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대만렙] '왜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하느냐' 질문에 조오련의 대답은...
입력 : 2019.11.2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은경 기자=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1970년대 일본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수영에서 아시아 정상에 선 스포츠 영웅이다.

조오련은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 수영 자유형 400m 결승에서 4분20초20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리다 아키라(일본)가 은메달, 무라타 도시모리(일본)가 동메달이었다.

조오련과 리다의 기록 차이는 1초. 일상생활에서는 간발의 차이로 느껴지지만, 수영에서 1초 차면 실력 차가 어느 정도 났다는 뜻이다. 당시 수영에서 처음 나온 금메달에 전국민이 열광했지만, 그 이상으로 일본 선수를 당당하게 제치고 금메달을 거머쥔 조오련의 역영에 그 감동이 더 깊었다.

조오련은 이 대회 남자 자유형 1500m에서도 똑 같은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대회 일정상 자유형 400m 이후에 1500m 경기가 열리는데, 400m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조오련을 일본 선수들이 크게 경계하면서 레이스를 했음에도 따라잡지 못했다.

조오련은 1974년 테헤란 올림픽에서도 자유형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2연패에 성공했다. 테헤란 대회 때도 조오련에 뒤처진 은메달리스트는 모두 일본 선수였다.

조오련은 선수 생활을 접은 후에도 수영을 놓지 않고 바다 수영에 도전한다. 톱 레벨에 오른 국민 스타로서는 꽤나 이색적인 행보였다.

1980년 8월 11일, 조오련은 부산 다대포항에서 일본 대마도 소자키등대까지 혼자 수영해서 건너가는데 성공했다. 13시간16분10초가 걸렸다.

수영으로 도전하는 대한해협 횡단은 조오련이 최초 성공이었다. 1972년에 일본 나카지마 쇼지가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해류의 흐름상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게 더 어려운데도 조오련은 첫 도전에서 성공했다.
왜 수영으로 아시아 최고의 성과를 낸 스타가 이런 힘든 도전을 하느냐는 말에 조오련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고 한다.

“아니, 일본 놈들보다는 우리가 먼저 성공해야 되지 않겠소.”

조오련은 이후에도 바다 수영으로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는 대한해협 횡단 재도전을 준비하다가 2009년 8월 심장마비로 영면했다.

사진=뉴시스

*‘국대만렙’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자랑스러운 성공 스토리를 담은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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