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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역사

1950s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勃發)한 이후 다시 월드컵이 열리기까지는 12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했다. FIFA 회장 줄 리메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혹시라도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독일 점령군에게 빼앗길까봐 프랑스 자택 침대 밑에 숨겨 놓았다는 설(說)도 있다. FIFA는 1946년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총회에서 브라질을 제 4회 대회 개최국으로 결정했다. 당시 월드컵 개최를 희망한 유일한 나라가 브라질이었다. 당초 대회는 1949년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사정상 다시 한번 1년이 연기가 됐다. 브라질 정부는 이 대회를 위해 리오데자네이로에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을 건설하는 등 총력을 기울였다. 이 스타디움의 공사는 1948년에 시작됐는데 이름은 근처의 작은 강 이름에서 딴 '마라카낭'으로 지었다. 4회 브라질 월드컵은 지금까지 유일하게 결승전이 치러지지 않은 대회기도 하다. 이 대회는 13개국을 4개 조로 나눈 후, 각 조 1위 팀이 결승 리그를 치르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1조와 2조는 4개국, 3조는 3개국, 4조는 2개국이 되는 기형적인 편성이었다.

또 이 대회에는 사상 처음으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가 참가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나 뜻밖에도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미국에게 0-1로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한편 결승 리그 최종전은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결승 리그 경기 종료 9분 전 브라질에게 악몽이 닥쳤다. 우루과이의 기야에게 역전골을 허용한 것이다. 그 순간 20만 명 이상이 들어찬 거대한 마라카낭 스타디움에 정적이 흘렀다. 다급해진 브라질은 총공세에 나섰으나 전원 수비를 펼친 우루과이 수비를 뚫지 못하고 결국 종료 휘슬이 울렸다. 믿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하자 브라질 관중 몇몇이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고 이후에 자살자도 나왔다. 대회 득점왕은 9골을 넣은 브라질의 아데미르가 차지했지만 빛바랜 개인 타이틀에 불과했다.

1954년에 치러진 제 5회 월드컵은 세계 2차 대전 기간 동안 중립국이었던 스위스에서 치러졌다.1 6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는 1차 리그에서 시드를 받은 2개국과 시드를 받지 않은 2개국이 맞붙어 조 1, 2위를 결정하고(승점이 같을 때에는 플레이오프), 각 조 1위팀과 1위팀, 2위팀과 2위팀이 준준결승전을 치루는 변칙적인 방식으로 치러졌다. 남미에서는 전대회 우승국인 우루과이와 브라질이 참가했고 아르헨티나는 불참했다. 아시아 대표로는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다. 대회 우승은 제프 헤르베르거 감독이 이끄는 서독이 차지했다. 당시 서독은 50년대 세계 축구계를 지배하던 헝가리를 제치는 이변을 연출하며 첫 월드컵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한편 월드컵이 진정한 '국가 대항전'으로서의 체계가 잡힌 것은 1958년에 치러진 제 6회 스웨덴 대회 때부터다. 월드컵이 TV로 중계된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또 스웨덴 대회에서는 축구황제 펠레가 17세의 나이로 세계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기존의 WM포메이션이 아닌 새로운 4-2-4 포메이션을 선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미드필더 디디, 지토, 공격수 쟈갈로, 바바, 가린샤, 펠레 등이 펼친 공격 축구는 상대팀 수비진을 무력화 시키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