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포커스] '토종 득점왕' 정조국-주민규 만든 남기일 감독, 그가 증명한 '믿음의 디테일'
입력 : 2021.12.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제주] 이경헌 기자= 제주유나이티드(이하 제주)의 간판공격수 주민규는 2021시즌 K리그1 최고의 해결사였다. 올 시즌 34경기에 출전해 22골 1도움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주민규의 득점왕 등극은 의미가 크다. 2016년 정조국(당시 광주FC) 이후 5년 만에 K리그1 '토종 득점왕'이 탄생했다. 아울러 정조국의 K리그1 국내 선수최다골 기록(20골)을 갈아치웠다. 11월 27일 수원FC전에서는 K리그 통산 12번째 100호골 고지에 오르는 기염까지 토했다. 특히 올해 제주 코치로 부임한 정조국은 대신고 후배인 주민규의 득점왕 등극을 위해 아낌없는 조언을 건내며 끈끈한 '브로맨스'를 선보였다. 그리고 이들의 성공의 발자취에는 한 가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바로 남기일 감독이다.

남기일 감독하면 타이트한 경기력으로 수비 축구를 구사한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알고보면 남기일 감독만큼 공격에 진심인 지도자가 없다. '토종 득점왕'을 2명이나 배출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과감한 선택과 집중이 돋보인다. 2015시즌 FC서울에서 11경기 출전에 1골에 그쳤던 정조국을 영입한 남기일 감독은 당시 활동량과 수비가담이라는 흐릿한 단점보다 뚜렷한 장점인 페널티박스 안 결정력을 주목했다. 당시 2016시즌 개막전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남기일 감독은 "우리 팀에서 득점왕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정조국에게 많은 골을 기대해도 좋다”라며 정조국의 능력에 믿음을 보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말이 현실이 되리라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광주의 스쿼드는 탄탄하지 못했다. 이에 남기일 감독이 선택한 최선책은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파이널 서드 지역 압박의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공격 전환 시 페널티박스 안에 자리한 정조국의 발끝에 패스의 줄기를 집중시켰다. 당시를 회상한 정조국은 "남기일 감독님이 내 장점을 믿어줬기에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다. 내가 빠른 선수였나. 그렇다고 기술이 좋았나. 헤더 능력도 뛰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문전 앞에서 슈팅은 언제나 자신감이 있었다. 단점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못 따라올 정도로 장점을 이끌어내준 남기일 감독님의 세심한 배려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서 나도 (주)민규가 자신의 장점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라고 말했다.

남기일 감독은 "정조국은 당시 서울을 떠나 이름값도 모두 버리고 광주에 왔다. 하지만 아무리 스타라고 해도 무조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조국은 진짜 간절함을 품고 매 경기 뛰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조국은 단점도 많은 선수였다. 하지만 골 냄새를 맡는 능력은 여전히 최고였다. 어떤 분야든지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특별한 장점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극대화해야 한다. 당시 정조국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나 역시 정조국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득점에 관해서는 부담은 주지 않았지만 책임감은 줬다. 다 넣지 않아도 좋으니, 팀의 득점 과정과 흐름에 관여해달라고 했다. 그 책임감이 자신감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득점왕이라는 결실까지 맺지 않았나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축구선수는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는다"라고 운을 뗀 남기일 감독은 "선수들은 자신을 믿어주고 확신을 주는 감독들을 존경하며 따르게 된다. 전술 및 역량 발전을 위한 조언뿐만 아니라 자신을 세심하게 챙기고 따뜻하게 배려해주는 것까지 바란다. 결국은 변화에 앞서 선수의 심리를 자극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뻔한 조언은 아니다. 남기일 감독은 2009년 경희대 스포츠 경영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 '축구선수 1호 박사'다. 논문 주제는 '프로축구 지도자의 리더십 유형에 따른 조직유효성 결정 요인에 관한 연구'. 특히 그가 연구했던 '변혁적 리더십'은 선수들의 가치 체계와 신념을 변화시켜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힘으로 2021시즌 제주 선수단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득점왕을 차지한 주민규가 대표적이다. 주민규는 지난해 K리그1 준우승팀 울산현대에서 떠나 제주 유니폼을 입었다. 주민규는 로테이션 플레이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경기 출전을 위해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선택했다. 지난 시즌 주민규가 남긴 발자취는 18경기 출전에 8골 2도움. 예상치 못한 티눈 제거 수술 여파와 근육 부상 공백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고 결국 기대에 못미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자칫 흔들릴 뻔했던 주민규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바로 남기일 감독의 굳건한 믿음이었다. 상태가 좋지 않은데 억지로 컨디션을 끌어올리려 하면 할수록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남기일 감독은 주민규가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줬다.

주민규는 "제주 이적 후 부상과 부침도 있었지만 남기일 감독님과 코칭스태프가 묵묵히 기다려줬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모든 걸 쏟아부을 수 있었다. 남기일 감독님은 경기장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의 부담감을 대변하고, 선수 개개인이 더 높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준다.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들을 정말 잘 케어해주신다"라고 말했다. 이에 남기일 감독은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다. 항상 자기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훈련까지 게을리하지 않는다. 시즌 도중에는 주장 완장까지 차면서 믿음에 더 보답하려고 노력했다. 주민규를 칭찬할 수밖에 없다. 선수들이 더 뭉치는 힘이 됐다. 주민규를 통해서 그 힘이 나온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이러한 성실함에 남기일 감독의 디테일까지 더해지면서 주민규는 올해 K리그1 최고의 피니셔로 등극했다. 남기일 감독은 주민규의 강력한 슈팅력을 견제하는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측면 크로스로 새로운 득점 루트를 그리는 패턴을 준비했다. 그 결과 주민규는 22골 중 7골(32%)을 헤더로 만들었다. 주민규의 득점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제주의 화력은 더욱 뜨거워졌다. 주민규는 "남기일 감독님이 스트라이커를 살리는 전술을 잘 구사하신다. 정조국 코치님도 남기일 감독의 지도 아래 득점왕에 올랐다. 남기일 감독님이 상대 골키퍼가 가장 예측하기 힘든 게 내 헤딩 능력이라고 했는데 정말 주효했다. 신뢰를 바탕으로 디테일한 조언까지 더해지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고 득점왕이라는 해피엔딩이 됐다."라고 말했다.

남기일 감독은 주민규가 다음 시즌에도 득점왕에 오르길 바라고 있다. K리그 역사상 토종 공격수가 2년 연속 득점왕에 오른 사례는 없다. 다음 시즌 목표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위해서라도 주민규의 활약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남기일 감독과 인터뷰를 위해 마주친 순간에도 코칭 스태프와 직접 준비한 전술판과 노트북을 가지고 새로운 전술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남기일 감독의 뜨거운 축구 열정은 선수단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남기일 감독은 "팀이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선과 통찰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역시 도전 앞에 한계는 없다. 믿음의 디테일은 여전히 발전의 초석이 되고 있었다. 어쩌면 주민규가 말한 해피엔딩(HAPPY ENDING)은 해피앤딩(HAPPY ANDING)일지도 모른다.

사진=제주유나이티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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