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인터뷰②] 신태용 ''박항서 감독님처럼...동남아 '축구한류' 잇는다''
입력 : 2020.02.0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치앙마이(태국)] 서재원 기자= 동남아시아 축구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인도네시아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신태용 감독이 또 다른 축구 한류를 꿈꾸고 있다.

2018년 6월 27일. 독일전은 한국 축구를 넘어 전 세계 축구사에서도 길이 기억될 경기다. 2연패를 당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린 한국이 강력한 우승후보 독일을 2-0으로 격파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비록 러시아월드컵은 결과적으로 실패였지만, 독일전 만큼은 온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토너먼트 진출보다 더 큰 감동이었을 수도 있었다.

선수들은 '독일전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았을지 몰라도, 신 감독은 아니었다. 스스로 뒤로 물러났다. 더 이상 한국 축구와 축구계에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신 감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까지 기회주려고도 했지만,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내려왔다.

사실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했던 길이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신 감독에게 감독직 제안이 왔을 때 모두가 만류했다. 월드컵을 1년 앞둔 상황이었기에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아니면 또 안 된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 감독은 굳이 어려운 길을 갔고, 그 결과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그렇게 1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신 감독은 또 모두가 아니라고 하는 길을 가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 클럽 팀의 제안도 있었지만, 그가 향한 곳은 동남아에서도 축구 수준이 낮다고 평가받는 인도네시아였다.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신 감독은 누군가가 정해놓은 틀과 생각, 한계를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왜 골키퍼 코치는 수석코치가 되면 안 되는가. 골키퍼 코치들이 보는 눈이 더 깊을 수도 있다. 맨 뒤에서 경기를 지켜보기 때문이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도 골키퍼 출신이다. 세뇰 귀네슈 감독도 마찬가지다. 왜 한국에선 안 된다고 생각하나.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골키퍼 출신 김해운 코치를 수석코치로 선임한 이유에 대한 답변을 통해, 그가 가고 있는 길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인도네시아 A대표팀은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전패했다. 사실상 탈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남은 대진 상대가 태국과 베트남 등 동남아 이웃국가들이다.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한일전을 계속 치르는 상황이다. 스트레스가 클 것 같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 팬들은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협회 회장님은 부담을 많이 안주고 있다. 연연하지 말고 U-20 월드컵에 집중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저도 대표팀 감독을 해보니, 개인적인 생각은 국가대표가 잘돼야 감독도 힘이 생기고, 밑에 선수들도 성장할 수 있는 탄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더 잘 하기 위해 준비하고 고민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팬들이 광적이기로 유명하다. 최근 말레이시아와 경기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신태용: 부담이 많이 된다. 지금은 대회나 경기를 안 치렀기 때문에 저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좋다. 경기 결과에 따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 걱정이 되기도 하다.

- U-19팀 선수들은 잘 따라온다고 했지만, A대표팀 선수들은 또 다를 수도 있다. 이미 프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새로운 것을 입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신태용: 그래서 머리가 많이 아프다. 지금 선수들은 하라는 대로 다 따라한다. 오늘 경기(경희대전)도 그렇지만, 오전에 가르친 부분을 금방 따라하고 있다. 하지만 A대표팀은 다를 거다. 코치진과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신태용: 감독 계약을 하면서 협회와 한 이야기가 있다. 세대교체, 물갈이를 확실히 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미 5패를 당했다. 지금이 세대교체의 적기라고 했다. 협회장부터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A대표팀을 소집할 때는 기존 선수들이 대거 교체될 거다.

- 한국에서는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님과 맞대결을 기대하고 있다. 태국의 니시노 아키라 감독과 대결도 현지에서 주목하고 있다.

신태용: 사실 고민이 많이 된다. 지금은 U-19팀을 훈련시키고 있지만, 밤에는 A대표팀 영상을 보면서 분석을 하고 있다. 이번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가자마자 A대표팀 선수들을 선발해야 한다. 옆에 있는 로컬 코치들에게도 많은 조문을 구하고 있다.

신태용: 이번에 A대표팀을 일주일 정도 소집을 해서 34명 또는 35명 선수들을 파악할 예정이다. 3월 소집 때는 25~6명 정도로 추릴 거다. 앞으로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과 경기가 남아있는데, 솔직히 지금은 4대6에서 3대7까지 밀린다고 본다. 승점을 1점도 못 챙긴 상황인데, 인도네시아 축구팬들에게 '축구가 이런 것이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 베트남과 태국 둘 다 최종예선을 노리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고춧가루를 뿌릴 수 있을까.

신태용: 아마도 우리 팀에게 발목 잡히는 팀은 최종예선에 못나가게 될 것 같다. 두 팀 모두 지금까지 인도네시아는 이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텐데, 갑자기 감독이 바뀌면서 경계도 할 거라 생각한다. 아마 두 팀 모두 인도네시아를 경계해야 할 거다.



- 박항서 감독도 만만치 않게 준비해 나올 것 같다.

신태용: 축구에서는 서로 경쟁 상대다. 열심히 싸워야 한다. 저 또한 박항서 감독님을 선생님으로서 존경한다. 예우를 지키지만 경기장 안에서는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 박항서 감독의 성공이 해외로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나.

신태용: 박항서 감독님이 성공해서 그렇다기보다는, A대표팀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있었다. 하이레벨 팀을 하는 것보다 선수들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선호했다. 오늘 그런 부분을 더 느꼈다. 우리 팀이 경희대, 성남, 부산, 성남, 경희대와 경기를 차례로 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과 고등학생이 축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서야할지도 몰랐다. 그런데 선수들의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볼을 쫓아다니게 됐다. 위치도 잡을 줄 알아간다. 하나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니까 감독으로서 행복하다. 앞으로 성적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선수들이 커가는 모습과 과정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 계약기간이 4년이다. 2024년이 되면 인도네시아가 어떤 팀으로 성장해 있을지 기대하는가.

신태용: 제 꿈은 인도네시아팀이 언젠가 월드컵 최종예선에 가는 것이다. 또 이 또래(U-19팀) 선수들을 잘 가르쳐서, 프랑스 올림픽 때도 마지막 예선까지 올리고 싶다. 그렇게 이슈를 만들고 싶다. 우리가 본선에 나갈 수 있거나 우승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박항서 감독님처럼 이슈를 만들고 싶다. 인프라가 열악하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아직은 부족하다. 부족하지만, 한국 코치들과 하나씩 뜯어고치면 잠재력은 분명 있을 것 같다.

- 동남아 축구 경기가 한국에도 중계되고 있다. 관련 기사도 계속해서 쏟아진다. 한국 팬들에게도 끊임없이 소식이 전해질 것 같다.

신태용: 이전까지 동남아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우리 모두 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동남아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나라 축구 수준은 동남아보다 높은데 말이다. 박항서 감독님처럼 축구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열심히 해야 한다.

신태용: 직접 와서 보니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 K-POP의 힘이다. K-스포츠 부분에서는 제가 일조하고 싶다.

- 인도네시아에서 일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어떤 모습이고 싶나.

신태용: 금의환향 했으면 좋겠지만, 또 못할 수도 있다.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저는 그런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지금은 마음을 많이 내려놨다. 얽매여서 잡으려고 하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만들고 싶다.

- 그러면 인도네시아 이후에 대한 계획도 상황에 따라 달라질 거라고 보는가.

신태용: 그렇다. 상황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제가 성공을 하면 더 좋은 곳을 갈 수 있는 것이고, 성공하지 못하면 안 좋은 곳으로 갈 거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이기 때문에 먼 미래는 걱정하지 않는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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