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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역사

1990s1934년 무솔리니 정권 하에서 제 2회 대회를 개최했던 이탈리아가 56년 만에 다시 한번 1990년 월드컵 개최의 기쁨을 누렸다. 1934년, 1938년, 1982년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는 이 대회에서도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우승에 도전했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는 대회 2연패를 노렸다. 또한 'AC밀란 3총사' 뤼트 훌리트, 마르코 반 바스텐, 프랑크 라이카르트의 네덜란드와 카레카를 앞세운 브라질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최후의 승자는 서독이었다. 한편 이 대회에서도 아프리카의 돌풍이 거셌고 선봉은 카메룬이었다.

한편 한국이 속해있던 E조에서는 스페인, 벨기에, 우루과이가 1, 2, 3위로 16강에 올랐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무패로 통과하며 본선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킬 걸로 예상됐던 한국은 3전 3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했다. 첫 경기인 벨기에전에서 졸전 끝에 0-2로 완패한 한국은 스페인에게도 1-3으로 패했다. 이날 한국은 황보관이 통렬한 35미터 중거리슛을 성공시킨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한국은 기대했던 '아시아의 삼손' 김주성이 벨기에, 스페인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우루과이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골키퍼 최인영의 경이적인 선방과 더불어 김주성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선전했으나 종료 직전 다니엘 폰세카에게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사실 당시 이 대회에서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좋은 플레이를 펼친 선수는 다름아닌 막내 홍명보였다. 당시 고려대 4학년이었던 스위퍼 홍명보는 3경기 모두 풀타임 활약하며 안정된 플레이를 펼쳤다.

90년 대회에서 2회 연속으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았던 한국 대표팀의 가장 큰 패인의 원인은 정보 부족과 시차 적응 실패로 분석된다. 대회 참가국 대부분이 3-5-2 포메이션에 압박축구를 구사했지만 한국은 이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축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첫 경기를 불과 6일 앞두고 현지에 도착하는 바람에 선수들이 시차 적응에 실패하면서 컨디션 난조도 피할 수 없었다.

또 1984년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으로 서독과 아르헨티나의 결승전이 벌어졌는데 서독이 카니자를 비롯해 주전 선수 4명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 하지 못한 아르헨티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끝에 후반전 44분 브레메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승리를 거뒀다. 이 대회에서 줄곧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뛴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매 경기 고군분투했지만 1986년 대회 때와 같은 화려한 플레이를 구사하지 못했다.

1994년 대회는 세계 제 1의 스포츠 대국이면서 축구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개최됐다. 또 1990년 대회에서 월드컵 경기들이 사상 최저 득점률을 기록하자 FIFA는 이 대회부터 1차 리그에서 이긴 팀 승점을 종래의 2점에서 3점으로 변경해 공격 축구를 유도했다. 1970년 멕시코 대회 이후 24년 만에 결승전에 진출한 브라질은 당시 상대국이었던 이탈리아와 다시 한번 월드컵 우승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전후반과 연장까지도 승부를 가르지 못한 두 팀은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하게 되는데 월드컵 결승전에서의 승부차기는 이때가 사상 처음이었다.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는 로베르토 바지오였다. 만일 로베르토 바지오가 실축을 하면 브라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주심의 휘술이 울리자 로베르토 바지오가 천천히 달려가 오른 발 슛을 날렸고, 볼은 골문이 아닌 크로스바 위로 날아가며 브라질의 통산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이 확정됐다.

20세기 최후의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개최됐는데 이 대회부터 참가국이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늘어났다. 이 대회는 4팀 씩 8개 조로 나뉘어 조별 예선을 벌인 뒤 각 조 1, 2위 팀이 16강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FIFA는 이 대회부터 양팀이 연장전에 들어갔을 때 먼저 득점을 올리는 팀이 승리하는 일명 골든골 제도를 도입했다.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이 속했던 E조에서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가 1승 2무로 조 1위를 차지했다. 벨기에, 멕시코와 0-0으로 비긴 네덜란드는 한국과의 경기에서 베르캄프, 오베르마스를 공격 선봉으로 내세워 맹폭을 가하며 5-0으로 대승했다. 한국은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전반전 27분 노정윤이 얻어낸 프리킥을 하석주가 왼발 인프런트킥으로 골을 성공시키며 기세를 올렸다. 하석주의 골은 한국의 월드컵 출전 사상 최초의 선제골이자 월드컵 통산 10번 째 골이었다. 그러나 2분 후 하프라인 부근 왼쪽 측면에서 하석주가 멕시코의 라몬 라미레즈를 백태클로 쓰러뜨렸고 오스트리아의 귄터 벵크 주심은 가차없이 하석주에게 레드 카드를 뽑아 들었다. 대회 개막 전에 조직 위원회에서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백태클을 가했을 시에는 무조건 퇴장시키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하석주가 새로운 룰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후반전 들어서 한국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멕시코에게 연속으로 3골을 허용하며 1-3으로 역전패 했다.

한국은 두 번째 경기에서 네덜란드에게 0-5로 대패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차범근 감독이 현지에서 경질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혼란에 빠진 한국은 벨기에와의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를 김평석 코치와 정성진 트레이너 체제로 치렀다. 이날 한국은 전반전 7분 닐리스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전 71분 유상철이 동점골을 뽑아내며 1-1 무승부를 이뤘다.

한편 대회 우승컵은 또 한 번 개최국이 안게됐다. 결승전은 7월 12일 현지 시각 밤 9시에 파리 생드니 스타디움에서 벌어졌는데 결승에 오른 브라질은 에이스 호나우도가 결승전 당일 낮 숙소에서 실신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심장을 포함한 종합적인 검사를 받는 상황을 겪게 된다. 결국 프랑스는 한 명이 퇴장당하는 수적열세 속에서도 브라질을 상대로 3-0 대승을 거두며 자신들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프랑스는 이 대회에서 블랑, 데사이, 튀랑 리자라쥐로 이어지는 포백 수비진이 참가국 가운데 최강이었고, 주장이자 수비형 미드필더인 데샹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갈채를 받기에 충분했다. 지단은 조별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긴 했지만 이 대회를 통해서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