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5-2> 이장수, “광저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돼”
입력 : 2012.07.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1편에서 이어짐”
[스포탈코리아] 2012년 2월 중국 광저우 외곽의 칭위안 시에 있는 광저우 헝다 연습구장에서 이장수를 만났다. 2부리그 팀인 광저우 헝다를 맡자마자 1부리그로 승격시키고, 바로 슈퍼리그 우승컵까지 거머쥔 ‘대륙의 별’은 빛났다. 그의 뒤에는 카메라 구름이 따라다녔다. 한 달 뒤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재회했다. 이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헝다는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5-1로 격파했다. 중국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이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장수는 커다란 산 같았다.

산은 두 달 만에 없어졌다. 구단 역사상 최초로 AFC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하고 리그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구단 수뇌부는 거산(巨山) 이장수를 내쳤다.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를 데려오기 위한 수순이었다. 2009년 베이징 궈안에서 갑자기 경질된 것과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이장수는 “괜찮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했지만, 충격이 컸다. 광저우 헝다와 일을 모두 매듭지은 후에 중국에 있는 짐을 다 싸서 귀국했다.

7월의 어느 찌푸린 날, 예기치 않게 휴가를 받은 이장수를 만났다. 이장수는 광저우 헝다와의 이연, 중국 축구의 미래 그리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륙의 별’은 거침이 없었다. 미사여구나 수식어를 걷어낸 묵직한 슈팅이 날아들어왔다.

“너희만 건너고 다리를 끊다니”
-옛날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광저우에서 감독 제의를 할 때는 어떤 모양새였나?
베이징(북경)에서 그만두고 쉬려고 했다. 제의가 왔을 때 안 간다고 했었다. 구단 관계자가 아니라 축구 방송 쪽에 있는 사람인데 알고 지낸 지 15년 정도 된 사람이다. 처음에는 평기자였는데 지금은 유명한 아나운서다. 집으로 전화해서 나보고 광저우로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거긴 2부 리그 아니냐? 장난치지 말라”라고 했다. 그쪽에서는 “장난이 아니고, 구단이 적극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라고 하더라. 그렇게 끊었다. 이틀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중국 체면을 중시한다 누가 부탁하면 ‘꽌시(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자기 체면을 봐서 식사라도 하고 가라고 하더라. 구단 부회장으로 축구단 회장인 사람과 광저우에서 식사하자고 해서, 베이징에서 보자고 했다. 가지고 올 짐도 있었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만나려고 1주일짜리 티켓을 끊었다. 거기서 만났는데, 부회장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회장 부탁을 받았으니 자기 체면을 봐서라도 광저우에서 식사라도 해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가서 이틀 동안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했고, 어렵게 결정을 했다. 2부 리그, 지금 하라면 못할 것 같다. 1부 올라가지 못하면 끝나는 거 아닌가? 개막 일주일 전에 계약했다. 옵션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개막이 1주일 남았으니 1부 승격을 보장 못한다. 2년 안에 올라가고, 1부 가서도 한해 준비하고 다음에 우승하자’라고 했다. 그래서 4년 계약을 했다. 만약에 계획대로 했다면 안 잘렸겠지. 그렇게 이야기들 한다. 2부 리그에서 힘들었다. 광저우 선수들이 작다. 결국 1점 차이로 우승했다. 나도 예상을 못했다. 선수 구성상 올해와 내년이 가장 좋다. 그게 가장 아까운 거다. 한국에서는 이해가 안가는 거지. 중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충격이 정말 컸을 것 같다
중국 언론에도 이야기 했다. “너희가 힘들 때 다리를 같이 건너자고 해 놓고 너희만 건너고 다리를 끊은 거 아니냐.” 일부 언론에서는 경질된 게 아니라 내가 떠난 거라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냐? 사실상 경질된 건데. 이해할 수가 없지. ‘CCTV’와 인터뷰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서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AFC챔피언스리그도 1위, 리그도 1위. 처음부터 끝까지 1등이었는데 중국은 그게 가능하다. 그렇지만 성적이 좋았을 때 나와서 그나마 다행이다. 안 좋았을 때 나왔다면 비참했겠지. 한 점 부끄럼 없고 떳떳하지만, 이해가 안가.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그래도 좋은 기억도 있었을 것 같다. 긴 중국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인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팀이었던 충칭이다. 굉장히 열악했고 6개월 동안 월급도 안받았다. 선수들이 훈련 안 하겠다는 것을 다독였다. 베이징에서는 갑자기 잘리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3시 반인데도 몇 십 명의 팬들이 와 있더라. 광저우에서도 팬들이 “구단이 나쁜 놈들이다”라고 했었다. 한국으로 떠나는 날도 ‘CCTV’에서 촬영하고, 팬들도 많아서 공항이 마비됐다. 최근에도 한국에서 인터뷰한 게 현지에서 찬반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축구 미래 어렵다 했더니 ‘이장수가 맞다. 틀리다’라며 난리다.

“이제 일할 여건이 더 중요하다”
-이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국내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갈 것인가?
팀을 많이 돌아다녔다. 장돌뱅이같이, 7팀을 맡았다. 코치로 따지면 1989년부터 시작했다. (지금까지) 23년인데, 1년 쉬었으니 22년이다. 코치 7년, 감독 15년. 이제는 어떤 팀인가보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오라 해서 그냥 갔다가 이상한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전남도 마찬가지다. 중국 있다가 들어와서 3개월 만에 사건에 휘말렸다. 가장 아팠던 것은. 나보고 도둑질했다 하니까. “나는 안 했다”라고 하니까, 그게 또 잘못이라는 거다. 그러고 보면 한국도 마찬가지다.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는 행태를 보면, 구단 사장이 선수 교체하라고 하고… 그게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이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중요하다는 거다. 요즘 프런트가 너무 강하다. 맞지 않다고 본다. 감독이 목소리 내겠다는 게 아니다. 엄연히 일이 다르다. 결국 구단프런트도 이익이 결부 됐으니 그러는 거 아닌가?

-팀을 선택하는데 최소한의 조건이 있나? AFC챔피언스리그 진출과 같은...
어떤 지도자든 그런 팀을 첫 번째로 생각할 것이다. 물론 시민구단을 맡으면 목표가 다르겠지. 딱 어떤 팀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여건이 중요하다. 이왕이면 좋은 팀을 맡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지도자 생활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지금도 지도자로서 느끼는 갈증이 있을 것 같다
지도자는 늘 그렇다. 기록은 그저 남을 뿐이다. 우승을 해도 그 해로 끝나고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그게 가장 큰 매력이고, 위험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치면 이만큼 벌었으니 더 키우면 되는데, 감독은 매년 다시 시작이다. 감독에게 적어도 3년이 필요한 것도 그런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성취감 같은 게 있는 거다. 그리고 프로팀 감독을 하면 어쨌든 수입도 따라간다. 수입이 없다면 하겠나? 한국 이야기를 들으니 시민구단에 자리가 나면 월급 안 줘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더라. 국회의원 찾고 도지사 찾는다는데,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지도자 생활을 큰 그림으로 봤을 때, 지금 어느 정도 왔나?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올해 만 56세다. 더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게 40대 후반부터 60대 초반이라고 한다. 오래 남아있지는 않겠지만 좋은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다. 아직은 좀 더해야 한다.


-은퇴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감독 은퇴라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알렉스 퍼거슨 정도가 아닐까?
잘리면 은퇴하는 거 아닌가? (웃음) 그렇게 되는 게 가장 좋다. 그게 쉽지 않다. 가장 좋을 때 손을 놓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가장 좋을 때) 그래 보니 좋은 게 많이 온다. 충칭, 베이징에서도 성적이 좋았으니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협상이) 결렬된 거였다. 다섯번 접촉했었다. 의견이 안 맞으니까 내가 못하겠다고 했다. 내가 스스로 좋은 결과를 놓고 그만두면 또 다른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

-은퇴 후에는 어떤 일을 생각하고 있나? 히딩크, 허정무 감독처럼 축구센터를 세우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능력이 안 되고 먹고 살기 바빠죽겠는데. (웃음)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둘다 생각하고 있다. 감독을 그만두기 전에 조금씩 준비를 해서 이익의 목적이 아닌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다. 대부분 이익 창출이 목표라서 결국 문제가 생긴다. 이익 생각 안 하면 훨씬 더 선수 육성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꿈이 있다.

“박지성, 내가 오지 말라고 해”
-궁금한 게 있다. 광저우의 박지성 영입설이 떠돌았었다. 박지성은 왜 안받겠다고 했나?
그룹회장이 공식적인 자리는 아니었지만 식사하면서 이야기했다. 데리고 오자고. 나도 데리고 오고 싶은데 안 온다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고. 가장 큰 빅 리그 가장 좋은 팀에서 뛰는 선수 아닌가? 본인도 안 오려고 하겠지만, 혹시라도 온다고 하면 그 여론을 내가 어떻게 감당하나? (웃음) 축구 선배로서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지난해 12월 영국에 선수 보러 갔다가 맨체스터에 머문 적이 있다. 당시에 만나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 했다. 회장 이야기도 해줬다.. “내가 안 된다고 했다. 가장 좋은 것은 맨체스터에서 은퇴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보니 박주영도 2005년에 프로에 데뷔시켰었다
주영이가 가장 중요한 시기에 선택을 잘못했다. 경기에 나갈 수 없는 팀을 골랐다. 가장 중요한 시기가 묶여 버렸다. 물론 모험을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실패 두려워서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아스널 선수 구성을 봤었어야 했다. 주영이는 네번째 공격수였다. 공격수는 한 명이 필요하다. 가능성이 적다 두 번째 갔어야 한다.

-서울 감독 당시에 데리고 있던 기성용과 이청용에게도 조언을 한다면?
이제 애들이 다 커서 내 말을 듣겠어? 그 때는 정말 어렸다. 이청용은 2006년에 처음으로 경기를 뛰었다. 수원 삼성전 이었는데 잘했다. 경기 후에 인터뷰 한 게 기억난다. 체력이 달렸다. 그 때는 몸이 이랬잖아. 조그마하고. 그래도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했었다. 성용이 청용이 말고도 그 때 아이들이 괜찮았다. 송진형, 고명진, 이상협, 한동원 등이 좋았다.

-앞으로 K리그도 보러 다닐 예정인가?
최근에 옛날 친구들 만나고 치료 받느라 바빴다. 이제 보러 다닐 것인데, 경기장 다니면 이상한 이야기 나오는 거 아닌가? 중국에서는 다른 동네가면 이야기가 나왔다. 나도 부임 후 세 경기 만에 다른 코치가 온다는 이야기가 돌았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언제까지 쉴 예정인가? 혹시 이미 행선지가 정해진 것 아닌가?
얼마나 쉴지 어떻게 아나. (웃음) 행선지, 그런거 없다. 시장이 끝났다. 얼마 전에 중국 2부 리그 팀에서 연락이 왔었다. 안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좋은 구단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 (웃음)

인터뷰= 배진경, 류청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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