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1> '조선 골잡이' 정대세, “현재 내 축구 인생은 후반 25분”
입력 : 2012.04.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쾰른(독일)] 독일에서는 변덕스러운 사람을 ‘4월 같다’고 부른다. 쾰른에서 숨쉬고 있는 ‘조선의 스트라이커’ 정대세를 만나는 날도 그랬다. 먼 거리를 날아가 어렵게 일정을 잡았지만 갑작스러운 팀 훈련 스케줄 변경으로 FC 쾰른의 홈 구장인 라인 에레르기 아레나 밖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날씨 역시 변덕스러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매서운 비가 내리다가 다시 밝은 태양이 내비쳤다.

‘스포탈코리아’가 축구전문채널 ‘스포츠원(www.Sports1.kr)’과 함께 정대세를 찾아 떠난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자이니치’, ‘경계인’이라는 복잡한 수식은 떼어버리고, 우리가 품어야 할 또 한 명의 ‘우리’ 축구 선수가 어떻게 독일에서 정착하고 있는지, 2부 리그에서 1부 리그 어렵게 둥지를 옮긴 후 어떤 싸움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사실 정대세와의 인터뷰 자체를 성사시키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가 진행되어 가자 그와 우리를 구별지을 수밖에 없는 난관들이 불쑥불쑥 튀어 나왔다. 사전에 질문을 허가 받아야 했고, 인터뷰 시작과 종료를 실시간으로 통보해야 했다.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랴.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할 수 밖에.

처음 예상 보다 여섯 시간 늦게, 해가 저물 무렵 만난 탓에 인터뷰 장소가 애매해지자 정대세는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취재진을 이끌었다. 쾰른 시내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 아직 정리가 덜 된 거실 한 켠은 정대세가 모으고 있는 각종 피규어들과 경기장에서 상대 선수와 바꿔 입은 유니폼들이 차지했다. 어디선가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한국 분들을 뵙겠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온 정대세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아들의 편안한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피했다. 정대세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한국 팬들과도 마주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인사 부탁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독일에 진출한 후 텔레비(TV)는 물론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될 기회가 많지 않아 팬 분들도 많이 궁금해 하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늘 텔레비(편집자주: 스포츠원 채널을 의미함)에 나오는 기회가 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2부 리그 보훔에서 1부 리그 쾰른으로 둥지를 옮겨 생활하고 있는데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보훔에서 쾰른으로 오니 몇몇 차이가 있는데요. 일단 함께 운동하는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1부리그 팀이다 보니 외국 사람들(외국인 선수)이 많습니다. 독일 선수들의 스타일은 수비적이고 안정적인 경기를 중요시 했는데, 외국 사람들은 공격적인 성향이 있습니다. 경기 중 실수를 하더라도 낙관적으로 끝까지 경기를 하는 모습이 경기장 안에서 잘 나타납니다. 저도 낙관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스타일이 잘 맞습니다. 비록 경기에는 많이 나서지 못하지만 저와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의사소통 이야기를 했는데요. 한국어, 일어,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등 정말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대단한 능력 같아요.
사람들은 저에게 머리가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일본에 있을 당시 언어를 배우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좋아하다 보니 잘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언어에 몰입하는지가 중요합니다. 독일에 처음 와서는 보훔에서 과외를 했습니다. 하루에 네 시간 동안 일주일에 3~4회씩 했습니다. 저녁 7시에 시작해서 밤 11시 정도에 과외가 끝나면 혼자 방으로 가서 예습과 복습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훈련장에 가서 전날 공부한 단어와 말을 쓰면서 모두 외우도록 했습니다. 또 훈련장에서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집에 와서 찾아보고 공부해서 다음 날에는 알아서 오는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처음 독일에 와서 현지 적응 뿐만 아니라 축구에 대한 적응까지 하려면 힘들었겠어요.
언어 공부를 취미로 생각하고 했습니다. 처음 2~3개월은 상당히 집중력 높게 공부를 했습니다. 축구 선수는 다른 직업에 비해 여유 시간이 많다고 봅니다.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가 언젠가 선수로서의 생활이 끝났을 때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고 공부했습니다. 지금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공부 중 언어 공부가 그래도 쉽다고 봤습니다. 어차피 생활의 일부라고 보고,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훈련했습니다. 물론 저도 공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선수들에 비해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편안하게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재미있게,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K리그 뿐만 J리그 선수 다수가 유럽 진출을 꿈꿉니다. 이미 유럽을 경험한 선수도 많습니다. 어떤 선수들은 축구만 잘 하면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착각이라는 시선도 있는데요.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이제는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 한국과 일본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유럽에 오기 전부터 주목을 받은 카가와, 박지성, 우치다 등의 선수들은 워낙 실력이 좋아서 언어가 따라주지 않아도 문제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축구 선수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재능을 유럽에서 키워야 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마치 저처럼 중간 단계의 선수들도 있습니다.

막연히 유럽을 꿈꾸고 무조건 축구만 준비하는 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직접 독일에서 생활하고, 또 다른 일본 선수들과 한국 선수들을 보며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아시아에서 영어를 실제로 쓰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만, 적어도 이곳 팀에 와서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만큼의 수준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일부 선수들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독일어가 어렵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사실 얼마나 독일어가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하며 그런 말을 하는 일본 선수를 꽤 봤습니다. 실제 공부를 해 보니 독일어는 주어나 명사에 따라 동사가 달라지는 등 문법이 어려운데, 겪어보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선수들에게는 개인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웃음).

검색창에 ‘정대세’를 치면 ‘눈물’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나옵니다. 상당히 감성적인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실 감정을 모두 보여주는 것이 제 스타일입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해 기쁜 마음을 눈물로 표현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출합니다. 어떤 경기의 결과 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나타나는 감정조차도 주목 받을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본의 조선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일본 학교에서는 축구의 정신적인 부분보다 기술적이고 전술적인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조선 학교의 교사와 지도자들은 20~30년 이전의 모습 대로 정신력을 강조했습니다. 다소 낡은 부분일 수도 있지만, 그 영향이 지금까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경기를 소화하면서도 정신적인 부분,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표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조선학교에서 배운 정신적인 면이 지금 강인함으로 작용하며 긍정적으로 나타난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과 가끔 연락을 합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제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참을성이 많지 않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감정이 경기장에서 플레이로 나타나는 것은 긍정적이겠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훈련장에서 동료들과 싸우거나, 남을 때리는 것은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저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저를 잘 이끌어줬고, 지금 이렇게 축구 선수로 자라났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꾸지람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고등학교 시절에 꾸지람도 듣고, 욕도 먹었습니다.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유럽 선수들도 감정 표현이 자유롭잖아요. 한국이나 일본의 선수들과는 다른 면일텐데요?
정말 큰 차이를 느꼈습니다. 선수가 감정 표현을 할 때 감독이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면 감독이 혼을 냅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감정을 잘 표출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어느 것이 좋다고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축구는 유럽이 더욱 선진적이니 이곳의 방식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에 충실한 선수인 만큼 기억에 남는 경기도 많을 것 같은데요?
가와사키 프론탈레 시절, 당시 팀의 특징은 결정적인 승부에 약했던 것 같습니다. 컵 대회에서 결승까지는 잘 진출하는데, 막상 결승에서는 승리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가와사키에서 두 차례 결승전을 경험했는데, 두 번 모두 패배했습니다. 리그에서도 4회나 2위를 했습니다. 2009년도 나비스코컵 결승전에서 패한 기억이 오래 남습니다. 사람은 기쁨 보다 아픔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기억들을 뒤로하고, 유럽에 진출해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국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내며 왕래를 하나요?
이청용 선수와 더 친해지고 싶습니다. 아직 손흥민 선수와는 친해지지 않았습니다. 경기장에서 3초 정도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구자철 선수와도 전화 통화를 한 번 했습니다. 지난 해 베트남에서 개최된 박지성 선수의 자선 경기에서 이청용 선수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예의가 바른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몇 차례 통화도 하고, 이메일도 주고 받았습니다. 정말 성격이 좋은 것 같습니다. 내가 꿈꾸는 잉글랜드에서 활약하며 인기를 많이 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예의를 잘 차리는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나는 이청용 선수를 바라보며 위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청용 선수는 오히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저를 위로 바라봐줘서 고마웠고, 인상이 정말 좋았습니다.

박지성 선수의 자선경기 이야기도 나왔는데, 친분을 쌓고 있나요?
아직 사적인 자리에서 만난 적은 없습니다. 올해도 태국에서 개최되는 경기에 참가할 것입니다. 아직 박지성 선수의 전화번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교토 퍼플상가에서 박지성 선수와 함께 활약했던 마쓰이 선수가 저에게 박지성 선수의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몰라서 차두리 선수에게 연락을 해서 전화번호를 받아 마쓰이 선수에게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제 핸드폰에는 저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직접 전화번호를 받은 것이 아니라 불쑥 연락을 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직접 만나 전화번호를 받을 생각입니다. 지난 해 베트남에서는 시간이 없어 받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태국에서 받아 볼 생각입니다.

박지성 선수는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라 그런지 조금 어렵습니다. 직접 이야기를 할 때에는 긴장이 되고, 잘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나름대로 편하게 대화를 했는데,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는 말을 해도 될지 고민을 많이 하다가 꺼내지 못했습니다. 호감이 가는 여성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 보다 박지성 선수에게 말을 거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웃음) 일본에도 나카타, 미우라 등 대단한 선수들도 있지만 박지성 선수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맨유가 독일에서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가질 당시 용기를 내어 맨유의 팀 버스에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잖아요.
맞아요. 샬케04와의 4강전이었습니다. 일본 국가대표였던 우치다도 경기에서 뛰었고, 박지성 선수도 경기에 뛰었습니다. 경기를 보러 관중의 한 명으로 갔다가 주차장으로 돌아가는데 맨유의 팀 버스를 발견했습니다. 분명 박지성 선수가 내 존재를 알고 있겠지만, 당시 주차장에서 저는 수 많은 팬들 중 한 명이었기에 박지성 선수가 저를 알아보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차마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떤 팬이 저를 알아보고 대신해 맨유의 버스를 노크했습니다. 처음에는 박지성 선수가 몰라보고 그냥 다른 곳을 쳐다봤는데, 여러 번 노크를 하자 ‘어 대세다’라는 표정으로 반갑게 내려와 인사를 했습니다. 직접 버스에서 내려와 인사를 해 주셔서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이번 여름 태국에서 더욱 편하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처음 독일에 진출할 당시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축구 선수로서의 성공 이외에 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일년에 두 번 밖에 일본에 가지 못하고,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외로움을 가져오지만 성공을 위해 선택했습니다. 독일에서는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만약 시집을 간 이후에는(웃음), 아니 장가를 간 후에는 독일에서 사는 것도 편할 것 같습니다.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함께 식사하며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아이가 생기면 독일에서는 교육비도 거의 들지 않기 때문에 좋은 환경이 될 것 같습니다.

쾰른에서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보훔을 거쳐 이곳에 안착하며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있을 것 같은데요?
지난 경기가 좋지 않으면 모든 것을 바꿉니다. 테이핑, 축구화, 유니폼 사이즈 등 모든 것을 바꾸고 경기에 나섭니다. 반대로 만약 지난 경기가 좋았다면 지난 경기에 했던 것들을 그대로 합니다. 경기 전 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합니다. 보훔에서 멘탈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항상 자신이 가장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경기, 가장 환호했던 순간 등 긍정적인 상상으로 밤을 채웁니다.

그라운드 위에 올라서기 직전에는 깊은 심호흡을 세 번 합니다. 몸이 가벼워진다는 상상을 하며 그라운드 안으로 걸어갑니다. 그리고 내가 세계에서 가장 잘 하는 선수라고 제 자신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다. 아무도 나를 멈추게 할 수 없다’고 계속 반복을 합니다. 이 과정이 정말 도움이 되고, 100%를 그라운드에 쏟을 수 있는 준비의 과정입니다.

음식 외에 또 독일에서 삶을 살며 즐기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러닝을 좋아합니다. 국가 대표팀에 소속되어 가끔 다른 나라에서 원정 경기를 펼칠 때면 각 나라마다 아침에 러닝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버스를 타고 풍경을 보는 것과 직접 발로 뛰며 보는 경치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에서 원정 경기를 소화하며 호텔 근처 공원을 뛰며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이곳 독일 쾰른에는 공원도 많아서 뛰는 재미가 좋습니다. 처음 쾰른에 왔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명물인 쾰른 성당을 들른 적이 있는데, 팬들이 먼저 알아봐주기도 했습니다. 팬들이 알아보시면 어머니가 더 좋아하십니다.

인터뷰에 앞서 ‘스포츠원’의 게시판에 많은 시청자분들이 질문을 올렸는데요, 이상형을 묻는 질문이 있었어요.
외모도 좋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좋습니다. 남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여성이 좋습니다. 내가 마음이 아프거나, 경기가 가끔 엉망이 되어 속이 상해 집으로 돌아오면 그 마음을 잘 다스려 줄 수 있는 여성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머리가 좋은 여성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결혼 생각은 없지만, 하고 싶을 때 할 예정입니다. 아마도 서른 살이 되기 전에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민 루니, 인간 불도저 등 다양한 별명이 있는데요, 어떤 별명이 제일 좋나요?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은 제가 지었습니다. 가장 처음 가진 별명이었기에 좋습니다. 일본에서 ‘아시아의 루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독일에 온 후에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월드컵을 통해 그 별명이 알려졌고, 쾰른에서 포돌스키를 만나자 저에게 “루니야 왔냐”고 했습니다



만약 분데스리가 내의 다른 팀에서 활약할 수 있다면 어느 팀에 가고 싶나요?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팀 입니다. 올 시즌은 도르트문트가 우승을 했지만, 실력은 바이에른 뮌헨이 최고입니다. 만약 다른 리그에서 팀을 꼽자면 박지성 선수와 함께 맨유에서 뛰고 싶습니다. 제 꿈입니다.

예전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 했었잖아요?
고등학교 시절에 일본에서 위성TV를 통해 유럽 축구를 많이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이탈리아 세리에가 주목을 받던 시절이었고,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인기는 지금 만큼 크지 않았는데, 경기를 보니 정말 수준이 높고 재미있었습니다.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는데, 왠지 모르게 제 흥미를 끌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중계 카메라의 높이가 낮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웃음)

하지만 잉글랜드 진출을 하려면 실력 외에도 넘어야 할 다른 장벽이 있지요?
맞습니다. 비자, 즉 워크 퍼밋 문제가 너무 큽니다. 제가 한국이나 일본의 대표팀 출신이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 입니다. 이번에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 진출한 이충성 역시 일본 대표팀의 경력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땅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선의 대표이기에 워크 퍼밋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대표팀 경기 75% 이상 출전 충족의 조건은 충분한데, 대표팀의 랭킹이 80위의 조건을 맞추지 못합니다.

반대로 75%의 조건을 조건을 충족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추천으로 잉글랜드에 입성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정치적 힘은 맨유, 아스널, 리버풀, 첼시 등 힘이 있는 팀이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 외의 팀에게는 가능한 방법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처음에 독일에 올 때도 힘들었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조선 여권을 보면 마치 법을 어기는 사람을 보는 눈으로 봅니다. 독일, 영국은 물론 일본에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도 그렇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이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자신이 선택을 했기에 이겨내야 하는 과제잖아요?
맞습니다. 저는 조선의 대표입니다. 그 문제는 제가 참아내고, 이겨내야 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의 정대세는 축구 선수 인생의 몇 분에 와 있나요?
제 축구 인생은 지금 후반 25분입니다. 스코어는 1-4로 지고 있습니다. 유럽에 와서 보니 세계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 일본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현역으로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수준까지 오르고 싶습니다. 후반 45분, 휘슬이 불릴 때 쯤이면 4-4의 스코어까지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연장전에 돌입하면 제 인생에서 가장 값진 골을 넣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팬 여러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조금씩 저에게도 기회가 찾아올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많은 경기가 남지는 않았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반드시 골을 넣겠습니다. 많은 팬 여러분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인터뷰 및 사진= 김동환 기자

* 정대세의 진솔한 독일 현지 인터뷰 내용과 진솔한 생활 모습은 오는 5월 1일 저녁 10시 스포츠전문채널 스포츠원(www.sports1.kr)을 통해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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