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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LIE RIVALRY] <2> 이운재의 ‘정상을 지키는 법’ & TOP SECRET

기사입력 : 2012.12.07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 이운재는 한국에서 골키퍼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맛본 인물이다. 월드컵 4회 출전에 한국 골키퍼 최초의 센추리 클럽 가입, 골키퍼 최초 K리그 MVP 수상, 국내외 각종 대회에서의 우승까지 두루 경험했다. 정작 그 자신은 이런 성과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어느새 ‘만들어진 사건’들일 뿐, 스스로 그에 대한 목표를 설정해놓았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수로 뛰는 동안 개인적인 목표를 품고 달렸던 적은 없다. 경주마들을 훈련시키거나 달리게 할 때 옆을 못 보게 눈가리개 같은 것을 쓰지 않나. 나도 경주마처럼 옆을 볼 새 없이 그저 앞만 향해 달렸다. 프로 선수로서 팀의 우승을 목표로 할 수는 있지만 개인적인 목표를 따로 설정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다가, 어느날 문득 쉬는 시간에 돌아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이뤘다는 것에 놀라는 식이었다. 그러니 개별 성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굳이 의미있는 시간을 찾자면 축구를 시작한 첫 시점으로 돌아가는 것이겠지. 축구를 시작하고서야 이런저런 영광들이 차례로 따라 온 것이니. 축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꿈꾸지도 못했을 성과들 아닌가.”

94년 미국월드컵 독일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래, 월드컵 4강 신화(2002), 원정 월드컵 첫 승(2006), 원정 월드컵 첫 16강(2010) 등 한국 축구가 새로운 역사를 쓰는 현장에는 모두 이운재가 있었다. 이운재가 원래부터 잘했던 선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당연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생긴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이운재의 기억은 다르다. 94년의 어설픈(?) 영광은 스스로에게 독이었다. “그때는 철이 없었다. 독일전에서 뛰고 나니 금방 내 세상이 될 줄 알았다.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방심했던 모양이다. 96 올림픽, 98 월드컵이 지날 때까지 다시 대표팀 골문 앞에 서지 못했다. 프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96년 수원에 입단했지만 97년도까지는 외국인 골키퍼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뒤쳐지면서 화가 나고 답답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화가 나도 운동으로 보충해야 한다. 토종 선수가 골문 앞에 서려면 더 열심히 해서 살아남는 수 밖에 없었다. 땀으로 기회를 얻고 실력으로 증명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골키퍼로서의 기본에 충실했던 것도 결과적으로는 ‘제 옷’을 입은 선택이었다. 90년대 중반 K리그에 골키퍼 용병 제한 정책이 시행되면서 국내 골키퍼들은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시대를 선도했던 김병지 외에 화려한 퍼포먼스와 정확한 롱킥을 내세운 이용발,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무기로 삼았던 서동명 등 개성 넘치는 골키퍼들이 줄줄이 등장했다. 그들에 비하면 이운재는 무채색에 가까웠다. 대신 누구보다 안정감있는 골키퍼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골키퍼들이 추구하는 스타일은 제 각각이다. 누가 맞고 틀리다는 주장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내가 제일 잘 하는 건 안정적으로, 수비지향으로 플레이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골키퍼였던 거다.”

이운재의 우직함은 2001년 이후 10년 동안 대표팀의 골문 앞을 사수하는 힘이 됐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힘든 세상에서, 여러 굴곡을 겪고도 살아남았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운재는 ‘침묵’과 ‘땀’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했다. “10년 동안 마음 아팠던 순간이 너무 많았다. 정상을 지킨다는 건, 종종 내가 무슨 말을 할 때 ‘배부른 고민’을 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침묵으로 일관할 수 밖에 없었다. 속내를 드러내고 힘든 걸 표출하면 또다른 논쟁거리를 제공하거나 핑계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침묵하는 동안 속은 곪아도, 그게 차라리 나았다. 그리고 어떤 풍파를 겪으면 경기장에서 경기력을 입증하고 위기를 넘겨야 한다. 땀 흘리는 것으로 정면 돌파할 수 밖에 없다.”




이운재의 TOP SECRET: 페널티 박스에선 내가 神
“승부차기에서는 키커가 더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심리전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키커의 부담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다섯 차례씩 킥을 주고받는 동안 골키퍼가 다섯 번을 모두 못막았다고 치자. 만약 5-4로 승부가 갈린다면, 이때 더 큰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누구일까? 못 막은 골키퍼가 아닌 못 넣은 키커다. 그런 점에서 골키퍼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일단 심리적인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상대와의 기싸움에서 내게 유리한 흐름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상대가 차기 전까지 무조건 기다리면서 방향을 읽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키커들이 골키퍼를 살짝 보면서 발목을 꺾어 차기 시작한다는 걸 파악했다. 그래서 아예 제스쳐를 취해 보았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차게끔 살짝 유도하는 나름의 움직임이 있다. 2006년 부산에서 열렸던 독일과의 평가전, 그때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낸 것이 그 장면이었다. 최근에는 골키퍼가 무조건 뜬다고 생각하고 가운데로 과감하게 차는 선수들이 있는데, 나도 느낌에 따라 먼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맞대응하곤 한다. 나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찼던 선수들, TV로 중계된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시도했던 선수들의 발과 방향을 모두 기억해두는 것은 기본이다. 페널티 박스 내에서도 최대한 기다리는 편이다. 일대일 상황도 페널티킥 상황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미리 떠서 골을 먹는 것이나 가만히 서서 실점하는 것이나 결과는 똑같다. 그렇다면 미리 움직여서 실점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박스 내로 들어온 공격수는 슈팅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각만 잡고 있으면 상대의 동작을 지연시킬 수 있다. 공격수 입장에선 어디로든 때리지 않으면 우리 수비수가 와서 붙으니 슈팅 타이밍과 동작이 부정확해질 수밖에 없다. 기다리는 것이 곧 승리 확률을 높이는 비결이다.” (편집자 주- 이운재는 K리그에서 가진 12차례의 승부차기에서 11승 1패(승률 91.8%)의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한다.)


글. 배진경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일러스트. 김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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