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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역사

1980s1974년 브라질 출신의 주앙 아벨란제가 제 7대 FIFA 회장에 취임하면서 월드컵을 더욱 확대시키고, 아프리카와 아시아권 나라의 출장권을 늘리겠다고 공약한 대로 1982년 제 12회 스페인 대회는 참가국이 과거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어났다. 아울러 대회 방식도 바뀌었다. 4개국 씩 6개 조로 나뉘어 1차 리그를 벌인 뒤 각 조의 1, 2위 팀이 2차 리그에 올라 다시 3팀 씩 4개 조로 나뉘어 경기를 치룬 후, 조 1위 팀이 준결승전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오늘날의 월드컵과 비슷한 운영체계를 갖췄다.

스페인 대회는 무더운 날씨 속에 치러졌지만 수준 높은 경기가 많았고 특히 1978년 아르헨티나 대회를 통해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린 파올로 롯시, 지코, 칼 하인츠 루메니게 등이 각 팀의 에이스로서 대회 분위기를 끌어 올리는데 주역 역할을 했다. 또 이탈리아와 서독의 결승전은 1982년 7월 11일 현지 시간으로 저녁 8시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는데 이날 관중은 9만 명이 넘었고, VIP석엔 스페인 판 카를로스 국왕 부부와 이탈리아의 산드로 페르티니 대통령, 서독의 슈미트 수상 등이 자리해 화려함을 더 했다. 이 날 경기서 이탈리아는 경기 종료 7분 전 브라이트너가 1골을 만회하는데 그친 서독을 3-1로 누르며 우승컵을 거머쥐었는데 자국 개최대회였던 1934년 대회와 1938년 프랑스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래 무려 44년 만의 우승이었다.

한편 1986년 대회는 원래 남미의 콜롬비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콜롬비아는 자국의 경제사정이 악화되면서 개최권을 반납하게 된다. 그러자 멕시코, 브라질, 미국 등이 개최국으로 입후보 했고 결국 멕시코가 개최지로 최종 결정됐다. 1970년 대회 이후 16년 만에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된 멕시코였지만 실상은 콜롬비아와 마찬가지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대회 1년 전 수도 멕시코시티에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대회 개최가 의문시 됐는데 우여곡절 끝에 예정대로 대회가 치러졌다. 당시 멕시코 대회의 경제적 기반은 유럽 국가들의 텔레비전 중계 방영권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1970년 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경기들이 한낮에 치러졌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무려 32년 만에 본선 대회에 출전한 한국은 당시 서독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스트라이커 차범근을 불러 들이는 등 최강의 멤버로 이 대회에 임했으나 정보력 부재와 선수들의 국제 경기 경험 부족 등 많은 약점을 들어내며 1무 2패로 조별 예선 탈락했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전에서 박창선이 월드컵 사상 첫 골을 기록했고, 불가리아와는 난타전을 전개한 끝에 김종부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전에서는 전반전 알토베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후반전 최순호가 통쾌한 중거리슛으로 동점골을 만들며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그러나 이후에 알토베리에게 다시 1골을 내주고 조광래의 어쩔 수 없는 자책골까지 헌납하면서 1-3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종료 직전 최순호의 헤딩 연결을 받은 허정무가 1골을 더 만회하는데 그쳤다.

84년 대회 결승전은 아르헨티나와 서독의 대결이었다. 이 날 양팀은 90분 동안 스릴 넘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아르헨티나는 22분과 55분에 브라운과 발다노의 골로 2-0으로 앞서 나갔다. 하지만 끈기의 서독은 73분과 81분에 얻은 두 차례의 왼쪽 코너킥 찬스를 루메니게와 루디 푈러가 득점으로 연결 시키며 2-2를 만들었다. 그러나 3분 뒤 하프라인 부근에서 마테우스의 마크를 받고 있던 마라도나가 서독 수비진의 빈 틈을 발견하고 부루차가에게 침투패스를 해 줬고 이 볼을 잡은 부루차가가 단독으로 치고 들어가 결승 골을 뽑아냈다. 부루차가의 골이 터지자 마라도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빈곤과 지진의 위험 속에 진행된 이 대회는 마라도나의 환상적인 플레이로 모든 불안을 감싸 안을 수 있었다. 또한 "중남미에서 열리는 대회는 남미 국가가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아르헨티나에 의해서 재확인 됐다. 한편 이 대회 8강전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의 경기에서는 마라도나가 발이 아닌 손으로 골을 넣는 '신의 손' 오심논란이 발생해 영원히 축구역사에 기록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