았다. 내려서서 카운터 어택으로 갈 것인지가 주제였다. 사실 지금 스쿼드로는 수비적으로 내려도 맞을 수밖에 없다. 내려서도 맞을바엔 앞에서 강하게 압박하고 맞부딪혀보자고 정리했다. 그래서 어제부터 공격적인 부분을 주문했다. 선수들에게 '좋은 경기를 해야하지만 우리 색깔을 내자. 전방압박부터 하자'고 했고 불가리아 팀을 이겼다. 방향이 정해지니 선수들이 잘 따라와준다."

- 아무리 어린 팀이라고 해도 한 시즌 내내 끌고가기 힘든 전술인데.

"맞다.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다. 우리 스쿼드가 얇지만 기용 가능한 선수를 최대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프로라는 무대를 잘 안다. 내 생각만으로 끌고 갈수는 없다. 대신 내가 가진 색깔을 선수들에게 정확하게 입히는 것이 중요하다."

- 구단이 시간을 충분히 줄지 의문이다.

"지난해 베스트11에서 7~8명이 나갔다. 내가 와서도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다. 이미 짜여진 상황이니 시에서도 '올해 만들고 내년에 색을 입히자'고 했다. 그 말도 부담이었다. 프로는 결과다. 내가 시즌을 보내면서 인내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색깔만큼은 내고 싶다."

-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지금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왜 선생님들이 고민을 많이 하셨는지 이제 느끼고 있다."

- 그럴수록 코칭스태프와 호흡이 중요할텐데.

"경남FC 설기현 감독이 다른 인터뷰에서 '코칭스태프를 구성할 때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더라. 내가 할 이야기인데 설 감독이 먼저 했다. 안그래도 서로 통화하는 사이라 이 기사를 보면 카피했다고 전화올까 걱정이다."

- 어떤 상황이길래 아쉬워하나.

"우리 코칭스태프도 다 사연이 있다. 박성배 수석코치님은 나보다 선배다. 지난해 수원삼성에서 코치로 지냈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나와서 유럽 유학을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내게는 정말 필요한 분이라 친분을 앞세워 1년만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김태수 골키퍼 코치님도 프로팀 경험이 있어 모시고 왔다.

김용래 코치님과 전병선 코치님은 한국 축구 환경에서 특이한 분들이다. 김용래 코치님은 고등학교 때까지 축구를 하다가 뒤늦게 공부해서 호남대 축구학과 교수까지 하신 분이다. 프로 현장 코치 중에 이런 경력은 찾기 어렵다. 나도 프로 감독이 처음이라 우려가 컸지만 그분이 가진 이론적인 지식을 인정했다. 전병선 코치님도 선수 경험이 대단하지 않지만 지도자 생활을 오래하셨다. 김남수 피지컬 코치님 역시 현장 경험 없이 외국대학 출신이다. 나도 프로 감독이 처음이라 '이래도 될까' 생각도 했지만 편견을 한번 깨보자고 결심했다. 프로팀 코칭스태프가 꼭 선수 출신이어야 하는건 아니라고 봤다. 지금 필요한 부분이라 결심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나.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를 하면서 전국의 많은 유소년 지도자를 봤다. 정말 좋은 초등학교, 중학교 감독들이 있는데 선수 출신이 아니어서 프로팀에 못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편견을 깨보자고 했다."

- 올해 K리그2는 설기현 감독 외에도 감독들 면면이 화려한데.

"설기현 감독과 축구 얘기는 깊게 하지 않는다. 서로 감춰야 하니까. 그래도 설 감독이 성균관대를 이끌 때부터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했다. 경남에서도 충분히 잘할 것으로 본다. 그외에도 대단한 감독님들을 상대할텐데 배우는 자세로 나서겠다. 물론 열정만 가지고 다가가지 않겠다. 세밀하게 분석해서 도전하겠다. 절실하다. 나 역시 물러설 곳도 없다."

- 첫 감독인데 절실하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처음이라도 프로는 결과다. 이곳에 오니 급한 마음이 생겼다. 쫓기는 느낌도 받는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많은 걸 알려주려고 한다. 체계적인 부분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나뿐만 아니다. 선수들도 절실하다. 새로 합류한 선수들과 미팅을 해보니 마지막이라는 자세가 상당했다. 충분히 반등할 나이의 선수들이라 믿음이 생겼다."

-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있는지.

"선수 평가는 조심스럽고 특정 한명을 말하기에도 좀 그렇다. 모두 좋은 선수고 열심히 한다. 전 선수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



-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이 확실히 젊은 것 같다.

"감독은 보스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강압적으로 한다고 선수들이 따르지 않는다. 선수들과 호흡하려고 한다. 나부터 솔선수범해서 훈련장에 먼저 나가려고 한다. 선수들과 매일 함께 뛰고 싶을 정도다. 소통이 잘 되면 선수들이 나를 신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현역 때 뛰었던 팀들이 공교롭게 K리그2에 다 있다. 꼭 이기고 싶은 팀이 있는지.

"어쩌다보니 다 내려왔더라. 꼭 이기고 싶은 팀은 없다. 전부 부딪혀서 도전해보고 싶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목표라고 말했는데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모두 안 된다고 말하겠지만 진짜 모르는 일이다. 가능성이 1%든, 10%든 우리의 목표가 있는 만큼 앞으로 가면 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안 된다는 분위기는 결코 옳지 않다."

- 끝으로 안산에서 달성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편견을 깨고 싶다. 한 시즌 끌고 가는데 있어 코칭스태프는 정말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선생님들로 구성돼 다행이다. 진짜 드문 케이스라 코치님들도 절실하다. 나, 선수, 스태프까지 모두 간절해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다."

사진=안산그리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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