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염기훈 ''막내와 19살 차이...진철이형 이제야 이해되네요''
입력 : 2021.02.1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거제] 서재원 기자= 염기훈(38, 수원삼성)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은퇴를 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염기훈은 수원 최고참이다. 이동국(42, 前 전북현대)이 은퇴한 후 K리그 내에서도 이제 염기훈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가 없다.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선수도 염기훈 외에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슬프지만 끝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언제 은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뛰고 또 뛰어왔기 때문이다.

벌써 프로 16년차다. 2006년 전북에 입단하며 프로 무대를 밟았고, 울산현대를 거쳐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2010년 수원에 합류했으니, 푸른 피로만 11년을 살았다. 수원 클럽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선수이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하나있다. 바로 리그 우승. 신인상(2006)을 시작으로 FA컵 우승(2010, 2016, 2019) 리그 베스트11(2011, 2015, 2017), 리그 도움왕(2013, 2015, 2016), FA컵 득점왕(2019), FA컵 MVP(2010, 2016) 등 수많은 트로피를 수상했지만, 커리어에서 리그 우승 기록은 전무하다.

염기훈에게 K리그 우승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현실적인 수원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냉정히 말해 수원은 우승후보가 아니다. 염기훈도 아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도 우승을 위해 준비 중이다. 수원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평생의 후회가 될 테다. 지난 8일 경남 거제 수원의 2차 전지훈련지에서 만나 염기훈은 "2010년 수원에 처음 와서부터 매일 이야기한 부분이다. 팬분들이 바라는 만큼 저도 간절하다. 올해가 힘들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올해만큼 가능성이 높은 때도 없다고 본다. 어느 때보다 선수단의 자신감이 넘친다. 지금처럼 하나 됨을 보여준다면 올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승이라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올해 꼭 해보고 싶다"라고 이를 악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수원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염기훈도 "그런 평가는 오래된 것 같다. 시즌 전 연맹에서 개최하는 미디어데이 때도 항상 수원을 두고 파이널A와 B를 왔다 갔다 할 거라는 평가를 들었다. 솔직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축구는 모르는 거다. 다른 팀들이 작년처럼 쉽게 보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 이전까지 이기고 있다가 비기거나, 비기고 있다가 지는 경기가 많았다. 그런 경기들이 줄어들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우승할 수 있는 타이밍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꿔보겠다"라고 다짐했다.

염기훈은 우승을 하면 속 시원하게 은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동국의 은퇴식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염기훈은 "동국이형이 은퇴했을 때 찡했다. 동국이형은 대표팀에서만 함께했는데도 제가 마음이 다 아팠다.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일찍 은퇴했다. 저도 얼마 안 남은 것 같아서도 슬펐다. 지금도 은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다"라며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우승컵을 안고 은퇴를 했는데 솔직히 부러운 게 있었다. 최고에 있을 때 은퇴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동국이형은 전북이 최고였을 때 은퇴를 했다. 부러웠다. 저도 수원의 최고를 찍었을 때 은퇴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 저도 우승을 하면 시원하게 은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80-80 클럽은 꼭 달성하고 은퇴를 할 거다. 4골 남았다. 올해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팀 분위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페널티킥도 욕심낼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단에 은퇴에 대해 요청한 게 있다. 은퇴는 내가 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몸 상태는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기 때문이다. 힘든데 억지로 끌고만 가지는 않을 것이다. 올해도 뛰면서 안 되겠다 싶으면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도 있다. 은퇴는 제가 정하고 싶다. 그래서 동계 훈련을 더 열심히 했다. 감독님은 알아서 조절하라고 하시지만,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문제 없다. 체력 훈련도 한 번도 안 빠지고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했다. 나이 많다고 빠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라고 은퇴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밝혔다.



수원은 박건하 감독 체제에서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 시즌 말부터 보면 이전과 완전히 다른 팀이다. 박 감독은 부임 초기부터 '수원 정신'을 강조했는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 딱 그런 모습을 보였다. 포기하지 않는 모습,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끈기 등으로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광저우헝다와 빗셀고베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 결과 16강에서도 J리그 챔피언 요코하마F.마리노스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비록 빗셀고베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수원 팬들은 물론 아시아 축구 팬 모두에게 박수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염기훈은 A급 지도자 강습회 일정상 ACL을 함께하지 못했다.

수원은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염기훈팀'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의 수원은 염기훈 없이도 사는 법을 익혔다. 이번 ACL을 통해 확인된 부분이다. 염기훈 입장에선 씁쓸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는 "ACL에서 팀의 활약을 보면서 기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이 너무 열심히 뛰다보니, 내가 맞춰서 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는 순간 그런 위압감이 들었다. 걱정도 됐다. 하지만 동계 훈련을 해보니, 걱정했던 것보다 따라 갈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서 긍정적이다"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염기훈도 흘러간 세월의 무게를 안다. 수원은 더 이상 염기훈팀이 아니고, 그도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수원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2002년생 정상빈(19)인데, 19살 아래 선수도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 염기훈은 "처음 인사를 나누는데, 형이라고 할지 삼촌이라고 부를지 물었다. 다행히 형이라고 한다고 했다. 나이차 때문에 (김)민우가 삼촌이라고 맨날 놀린다"라며 "경쟁 상대이기도 하지만, 어린 선수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기대가 너무 된다. 지도자 교육을 받아보니, 어린 선수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것 같다.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도 됐다. 이제는 오히려 주변에서 더 걱정을 하신다. 지난해 인천전에선 1분 남기고 교체돼 들어갔다. 그때 연락을 엄청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오히려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개인보다 팀을 더 생각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오히려 조금이라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염기훈도 최대한 컨디션을 조절할 방법을 찾고 있다. 그래야 목표했던 40살까지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다. 그는 "솔직히 1경기 뛰고 나면 너무 힘들다. 2006년에 (최)진철이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당시 진철이형이 열 몇 살이 많았다. 진철이형도 1경기를 뛰고 나면 회복 훈련할 때 엄청 힘들어했다. 개인적으로 '왜 저렇게 힘들어하시지'라고 생각했다. 이제 제가 진철이형이 된 느낌이다. 그 때 진철이 형은 면도도 안하고 나왔다. 저는 최대한 안 힘든 척을 하기 위해 세수도 하고 면도도 한다. 나이가 드니 확실한 점은 회복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다. 다른 선수들은 1시간에 회복할 때, 저는 3~4시간이 걸린다"라며 "식사 후에 (김)민우 등 선수들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요즘엔 다 거절한다. 그 시간에 저는 쉬어야 한다. 그때 휴식을 취해야 다른 선수들과 맞출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선수로서 염기훈은 내리막길에 있지만, 지도자로서 염기훈은 출발선에 있다. 그는 은퇴 후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다. 정확히 말해 좋은 수원의 감독을 꿈꾼다. 염기훈은 "은퇴 후에도 수원에서 지도자를 하고 싶다. 수원에서 코치부터 해보고 싶다. (수원 레전드 출신 지도자들이 대부분 박수 받지 못한 채 팀을 떠났다.) 그래도 하고 싶다. 은퇴 후 최종 목표가 수원 감독이다. 제가 수원에 온 뒤 2010년도 때 차범근 감독님이 사퇴를 하셨다. 윤성효 감독님, 서정원 감독님 모구 다 그랬다. (냉혹한 현실을) 다 알지만 수원에서 꼭 해보고 싶다. 이유는 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하고 싶다. 처음부터 해보고 싶고, 감독도 해보고 싶다. 팬들의 질타를 받고 나가더라도, 이곳에서 첫 번째로 해보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염기훈은 역시나 수원밖에 모르는 바보였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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