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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의 풋볼스키] RPL 탐구생활 <3>: 제니트는 어떻게 강팀이 됐나?(중)

기사입력 : 2013.08.02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 ‘러시아 미녀’, ‘보드카’. 이들은 러시아를 수식하는 대표 키워드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것이 ‘러시아 축구’다. 최근 유수의 해외 축구 언론을 통해 러시아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출몰하지만 우리는 정작 러시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스포츠조선’이 준비했다. 매주 금요일 ‘풋볼스키’라는 이름으로 러시아의 최신 이슈와 소식을 독자에게 전한다.

현대 축구에서 투자는 필수다. 뛰어난 선수를 영입하고, 마케팅 차원에서 투자하는 자금은 분명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에 입각한 클럽 운영 방침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팬들의 적극적인 응원, 기억에 남을 만한 역사적인 경기의 탄생 등등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어울려져야만 강팀이 될 수 있다. 돈이 강팀의 충분조건이 될지는 몰라도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제니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제니트는 거대 스폰서인 ‘가즈프롬’이라는 강팀의 충분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러 방면에서 강팀으로 변모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들을 겪고 있다. 아직은 레알 마드리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제니트가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 위해 거쳐 왔던 산물들을 한번쯤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이래나 저래나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누구보다 잘나가는 제니트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니트는 어떻게 강팀이 됐나(중) 편에서는 강팀의 조건인 구단의 투자와, 팬들의 열정에 대해서 조명한다.

‘투자의 왕’ 가즈프롬, 따라올 수 있으면 따라 와봐

제니트의 자금상황이 좋아진 것은 그리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제니트는 ‘2005’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2005년 이전까지 제니트의 자금줄을 상뜨 뻬제르부르크의 지역 은행가인 블라디미르 코건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코건이 축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제니트의 구단주 역할을 함으로써 정치계에 입문하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3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코건은 자신이 목적이 성사되자 구단주의 자리를 내놓겠다고 공표할 정도였다.

구단주가 공석이 될 상황에 놓이자 러시아 언론들은 제니트가 위기에 처했다며 일제히 보도해댔지만, 결과론적으로 보면 이는 위기가 아니라 제니트의 또 다른 기회였다. 코건의 뒤를 이어 받은 대상이 러시아 굴지의 거대 기업 가즈프롬이기 때문이다.

가즈프롬은 러시아의 공룡기업이다. 원래부터 그 덩치는 컸으나 2005년 가즈프롬이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석유기업 시프네브프(2012년 연매출 450억 달러, 한화 50조원)를 인수합병하며 더 커졌다. 자회사의 수도 셀 수 없이 많은데, 가즈프롬은 핵심 분야인 가스, 석유 사업 뿐 아니라 가즈프롬 뱅크(은행), 가즈프롬 AVIA(항공사), 가즈프롬 NTV(방송사) 등등 금융, 언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문어발식 사업 전개를 펼치고 있다. 얼마나 그 범위가 큰지 한때 가즈프롬의 연 매출은 러시아 GDP(국내총생산)의 10%를 차지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물론 그런 가즈프롬에게도 위기는 있다. 지난 2010년부터의 모습이 딱 그렇다. 현재 세계 가스 시장은 미국이 주도하는 셰일 가스 혁명에 놓여있다.(셰일 가스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가스로, 풍부한 매장량과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 및 가스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에 전 세계 가스기업은 기존의 생산방식을 탈피, 사업 전략을 급작스럽게 바꿔가고 있다. 제 아무리 잘 나가는 가즈프롬이라도 이와 같은 변화의 바람에 타격이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니트는 가즈프롬의 투자비용이 적어질까 걱정했을 게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가즈프롬이 다른 건 몰라도 축구판에 투자하는 비용은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즈프롬은 제니트를 러시아 프리미어리그(RRL)의 대표 클럽, 더 나아가 유럽의 빅클럽으로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타 RPL 클럽들이 시늉도 낼 수 없는 금액을 투자, 선수 영입 및 마케팅 강화 활동을 펼치는 제니트의 행보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금액은 아래 표 참조)



가즈프롬의 투자는 비단 제니트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이미 유럽무대로 향하고 있었는데, 그 흔적들은 유럽 구석 구석에 산재돼 있다. 2006년부터는 독일 분데스리가 살케 04에 연 2500만 파운드(한화 430억원)를 지원했고, 2010년에는 세리비아 리그 레드스타 벨그라드의 스폰서를 맡기 시작했다. 그 뿐만 아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 리그 공식 스폰서에 이름을 올렸다. 가즈프롬의 아성이 축구판에서도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제니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즐겁다. 가즈프롬이 유럽 축구 무대에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마케팅 측면에 분명 긍정적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즈프롬의 알렉세이 밀러 회장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밀러 회장은 지난 2011년 자신의 자회사인 가즈프롬 NTV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가즈프롬은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축구판에서 투자의 케파를 늘릴 것이다. 회사의 마케팅 효과도 분명 있겠지만, 제니트를 홍보하는 데도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기대가 매우 크다”

봉을 제대로 잡은 제니트다. 돈으로 강팀이 될 수는 없다지만, 초석은 만들 수 있나보다. 제니트는 가즈프롬의 후광 효과를 받으며 2007년, 2010년 RPL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 두 번의 우승컵이 90여년의 구단 역사에서 대부분을 차지한 것이니, 가즈프롬의 투자가 제니트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총 3회 리그 우승. 1984 소비에트 톱 리그 우승)


제니트가 열성팬에게 고급 자동차를 선물한 사연
시쳇말로 ‘웃픈(웃기고도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때는 2006년 9월.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순위 경쟁이 한창일 때, 제니트의 열혈 팬인 예브게니 스테파노프, 알렉산드르 자라이스키, 베로니카 다비도바는 제니트의 원정 경기 응원에 참가하기 위해 짐을 싼다.

이 세 친구의 여정은 시작부터 험난함을 예고했다. 제니트의 원정 상대가 루치 에네르기야 블라디보스톡(현재 2부 리그)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팬심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원정길이다. 제니트의 연고지는 러시아 서쪽 끝에 위치한 상뜨 뻬쩨르부르크인데 반해 루치 에네르기야는 러시아 동쪽 끝에 있는 블라디보스톡에 자리잡고 있다.

감이 안 잡히는 독자를 위해 거리를 수치적으로 설명해보겠다. 상뜨 뻬쩨르부르크와 블라디보스톡의 거리는 15.000Km. 시차도 무려 7시간이 난다. 서울에서 뉴욕까지의 거리가 약 11.000Km인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동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기로 한다. 왜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였을까? 애석하게도 그들은 무일푼 백수 신세였기 때문이다. 돈은 없고 제니트 경기는 봐야하기에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차로 블라디보스톡을 간다면 시속 200km로 잠 한숨 안자고 운전해도 75시간. 무려 사흘이 걸린다. 그런데, 더 눈에 띄는 사실이 있다. 그들이 이용한 차가 1986년식 지굴리(Жигули)였다는 것이다.

지굴리는 1980년대를 풍미하던 대표 자동차로 쉽게 설명하면 1983년에 출시된 현대 자동차의 스텔라 같은 존재다. 기자가 러시아 유학 시절 운 좋게 시승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승차감을 설명하자면 마치 승마를 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다이나믹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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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문제(?)의 지굴리와 원정길을 떠난 제니트 팬들은 근 2주간, 연실 악셀을 밟아대며 신나게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했다. 배고픔도 피곤함도 문제 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그들의 축구 열정에는 비할 수가 없었기에 블라디보스톡 원정 여행은 순탄히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굴리의 성능을 너무 과대평가 한 것일까? 그들의 여행은 실패로 돌아간다. 차의 연식이 오래되나 보니 계속된 장거리 운행으로 엔진 과열로 차가 전소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의 차는 블라디보스톡을 코 앞에 둔 우수리스크 라는 도시에서 멈춰 버렸고, 그들은 차를 버리고 기차편을 이용해 상뜨 뻬제르부르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블라디보스톡까지 왔는데 왜 그들은 다시 돌아가야만 했는가? 참 슬픈 사연이지만 그들의 주머니는 너무나 가벼워 상뜨 뻬제르부르크로 돌아갈 기차비 밖에 없었다고 한다. 더 나아가 표 값도 모자라, 역무원에게 사정해 겨우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는 후문이 있었을 정도로 그들은 가난했다.

우여곡절 끝에 상뜨뻬쩨르부르크로 돌아온 제니트 팬들은 시무룩했다. 하지만 하늘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나? 제니트 팬들에게 반전급 시나리오가 닥친다. 제니트 팬들의 애절한 스토리를 들은 제니트 구단이 그들의 열정에 감동해 최신형 고급 승용차를 선물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이들의 생활고(?)를 가엾게 여긴 제니트는 그들에게 제니트 경기를 평생 관람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을 뿐 아니라, TV와 라디오 등 소정의 생활 용품을 제공했다고 한다.

그렇게 7년이 지났다. 그 시절 문제의 트리오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세 명은 아직도 제니트의 모든 경기를 따라다니며 팬심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알렉산드르 자라이스키는 지난해까지 제니트 서포터즈의 단장직을 맡았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있다. 고객의 성원 없이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기업들의 애환을 표현한 말일 게다. 축구판도 다를 것 없다. 팬들의 열정적인 성화가 없으면 그 어떤 팀도 강팀 혹은 명문 팀이 될 수가 없다. 위의 일화에서 문제의 트리오가 보여준 팬들의 열정적인 지지. 이것이 제니트가 강팀으로 발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이유다.


글= 김성민 기자
사진 출처= ‘러시안 풋볼’, 제니트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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