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母모시고 혼전동거·가출→대마초 파동·별거까지..정훈희’s 파란만장 인생史 [종합]
입력 : 2023.02.0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수형 기자]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가수 정훈희가 출연, 혼전동거 중 남편 김태화와 갈등으로 가출까지 했던 과거를 언급, 이후 대마초 파동으로 7년간 방송출연 정지까지 당했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전했다. 게다가 현재 김태화와는 각방에서 각집살이 중이라고도 고백해 눈길을 끌었다. 

3일 방송된  방송된 채널A 예능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가수 정훈희가 그 동안 못 다했던 이야기를 전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반세만의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는 가수 정훈희였다. 가요계 전설의 디바인 정훈희, 시작부터 엄청난 아우라로 풍겼다. 정훈희는 17세인 1967년도 안개로 데뷔, 일약스타덤에 올랐다. 도쿄, 아테테네, 칠레 등 국제 가요제 6관왕으로 원조 한류스타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영화 ‘헤어질 결심’ OST로 나온 ‘안개’란 곡은 역주행, 이 곡은 세계적 거장 박찬욱 감독의 영감을 준 곡으로 유명하다.

오은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TV로 ‘국제 가요제’를 방영, 광활한 무대로 관객을 압도했다”며 1975년 칠레 국제가요제에 선 정훈희를 떠올렸다.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무인도’를 소화했던 정훈희. 지구 반대편에서도 빛을발하며 3위에 입상에 인기가요상, 편곡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야말로 세계를 뒤집어놓은 한류스타.

어느 덧 56년차 가수가 된 정훈희가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최근 역주행으로 일상에서 변화를 느낀다는 정훈희.1세대 로커인 남편 김태화와 라이브 카페를 운영 중이라는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 첫인상에 대해 “이런 미친X”이라는 소문에 대해 “그렇게 노래한 사람 처음 봐, 미친 X 어디로 튈지 모른다”며 그만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했다. 그 당시 파격적인 무대 매너도 선보였기 때문. 정훈희는 “그런 남자라 그 매력에 빠졌다”며 러브스토리를 전했다.

그런 정훈희의 고민을 본격적으로 물었다. 정훈희는 “처음에 김태화라 사는 내게 이상하다고 해, 내가 이상한가? 싶더라”며“44년째 함께인 김태화와 각방 살다가 각집을 살고 있다”며 현재 별거 중이라고 했다. 주말에는 라이브 카페에서 만나 듀엣을 하고 있다는 것. 방송도 함께 출연한다고 했다.. 일명 별거부부의 비지니스 같다는 시선을 받는다는 것.

또 정훈희는 “여자 연예인 스캔들이명 치명적이던 시절 처음 혼전 동거로 3년 뒤 혼전 출산, 큰 아이를 낳았다, 혼인신고만하고 결혼식은 안 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당시 연애한다는 소문에 같이 산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1년 이상 살면 장 지진다고 말 할 정도 너나 잘 살아라고 한다”고 덧붙였다.

혼전 동거를 공개한 방송을 묻자 정훈희는 당대 최고 인기 프로였던 원조 토크쇼 ‘자니윤쇼’에 출연했다고 했다.당시 결혼에 물었을 때 사랑해서 동거부터 시작했다고 대답했다는 것. 이어 결혼식 없이 동거를 하게 된 계기를 묻자 정훈희는“데이트 해야하는데 갈 곳이 없어, 시선을 피할 데이트 장소가 필요해 친구 집에 빈방을 얻게 됐다, 우리 아지트였고 같이 있다가 여기서 자자! 그랬다”며 쿨하게 말했다.

정훈희는 “’미혼모 정훈희, 아들 낳았다’는 신문이 1면에 나와특히 여가수에게 치명적이던 시절”이라며 “무슨 자신감인지 가수가 노래 잘하면 되지 생각 노래가 자신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파격적인 행보를 걸었던 정훈희. 오은영은 “혼전 동거나 별거가 잘못된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질타를 받았던 시대”라며 결혼생활을 낱낱이 파헤쳐보기로 했다.

또한 현재 별거 중인 이유를 묻자 정훈희는 “각방쓰게 된건 집에서 저녁 되면 각자 생활을한다 김태화는 컴퓨터하고 난 책만 읽는다 그럴 바엔 각방쓰자는 생각”이라며 “이제 부산으로 가며 자연스럽게 별거하게 됐다모르는 사람은 왜 따로사냐 묻는데 가까운 사람은 저 부부가 편하게 살기 위해 사는구나 싶어 , 짜인 틀에 맞춰살 필요 없다”고 답했다.

정훈희에게 결혼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정훈희는 “사랑하니까 같이 있자는 생각으로 결혼, 출산 후엔 아이를 함께 키우는 친구였다”면서 “중년이 됐을 때는 동지, 노년의 부부는 전쟁터에서의 전우다”고 했다.또 현재 73세인 정훈희는 “ 우리가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몰라, 얼마전 나도 뇌혈전으로 쓰러져 응급실 실려갔다”며 “남편 김태화도 위암으로 위절제했다 삶이란 전쟁터에서 서로 내 전우를 지켜야하는 전우애가 생겼다”고 했다.

이에 오은영은 “별거가 아니다, 그건 통상적 의미”라며 “전우는 목숨을 지켜주는 끈끈한 사이, 별거 아닌 분거 부부다 이유가 있어서 떨어져사는 기러기, 주말 부부등이 해당된다”고 했다. 하지만 분거부부일지라도 갈등은 있을 터.오은영은 “결혼생활 중 두 번의 큰 갈등기가 있다”며 “대 환장기와 신혼기”라고 했다. 신혼시절은 결혼이 곧 현실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하기 때문. 이혼율이 높은 시기도 결혼 4년차라고 했다.

정훈희에게 신혼 갈등이 있었는지 묻자 그는 “동거 시작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 결혼식. 혼인신고 전부터다”면서 동거시기부터 부부갈등이 이어졌다고 했다. 정훈희는 “타협이 안 되는 남편.  그만 살아야하나 싶어 가출해서 절친 임희숙 집으로 갔다”면서 “나중엔 이틀 뒤 사과해서 다시 돌아갔다”며 그 후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이후 결혼 30년차인 중년 때 이혼율이 두 번째로 높다고 했다. 부부간 소통, 중년 우울증, 자녀와의 갈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안정된 노년기가 아닌 황혼이혼으로 이어질지 갈린다는 것. 정훈희는 “갱년기 우울증이 갈등이 된 적 있다”며 중년기를 언급, “50대 중반 갱년기가 심해졌다, 다 싫더라”면서 “부모도 자식, 친구, 남편도 다 싫어, 아무 이유없이 싫었다, 나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며 그렇게 갈등이 시작됐다고 했다.

정훈희는 “어느 날 남편이 ‘우리 이혼할까’ 내가 그렇게 보기 싫냐고 묻더라”며 심각했던 상황을 전했다. 정훈희는 “그때 내가 여보 미안하다고,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해,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며 솔직한 고백으로 남편을 붙잡았다며 그때의 아픔을 돌이켜봤다.

또한 남편에 대해 정훈희는 “목소리나 음악스타일은 상남자인 성격은 깐깐, 쪼잔 그자체, 잘 삐졌다”며 “난 쿨한 편”이라며 성격이 정반대라고 했다. 부부의 성향이 확연히 차이가 있던 것.  미국 공연 중 남편 김태화를 두고 떠났다는 정훈희는 “남진과 하와이 공연을 떠난 우리 부부, 비행기 내리기 직전, 남편이 형들과 더 놀고가고 싶다고 해 보름 동안 얘기하길래 놀다오라고 했다”며 “굳이 같이 다니며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오은영은 정훈희 부부 특징에 대해 “서로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 부부, 서로가 자신에게 맞추기를 강요하지 않는다”며 상대의 생각, 취향, 관심을 그대로 인정했다는 것. 현재 별거도 오래 함께 잘 살기 위한 슬기로운 분거생활을 찾은 것이라며 “현명한 선택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분거생활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니 정훈희는 정서적 개방송이 높다”고 덧붙였다.

오은영은 정훈희에 대해 “현재는 워너비 롤모델이지만 활동하던 시절엔 개방적인 여성가수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고언급,정훈희는 “7년이란 세월 노래를 못했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방송출연 정지됐다는 것.1975년도 대대적인 연예계 대마초 단속을 언급했다. 대마초를 하지 않았음에도 당시 분위기에 휩쓸려 의혹을 받았다고 했다.

정훈희는 “당시 인기를 얻은 노래 ‘무인도’ 갑자기 노래가 뜨니 축하해준다고 파티를 열어줬고 노는 친구들이 그렇게 노는지 몰라, 난 혐의없음올 훈방 조치 받았다”면서 “’꽃밭에서’ 1979년 칠레 가요상을 받고 왔는데”라며 떠올렸다.또 정훈희는 “기자가 임의로 작성한 이별기사로 2년간 방송정지, 헤어진 것도 아니다”며 “사회정화운동 때문에 그랬다 총 7년을 노래 못 했다”고 했다.

정훈희는 “그렇게 신곡이 없었다, 그리고 7년 뒤 ‘꽃밭에서’란 곡을 만났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게 작곡가 이봉조 선생님이 기다려준 곡, 다른 가수 러브콜도 거절하며 기다려줬다며 눈물, “’안개’란 곡으로 55년이 지나 또 이런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이봉조 선생님이 저에게 은인”이라 말해 뭉클하게 했다.

그럼에도 7년의 상처를 극복한  힘에 대해 오은영은 “개인이 갖은 심리적 내적 자원이 많으시다”며 언급, 정훈희는 아버지의 교육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이름 정훈희에 대해 ‘나라의 훈풍을 몰고올 여성’이라 소개했다. 아버지의 쿨한 성격도 물려받았다는 것.위기를 극복한 힘에 대해 오은영은 “아버지에게 받은 적극적인 정서적 지원이 많다”고 말했다.

정훈희는 “아버지가 ‘엄마처럼 살래?’ 물어, 집안 모든 일 혼자하며 힘든 어머니를 봐, 아버지가 여자가 능력있으면 네가 원하는 일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5,6세 때 노래를 가르쳐주셨다”며  “어린 나이에 트로트는 물론 팝송, 재즈도 가르쳐 주셨다”며 그렇게 세계 무대에서도 겁이 없을 수 없던 이유를 전했다. 정훈희는 “아버지가 가수셨다”며 덧붙였다.

딸의 동거 소식을 들었을 때의 아버지 반응을 묻자 정훈희는 “‘태화가 좋나, 없으면 안 되겠나 물어, 그래 살아라’ 하셨다”며 “그때 나이가 29세, 30세”라며 “그 당시 늦은 나이 결혼이었다”고 덧붙였다. 오은영은 정훈희 아버지에 대해 “선진형 딸바보 아버지”라고 언급, 정훈희는 “가수될 때 ‘정훈희’ 이름을 바꾸자고 개명을 제안해, 근데 어린시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과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끝까지 정훈희란 이름을 지켰다”고 했다.

오은영은 정훈희에 대해 “새로운 자극을 잘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으며 독립이 강해, 자아강도도 높은 분” 이라며 “정서직 안정1위, 삶의 통창력을 가지신 분. 다만 너무 자아강도가 높으면 이상과 꿈도 높다”고 했다. 이에 정훈희는 “반성하는 것, 남편과 44년간 살며 손편지 써본 적 없어, 지금까지 말 한마디로 기념일을 챙겼다”며 반면 남편은 꼭 손편지를 써줬다는 것. 이어 ‘남편에게 잘했나’ 어느날 의문이 들었다는 정훈희는 “내 표현도 필요했구나 싶다”며 한결같이 잘해준 남편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오은영은 은영매직에 ‘사랑할 결심’이라며 “자신의 삶을 사랑한 정훈희, 앞으로 더 견고하고 단단하게 사랑하시길 바란다”며 응원했다. 정훈희는 “앞으로 더 표현하고 살겠다”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싶어, 이시간을 빌려 ‘태화오빠 미안해, 표현력이 없어서 미안하다, 내가 잘할게’라며 영상편지를 전했다. 모두에게 귀감이 된 정훈희였다. /ssu08185@osen.co.kr

[사진]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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