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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울보' 북한 골잡이 정대세의 고백

기사입력 : 2012.08.22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 윤진만 기자= 2011년 6월 베트남 호치민 시내 한 호텔 커피숍. 나는 북한 축구의 아이콘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렵게 대리인과 연락이 닿아 30분의 인터뷰 시간을 얻은 터였다. J리거, 재일 교포, 북한 대표 공격수, 이 모든 게 낯선데, 이를 모두 갖춘 인터뷰이는 정대세가 처음이어서 가슴이 뛴다. 분침이 약속 시간을 가리키고, 정대세가 문을 열고 눈웃음을 지으며 뚜벅뚜벅 걸어온다. 먼저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청했다. "네, 안녕하세요. 정대세입니다. 반갑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지루했거늘, 실제 인터뷰 시간 33분(!)은 원하는 대답을 듣기엔 너무 짧았다. 준비한 질문을 채 절반도 소화하지 못했다. '선수' 정대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경기 시간 90분이면 충분했지만 '인간' 정대세를 알기에는 180분도 모자랐다. 배고픈 이가 밥이 모자란 것처럼 아쉬움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정대세의 유럽 적응기를 뉴스와 그의 소셜테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확인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정대세와 마주할 기회가 생겼다. 정대세는 당시 얼굴, 미소 그대로였다. 다만 자서전 <정대세의 눈물>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지난해 겨울 1000일 동안 정대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된 이후 그가 직접 써낸 책이다. 제목에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눈물을 붙여 의미를 더했다. 책을 받자마자 찢어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로 힘껏 펼쳤다. 1년 전 아쉬움을 달래기를 바라며 스탠드 불을 켜고 정독했다.



이 책에서 정대세는 어린 시절부터 유럽 생활에 한창인 지금까지의 일대기를 순차적으로 그렸다. 자칫 지루한 회고록이 될 수 있지만, 글 중간중간에 '경계인'으로 사는 외로움과 이로 인한 갈등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공부와 축구를 잘 해도 이방인 취급을 당하면서 조선학교 최초로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 입단하기까지의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커서 북한 대표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한 패기를 보고 '어린 시절 정대세도 참 당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인 눈물은 잊을만 하면 나오는 대목이다. 독자들이 아는 한국 대표팀과의 경기, 2010 남아공 월드컵 브라질전을 앞두고 흘린 눈물 말고도 정대세는 정말 많이도 운다. 그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고, 월드컵 전 아이치 조선고급학교에서 열린 격려회에서 과거 영상을 보면서도 울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에 나오는 이순신이 임금의 죽음에 연거푸 눈물을 흘린 게 떠오를 정도다. 의미는 조금 다르다. 정대세는 "여기 이르기까지 힘들었구나, 꽤 힘든 길을 걸었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한국전 눈물도 비슷한 감정의 소산이었다.

하지만 정대세는 한쪽 얼굴만 드러내지 않았다. 국가, 부모를 위한 눈물 뒤에 감춰진 '사리사욕(?)'도 스스럼 없이 공개했다. 그는 브라질과의 경기 후 팀 동료들이 1-2 패배에 좌절하고 있을 때, 혼자 브라질 라커룸에 달려가 브라질 대표팀의 에이스 카카의 유니폼을 얻는 쾌거를 맛본다. 처음으로 북한 대표팀에 속했을 때 "이 팀이 무얼 할 수 있지?"라며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낸 적도 있다고. 결국 "내가 최고"라는 마음을 갖게 된 자신의 못난 마음이 부끄럽고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고백하지만 고백은 고백일 뿐. 이내 "나는 그렇게 생겨 먹은 놈"이라고 덧붙인다.

책을 덮고 1년 전 만남을 다시 떠올렸다. 33분의 만남에서 얻은 것, 그리고 2시간 동안 그의 자서전을 통해 정대세라는 인물을 만난 것을 합치니 어느 정도 '인간 정대세'의 참모습을 알 것 같았다. 정대세는 용감한 울보다.


*상기 서평은 풋볼 매거북 F& 10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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