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SS 트위터 페이스북

Home>뉴스>칼럼

[김덕기의 프로축구 10950 ⑤]다국적군 무대가 된 한국 프로축구

기사입력 : 2013.01.30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1985년 득점왕 도움왕을 휩쓸며 성공적인 용병의 역사를 쓴 피아퐁.
1985년 득점왕 도움왕을 휩쓸며 성공적인 용병의 역사를 쓴 피아퐁.

[스포탈코리아]“오, 노골.” 90‘ 프로축구 마지막 경기가 열렸던 1990년 11월3일 동대문운동장. 늦가을 찬바람이 돌던 관중석에서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꼴찌’의 불명예를 씻으려는 일화가 1-0의 살엄음판 같은 리드를 지키던 후반 포철 이원철의 25m 중거리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일화 수비수 임종헌이 걷어냈으나 부심이 골 사인을 주심에게 보냈다. 그러자 파란 눈의 ‘대머리 GK’ 마르셀이 땅에 즐을 그어가며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는 모습이 한편의 코미디를 방불케 한 것이다.

프로축구 경기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파란눈, 노랑머리를 휘날리며 뛰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본의 아닌 실수로 관중들의 웃음을 사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라 팀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인 선수가 국내 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프로리그가 출범한 1983년이었다. 프로축구 시대를 여는 슈퍼리그에 아마추어 팀으로 참가한 포철이 원료 공급사인 브라질의 CVRD사와의 유대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체결한 스포츠 교류협정에 따라 2명의 브라질 선수를 임대해 온 것이 그 효시다.

포철과 CVRD는 모두 축구팀을 보유,양사 선수들을 교류시킨다는 협약을 체결하고 먼자 포철이 미드필더인 세자르 루이스 코코와 스트라이커 호세 알베르토 알베스를 받아 들였다.
포철의 선수단 업무를 맡은 박강훈은 “세르지오와 호세의 영입은 전력 향상 차원이 아니라 양국 양사의 순수한 우호증진을 위한 것이었다.”고 외국인 선수 영입배경을 설명했다.

외국인 선수 1호로 기록된 세르지오와 호세는 5월31일 김포국제공항에 도착, 한달여 동안 포철선수들과 호흡을 맞춘 뒤 6월26일 국민은행과의 전주 경기에 교체멤버로 출전, 국내 프로리그에 첫 선을 보였다.

세르지오와 호세는 포철로부터 주택과 차량, 100만 원 정도의 생활비를 지급받았고 기본 봉급은 브라질 CVRD사로부터 받았다.

세르지오는 1983년 시즌 단 2게임에 출전했고 5게임에 출전한 호세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6개월만에 본국으로 돌아 갔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호샤(브라질 포철), 피아퐁(태국 럭키금성), 렌스베르겐(네덜란드 현대) 같은 뛰어나 외국 선수가 국내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1984년 허정무의 추천으로 현대에 입단한 장신 렌스베르겐은 그해 도움왕에 올랐고 ‘태국산 코브라’라는 별명을 가진 피아퐁은 1985년 득점왕과 도움왕을 휩쓸며 럭키금성 우승에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다.

1987년부터는 ‘동구 용병’ 까지 가세,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에서 온 외국인 선수들이 유공 럭키금서 포철 일화에서 활약했다


김덕기 (스포탈코리아 대표)

Today 메인 뉴스
  • print
  • list

 

이슈! 있슈?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