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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사 재발견](5)‘조선의 홈런왕’ 이영민, 『회심(會心)』 속에서 다시 보다

기사입력 : 2022.12.07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이영민(1905~1954), 그는 ‘조선의 홈런왕’이었다. 일제의 식민시대에 이영민은 조선의 자랑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종합 월간지였던 『동광(東光)』 제29호(1931년 12월 27일 발행)는 ‘조선이 낳은 10대 운동가’를 선정, 발표했다.

『동광』이 발표한 ‘조선운동가 10인’의 첫 손에 꼽힌 이가 바로 야구의 천재로 불렸던 이영민이었다. 이영민은 14명의 선정위원 모두로부터 표를 얻어 마라톤의 김은배(13표)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동광』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영민과 김은배의 뒤를 이어 김복림(여자정구. 11표), 황을수(권투. 10표), 유약한(육상 투원반. 9표), 현금녀(여자육상 단거리. 9표), 함용화(야구. 6표), 노승현(육상 투창), 김원겸(축구. 이상 5표), 최재은(빙상. 4표), 장원진(정구. 3표), 김윤근(씨름), 이혜택(농구), 윤명선, 엄동원(이상 럭비), 김명수(육상), 강락원(유도. 이상 2표)이 이름을 올렸다.

이영민은 1920~1930년대 『매일신보』, 『조선중앙일보』, 『동아일보』같은 신문은 물론 『동광』이나 『조광(朝光)』 같은 잡지 등에도 단골손님처럼 자주 등장한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에 운동선수로서 이영민만큼 매스컴을 많이 탄 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이는 이영민이 야구는 물론 육상과 축구대표 선수로도 활동한 이력과도 무관치 않다. ‘만능’과 ‘최고’ 선수라는 인상이 깊었던 그는 그야말로 ‘인기’를 끌었던 스타였기 때문이다. 경성운동장(옛 동대문구장) 개장(1926년) 이후 동양인 1호 홈런(1928년 6월 8일)을 기록했던 이영민은 1934년 11월엔 조선선수로는 유일하게 일본야구올스타로 뽑혀 미국 메이저리그 선발팀과 경기를 한 이력도 있다.

1905년 경북 칠곡에서 태어난 이영민은 대구계성학교, 배재고보와 연희전문을 거쳐 1936년 식산은행 야구선수를 끝으로 31살의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그의 선수생활을 돌이켜보는 수기(手記)가 실린 것은 『조광』 1937년 5월호(제3권 5호)였다.

‘은퇴하는 명투수-야구생활 15년기(記)’라는 제목을 단 이영민의 은퇴수기(이하 표기와 맞춤법을 현대어로 바꿈)는 7쪽에 걸쳐 ‘출발-무대는 연전으로-홈런왕-식산은행의 야구선수로-일본에 원정-반생에 잊을 수 없는 경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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