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2] 류현진의 새 슬라이더에 대한 반론
입력 : 2014.07.2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벌써 12승이다. 반갑고, 대견하고, 기특하다. 2년차 징크스 걱정을 어리석은 짓으로 만들었으니 참 대단하다. 리그 다승 1위(STL 애덤 웨인라이트.13승)와 불과 1승 차이고, 박찬호의 18승 기록도 꿈꿔볼 수 있게 됐다. 아울러 그의 미션 수행으로 다저스는 샌프란시스코 원정 3연전을 깔끔하게 빗자루질 했다. 디비전 1위를 위한 중요한 길목이었음은 물론이다.

확실히 대단한 승리였다. 그러나 욕심은 끝이 없는 걸까? 뭔가 계속 켕긴다. 미심쩍고, 불안하다. 하필 분위기 좋은 이 대목에서 깨는 소리, 초 치는 소리…. 그의 새무기 슬라이더에 대한 걱정이다.

12승과 관련한 키워드 중 가장 핫한 것은 ‘커쇼표 슬라이더’다. 전반기 막판에 요령을 터득해서 톡톡이 재미를 보고 있다는 그 공 말이다. 스스로도 “이젠 없으면 안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 새삼스러운 구종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커쇼가 던지는 것처럼 쥐는 법을 바꾸고, 팔의 각도를 달리했더니 훨씬 더 위력적인 공이 됐다고 한다. 일주일쯤 연습한 뒤 곧바로 실전에서 사용하고 있다. 11승, 12승 경기가 모두 새 슬라이더 덕을 본 것이었다. 실제로 어제(한국시간 28일) 경기에서도 자이언츠 타자들 대부분이 그 공에 파울이나 헛스윙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그래.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나? 잘 통하면 됐지, 그래서 이겼으면 그만이지. 뭘 더 바라나? 맞다. 새로 무기가 하나 더 생겼는데 뭐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그리 간단히 넘길 일은 아닌 것 같다. 왜 그러냐고? 오늘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 슬라이더 빼고는 글쎄?

분명 그의 눈썰미, 손 끝 감각은 놀랄만한 수준이다. 새 슬라이더는 커쇼가 직접 가르쳐준 것도 아니다. 쥐는 법만 어깨 너머로 배웠고, 나머지는 동영상을 관찰한 끝에 ‘팔의 각도’에서 위력이 나온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왼팔의 각도를 조금 높여서 연습해본 결과 큰 무리 없이 더 빠르고 예리하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개발한 것이다. 하나 장착하는 데 몇개월, 몇년씩 걸린다는 새 구종을 일주일만에 익힌 것에 대해 저작권자인 커쇼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천재성에 대한 감탄을 잠시 멈추고 냉정하게 따져보자. 무기가 하나 더 생겼다고 그만큼 더 강해졌을까? 다른 것들의 위력이 모두 그대로였다면 그런 결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새 무기를 얻은 반면, 다른 무기들의 성능이 떨어졌다면 어떨까. 이때는 데이터를 종합해야 한다.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을 다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 판단이 가능하다.

어제 경기를 다시 짚어보자. 6이닝 동안 6피안타 1볼넷으로 3실점했다. 퀄리티 스타트라고는 하지만 그 자체로는 ERA가 4.50이다. 때문에 시즌 ERA도 3.39에서 3.44로 높아졌다. 5회에는 버스터 포지에게 홈런도 맞았다. 22이닝만의 피홈런이었다. 그러니까 승리투수가 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호투’라는 평가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평균치 이하였다는 말이다. 즉, 다른 무기 어느 것인가는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 핵심은 체인지업이다

이날 그의 103개의 투구 중에 30개가 슬라이더였다. 30% 가까운 비율이다. 이는 작년(14.1%)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반면 빠른 볼(47개ㆍ45.6%)과 체인지업(11개ㆍ10.7%)의 비율은 크게 줄었다. 지난 해는 빠른 볼이 53.8%, 체인지업이 22.4%였다. 굳이 2013시즌을 예로 드는 것은 그때가 ERA라든가 다른 수치면에서는 오히려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해까지 빠른 볼과 체인지업으로 대표되는 투수였다. 특히나 체인지업은 ML에서도 최정상급이었다. 시즌 피안타율이 .164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피안타율이 3할대(.319)로 치솟았다. 이때부터 그는 구종의 다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커브 비율을 높이고, 커터 비슷한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새로 출시한 것이 ‘커쇼표 슬라이더’다.

많은 미디어들이 체인지업이 공략당하는 이유가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구라다>가 예전 글에서도 주장했듯이 그건 아니다. 예전에는 몰랐고, 이제는 잘 알기 때문에 칠 수 있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리베라의 커터도, 우에하라의 스플리터도, 커쇼의 커브도 모두 노출된 공이고, 공략당해야 한다.

체인지업이 얻어 맞는 이유는 던지는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류현진 본인은 최근 인터뷰에서 ‘직구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직구를 더 많이 던져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바 있다. 변화구 구사 비율이 높아지면서 체인지업의 위력이 반감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말과 다르게 이후에도 직구 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당연히 슬라이더나 커브 같은 변화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

▶ 왜 슬라이더는 안되고, 체인지업이야 하는가

매팅리 감독은 어제 경기를 이렇게 평가했다. “이제 류현진은 플레이트 왼쪽과 오른쪽을 모두 효과적으로 쓸 줄 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다. 예전에는 (오른쪽 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코스 위주의 투구를 했지만 슬라이더를 던지면서 몸쪽도 공략하게 됐다는 뜻이다.

그가 예전부터 바깥쪽 위주의 투구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팬그래프 닷컴의 그래프를 보면 2013년도 그의 로케이션은 아웃 코스에 훨씬 더 많은 점이 찍혀 있다(타자 관점). 반면 어제 경기는 인코스 쪽에 더 많이 로케이션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가 새로 던지기 시작한 슬라이더의 특성과 연관됐다. 몸쪽에 붙어서 떨어져야 파울이든, 헛스윙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픽> 위: 2013 시즌 전체 투구 로케이션, 아래: 어제(28일) 12승째 투구 로케이션/fangraphs.com

그러나 류현진은 몸쪽보다 바깥쪽에 탁월한 위력을 갖고 있는 투수다. 아무리 제구력(로케이션)이 좋은 투수라도 더 자신 있는 쪽이 있기 마련인데, 류현진의 경우는 그게 바깥쪽이다. 아마도 투수판의 1루쪽 끝을 밟고 그의 스타일 상 각도가 잘 나오기 때문이리라. 몸쪽은 대각선으로 파야 하니까, 어려움이 있을테고….

물론 류현진도 타자 무릎쪽에 날카로운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을 줄 안다. 그러나 그의 주무기는 누가 뭐래도 바깥쪽 낮은 코스에 ‘꽝’ 하고 박히는 스트라이크다. 그게 살아나면 거기서 떨어지는 체인지업도 위력을 되찾게 된다. 둘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어제 빠른 볼은 94마일까지 나왔다.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빛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체인지업도 힘을 쓰지 못했다. 류현진은 후에 “(슬라이더 때문에) 팔을 올리니까 체인지업의 제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물론 슬라이더는 플랜B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주인공이 돼서는 안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빠른 볼과 체인지업의 조합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가장 류현진 다운 피칭을 할 수 있는 컴비네이션이기 때문이다. 그거야말로 메이저리그 정상급이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최고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어제 경기를 중계방송하던 ESPN TV의 해설자 존 크룩은 이런 말을 했다. “그의 슬라이더가 얼마나 치명적으로 발전했는지 많이 얘기하고 있다. 그에게는 계속 가지고 놀고 싶은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셈이다. 하지만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좋지 못할 것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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