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SS 트위터 페이스북

Home>뉴스플러스>일반

[누드토크] <51> 임은주 사장, “강원의 변화? 2~3달만 기다려 봐요”

기사입력 : 2013.07.09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 김성민 기자= ‘엄친딸’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완벽하고 또 철두철미하게 성공이 뒤따라 다닌다. 그뿐만 아니다.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가 이만큼이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프로축구 30년 역사에 프로구단 ‘최초’의 여성 CEO가 된 임은주 사장의 얘기다.

강원FC에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했다. 강원은 지난 5월 춘천 미래컨벤션 웨딩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남종현 (주)그래미 회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새 대표이사에 한국인 1호 여성 국제심판 출신의 임은주 을지대 교수(여가디자인학과)를 선임했다.

프로축구계는 물론이고 범위를 넓혀 한국 프로 스포츠 전체에서 여성 CEO가 탄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졌다. 여성의 입지가 과거에 비해 커졌음에도 프로구단의 경영 일선은 금녀의 벽이었던 게 사실이고, 적당한 인물을 찾기도 힘들었다. 심판인 출신으로 은퇴 이후 을지대에서 교수직을 수행해 온 그가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여성이 프로축구단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실험이자 신선한 반전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동시에 어깨가 무거운 것도 사실이다. 남종현 전 대표이사의 사임 이후 강원은 반년 가까이 수장 없이 구단 살림을 꾸려왔다. 그 만큼 걱정도 많고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하지만 직접 만난 임은주 사장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그 어떤 걱정을 안고 있지 않은 채 말이다.

이제 '최초‘의 여성 CEO가 됐다. 원래 최초라는 타이틀은 절대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고충들이 있었나?

고충이라고는 표현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나에게 강원의 CEO직은 또 다른 도전이었다. 2011년 8월경에 강원에서 첫 번째 프로포즈가 왔다. 당시 강원 측에서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을 추천해달라는 요구였는데, 그것이 강원과의 첫 인연이었다. 당시에는 내가 너무 외국생활을 빈번히 하던 중이라 제대로 된 답변을 못 주고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 또 다시 프로포즈가 왔다. 이름은 언급할 수 없지만 아주 유명한 축구인중 한 분이 나를 강원 이사회에 추천한 것이다. 그분 또한 워낙 축구판에서 영향력이 있는 분이고, 당시 나는 구단 경영과 관련된 일은 꿈꿔본 적이 없었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당시 강원이 안고 있었던 최악의 재정상태다. 원래 프로는 밖에서 보는 것과 실재는 차이가 난다고는 하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강원의 재정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사실 나는 최악의 상태를 좋아한다. 생각해보라. 내가 만약 ‘잘 차려진 밥상’에 들어 왔다면 나는 ‘낙하산’ 혹은 ‘꼭두각시’ 밖에 안 됐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최악의 조건이 나를 움직였고, 이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강원의 재정 상태를 ‘최악’이라고 표현했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였나?

최악이라고 해서 강원의 재정을 무조건 빈곤하다고 표현할 수는 없다. 다만 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느낌이었다. 난 인생을 살아오면서 처음부터 좋은 환경에서 일을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강원의 재정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쉽게 풀 수 있는 그것이었다. 부서 간 소통의 부재, 적절치 않은 업무 분담으로 자금이 새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업무 포인트를 잡는 것이다. 요즘은 진단만 잘 집어내고 처방만 잘하면 웬만한 병들은 다 고칠 수가 있다. 내가 바라본 강원의 재정 상태는 ‘최악’이기는 했지만 쉽게 풀어낼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최악’이었다.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고 동의한다. 그런데 너무 이상적인 방안이 아닌가? 부서간의 소통을 제외하고 더 구체적인 방안은 없는가?

말로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직접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2-3달만 기다려봐라. 그 시간 안에 좋은 결과물을 내서 강원의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겠다. 하지만 그 방법은 다른 ‘기업 구단’들과는 다른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자금력을 따라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강원은 기업 구단과는 다른 새로운 무기가 있다. 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해하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강하다. 많은 외국 생활을 통해 외국 축구인들도 설득했는데, 한국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무엇이 문제가 있겠는가. 그것도 축구 열정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강원도 사람들을 말이다. 나는 중소기업 뿐 아니라 작은 산하 단체, 교육 기관들을 직접 발품 팔아 다니며 직접 투자처를 만들 것이다.

강원 도민들을 또 하나의 강원FC로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고, 발품을 팔며 직접 접촉하는 임은주식 ‘스킨십 마케팅’은 분명 타 구단과는 다른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그런 선순환이 되면 최근 겪었던 강원 선수단의 임금체불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강원은 최근 또 임금체불을 겪었다. 4월 임금이 예정보다 열이틀 늦게 입금됐다. 지난해 9월 임금체불은 '보릿고개'였다면, 올해는 이러한 문제가 시즌 초부터 발생해 더욱 우려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상황을 잘 들여다보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메인스폰서인 ‘하이원리조트’의 지원금 40억 원이 다 들어오지 않고 3월까지 절반만 들어 온데다 지난해 미지급된 선수단 수당을 올 초에 해결하느라 재정 압박에 몰린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강원에 돈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급할 돈은 있는데 후원사와의 소통의 부재가 문제였던 것이다.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줄 거 다주면서 이런 안 좋은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것이 말이다. 구단이 살고, 제대로 된 시스템이 돌려면 빠른 결정과 정확한 소통은 필수다.

내가 사장을 맡기로 했으니 이제는 철저한 각자의 업무 분담과 빠른 결정으로, 돈을 주고도 욕먹는 그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


만약 임은주 사장을 처음 보는 이가 있다면 마치 강원의 사장이 되기 위해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렇다면 이전부터 축구 행정가로서의 꿈이 있었던 것인가?

구단주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 갔을 때부터 들었던 생각이다. 미국 여자 프로축구는 많은 마케팅 자본이 없이도 쉽게 자리 잡을 수 있다. 아직 좁기 만한 한국 여자 축구판에서 뛰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아이들에게 더 넓은 시장에서 경험을 쌓게 해주고 이후에도 축구 행정가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렇게 막연한 생각은 한 적은 있었지만 국내 구단의 사장이 될 줄을 꿈에도 상상을 못했다. 워낙 바쁘게 살아왔기도 했고, 이리저리 많은 업무를 하고 있어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이렇게 해왔던 일들이 모두 강원 사장이 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귀결된 것 같다. 사람은 미래에 놓일 점(사건)들을 연결할 수 없지만, 지나간 일들의 점(사건)들은 연결해 볼 수 있다. 그동안 바쁘게 지내며 내가 선수로서, 심판으로서 더 나아가 기업을 경영하며 얻었던 경험들이 강원의 이사회가 날 사장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된 것 같다.

미국 유학이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다. 미국 유학 당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나?

말로 하려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사실 미국 유학을 갔을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Hello', 'Thank you'가 고작이었다. 그저 자신감 하나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첫날부터 고생길이 열렸었다. 당시 나는 보스턴 공항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영어를 워낙 못했던 나였기에 비행기를 갈아탈 때 내가 해야 할 말을 손바닥에 읽기 쉽게 한국말로 써놨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당시 날씨가 유난히 더웠고, 땀이 비 오듯이 흘러 손바닥에 쓴 글들이 땀에 다 지워지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리저리 비행기를 탈 방법을 찾아봤지만 결국 비행기를 놓치게 됐다. 더 웃긴 것은 이런 일이 2번이나 더 반복되고 나서야 새로운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이런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미국이 ‘기회의 땅’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미국에서 회화 실력을 높이기 위해 학원을 다녔는데 당시 나를 가르치던 분의 모교에서 코치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난 심판 자격증 1급을 갖고 있었는데, 이게 미국에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학원 선생님의 소개로 난 코치 뿐 아니라 초.중학교의 심판직도 겸하고 있었다.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당시 대한 축구협회에 연락해 “시카고 협회에 내가 1급 심판이라는 증명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미국에서 내가 갖고 있는 1급 심판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내가 미국에서 A매치 심판을 봤던 경험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내 미국 유학 생활은 서툴렀던 ‘영어 실력’으로 시작은 미약했을지 몰랐으나, 그 끝을 창대하게 만들어줬던 밑거름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준비된 사람만이 꿈을 이루고 성공을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제 임은주 사장은 새롭게 떠오르는 여성들의 희망이다.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일생을 통해 제시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미친 도전, 끝없는 열정, 그리고 굳건한 정신이다. 이미 말했지만 내가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제대로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한 것은 없었다. 항상 상황은 안 좋았고, 해결해 낼 수 있는 가능성도 적었다. 난 돈도 없었고 무엇 하나 준비된 것이 없었기에 정신적인 무장이 제일 중요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체력이 좋기에 가능한 것들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체력이 아니다. 바로 ‘할 수 있다’는 정신력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성공 여부는 선천성과 후천성이라는 두 개의 히든카드로 이뤄져 있다. 선천적인 환경이 좋지 않다면 남은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인생의 역전을 꿈꾸면 된다. 세상에 죽어도 안 되는 일은 없다. 확률 1%의 불확실한 도전과 무모함이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든 것 같다. 그 어떤 누구도 불가능은 없다. 미친 도전정신과 끝없는 열정, 그리고 굳건한 정신만 있다면 말이다.

사진= 김재호, 강원 FC



Today 메인 뉴스
  • print
  • list

 

이슈! 있슈?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