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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피플] 황진성 “내 축구의 80%는 아버지 작품”

기사입력 : 2012.12.06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축구공과 함께 했다(좌)- 부모님과 함께 한 황진성(우)
기저귀 차던 시절부터 축구공과 함께 했다(좌)- 부모님과 함께 한 황진성(우)

[스포탈코리아] 배진경 기자= 포항 스틸러스의 ‘에이스’ 황진성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그라운드에 쏟아낸 땀의 진정성이 통했다.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 K리그 대상 베스트일레븐 선정, 시즌 최다 K리그 주간MVP 선정, K리그 40(골)-40(도움) 가입…. 기대 이상의 활약과 수확으로 2012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제야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축구선수 황진성의 80%는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거예요.”

그 아버지에 그 아들…대물림 축구선수
황진성은 대물림 축구선수다. “태어날 때부터 축구와 함께 살았다.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내 옆에는 항상 축구공이 있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한양대와 신탁은행에서 활약했던 경기인 출신 황병철 씨다. 축구공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의 강요로 축구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기저귀를 차고 걸음마를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축구공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놀았다. 황병철 씨는 “진성이가 TV에서 축구만 나오면 요즘 애들이 뽀로로를 보듯이 집중했다. 하루 종일 공을 갖고 놀 정도로 축구를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어머니의 증언은 좀더 생생하다. 90년, 94년 월드컵 당시 새벽마다 경기를 보기 위해 부자가 동시에 눈을 뜨는 게 신기했단다. 어린 나이에 잠투정도 안하고 벌떡 일어나 경기를 챙겨보는 황진성을 보면서 일찌감치 아이의 운명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황진성은 어린 시절 ‘장래희망’으로 항상 ‘훌륭한 축구선수’를 써냈다.



20년 전 잔디구장서 기술 훈련
아버지는 훈련장에 황진성을 데리고 다녔다. 신탁은행 연수원이 있는 경기도 원당의 훈련장은 어린 황진성의 놀이터였다. 평일엔 학교에 다니고 주말엔 아버지를 따라 원당구장에서 훈련했다. 잔디구장이었던 것은 일종의 축복이었다. 자연스럽게 섬세한 볼 터치가 가능해졌다. 황병철 씨는 “맨땅이었다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공을 잡지 않았을 텐데, 잔디구장이니까 공 하나만 주면 혼자서도 마음껏 뛰놀더라. 내가 아이의 재능을 발견하기 이전에 진성이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표현했던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 모두 진성이는 축구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축구선수로서의 자질을 일찍 발견하면서 본격적인 ‘사사’가 이뤄졌다. 황진성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기본기와 기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드리블, 패스, 슈팅 모두 아버지한테 배웠다. 축구선수 황진성의 80%는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셈”이라고 설명했다. 황병철 씨는 “나도 그랬지만 진성이도 체격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기술이 뛰어난 선수가 되는 게 중요했다. 시야나 감각적인 패스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주입시켰던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또래들보다 두각을 보인 것은 당연했다. 일화 하나. 초등학교 2학년 때 차범근 축구교실에 등록해 우열반을 가리는 테스트를 치렀다. 가입 후 첫 한달 동안 모든 선수들은 기초반에서 기본기를 배워야 했다. 황진성은 예외였다. 테스트를 치르고 하루 만에 우등반으로 월반했다.



프로 데뷔 10년 만에 만개
기술로는 일찌감치 독보적인 재능을 인정받은 황진성이었지만 체력과 근성은 늘 약점으로 지적됐다. 사실 체력보다는 간절함의 문제였다. 황병철 씨와 한양대 동기인 박항서 상주상무 감독은 종종 황진성에게 “기술은 네가 더 뛰어난 것 같은데 투지는 아버지가 훨씬 나았던 것 같다. 아버지가 보여준 독기의 반만이라도 따라갔으면 좋겠다”고 채근했다. 2003년 데뷔 이래 팀의 재간둥이로, 주요 공격 배급원으로 활약하면서도 풀타임 자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한 말이다.

2011년에야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황선홍 감독의 믿음 아래 출전 시간을 늘리면서 자신감을 쌓았다. 데뷔 10년 차인 이번 시즌에는 그야말로 만개했다. 황진성은 “예전보다 적극성이나 열정, 집념이 더 많이 생겼다. 볼을 예쁘게 차고 테크니션이라는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지금은 강한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상대와의 기술적인 싸움에서는 어떻게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으니까, 몸싸움에서 지지 않고 볼을 간수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쉽게 풀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예전에는 참 안일했던 것 같다. 지금이라도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게 감사하다”고 자신의 변화상을 짚었다.

데뷔 이래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K리그 41경기에 출전해 12골 8도움을 기록했다.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국내파 선수들을 중용한 경기에 출전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자극을 받았다.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대표팀에 선발돼 좋은 선수들과 함께 훈련해보니 다음에 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아버지 앞에서 묵은 숙제를 해치운 느낌도 든다. “내가 뛰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낙이신 분이다. 프로 선수가 된 후에 늘 큰 산 하나를 못 넘으니까 늘 안타까워하셨다. 아버지가 못이루신 대표선수의 꿈을 10년 만에 이뤄드렸다. 많이 벅차하셨던 것 같다.”



황진성은 아버지에 대해 “든든한 산 같은 분”이라고 했다. 언제든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큰 존재다. “앞으로도 대표팀에 꾸준히 뽑히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아버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흐뭇해한다. “진성이가 결혼 후 아내 덕에 안정을 찾으면서 훨씬 집중력이 생긴 것 같다”면서 “올 시즌처럼만 쭉 잘해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대물림되는 축구사랑이 뜨겁다.


사진=이연수 기자, 황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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