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김민재, 이만기 이후 40년 만에 등장한 큰 씨름꾼…활기 띠는 모래판
입력 : 2023.02.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지난 1월 24일 전남 영암체육관에서 열렸던 설날 장사씨름대회 백두급(140kg 이하)에서 1위에 오른 김민재(21. 영암군씨름단)의 등장은, 그동안 장기간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씨름판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좋겠다.

2002년생으로 스무 살을 갓 넘긴 김민재는 지난해까지 울산대에 몸담고 있다가 올해부터 영암씨름단 소속으로 뛰고 있다. 김민재는 이미 울산대 2학년 때인 지난해 강릉 단오대회 백두급 우승에 이어 한해를 총결산하는 천하장사대회에서도 천하장사 칭호를 얻어 두각을 나타냈고, 이번 설 대회 포함 3개 대회 연속 가장 무거운 체급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의 큰 씨름꾼 탄생으로 칭송을 들어 마땅한 성과였다.

김민재의 급성장은, 마치 40년 전 이만기(61)의 과정을 보는 듯하다. 이만기는 경남대 3학년 때인 1983년 4월 17일 장충체육관에서 민속씨름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치른 제1회 천하장사대회에서 쟁쟁한 고수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초대 천하장사로 탄생했다. 이만기는 이후 이준희(66), 이봉걸(66) 등과 더불어 이른바 모래판 ‘3이(李)’ 시대를 열고 민속씨름 융성기를 이끈 바 있다.

이만기 시대를 지나 민속씨름은 강호동→백승일, 이태현을 거쳐 장기간 부침을 겪었으나 이제 40년 만에 김민재라는 큰 씨름꾼의 등장으로 아연 활기를 되찾아가는 느낌이다.

김민재는 키 190cm, 평소 몸무게 145kg으로 당당한 체구를 갖추었다. 큰 덩치에 비해 몸놀림이 유연하고 빠르다는 평을 듣는 데다 들배지기 같은 큰 재간을 구사하는, 정통파 씨름꾼이다.

이준희 대한씨름협회 경기본부장은 김민재의 부각에 대해 “현재 랭킹 1위로 씨름판을 이끌 선두주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준희 본부장은 “언제 흐름이 바뀔지는 알 수 없지만 올해는 김민재를 이길 선수가 별로 없을 것”이라며 다만 “아직 장기전이나 연장전을 치러본 경험이 없어 앞으로 유심히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평가했다.

7년째 영암군씨름단 감독으로 팀을 지휘하고 있는 김기태 감독 또한 김민재가 ‘엄청난 재목’임에 틀림없다는 시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현역 시절 한라장사로 명성을 떨쳤던 김기태 감독은 “김민재는 대단한 재목이다. 앞으로 큰 선수가 될 것”이라며 “잘 지켜봐 주시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김 감독은 “(김민재를) 2년 전에 받으려고 했으나 울산대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올해부터 우리 팀 소속으로 뛰게 됐다. 고교 때부터 데리고 훈련을 같이했기 때문에 천하장사가 될 재목으로 잘 알고 있는 선수”라면서 “큰 씨름을 구사하는 데다 인성도 좋고 운동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특히 체력측정 평가를 보면 반사신경이나 스피드, 순발력, 민첩성이 육상선수보다 오히려 낫다.”고 칭찬에 입이 마를 지경이다.

김 감독은 그에 덧붙여 “김민재가 꿈꾸었던 영암씨름단에 입단한 만큼 앞으로 겸손하게 자리를 지켜갈 수 있도록 잘 지도하겠다.”고 다짐했다.(영암군 씨름단은 올해 설 대회에서 3개 체급 장사 자리를 휩쓸 정도로 명문 씨름단으로 떠올랐다)

김민재는 영암군 인근의 장흥 태생이다. 장흥군 관산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샅바를 잡기 시작, 구례중, 여수공고를 나왔다. 다시마 양식업을 하는 부모가 아들을 운동에 전념시키기 위해 일절 집안일을 거들지 못하게 하는 등 뒷바라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는 전언이다.

김민재는 “민속씨름에 거의 100% 적응이 됐다”고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남들보다 몸동작이 빠르고 순발력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상대 선수들이 앞으로 김민재의 씨름을 연구, 분석하고 달려들 것이어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물음에는 “대처할 자신이 있다.”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백두급 한계체중을 맞추기 위한 체중 감량에 대해서는 “원체 영암군 씨름단 숙소 밥이 하도 잘 나와서 걱정하지 않는다. (대회를 앞두고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닭가슴살 위주로 식단을 조절한다.”면서 “고기를 좋아해 소고기를 자주 먹는다, (한우로 유명한 영암 소고기를) 6, 7인분은 너끈히 먹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여서 (경기에 지면)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김민재. 자기반성이 철저한 만큼 그의 실수나 실패도 줄어들 것이다. 김민재는 설 대회 이후 2월 5일까지 고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다잡은 그가 올해 씨름판에서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를 걸어도 좋겠다.

민속 씨름판은 올해 MG 새마을금고가 팀을 새로 만들어 뛰어들면서 선수 쟁탈전이 뜨거워졌고, 모래판도 생기가 넘치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주변에서는 김민재 같은 재목감은 적어도 계약금 2억 원 이상 받았을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그만큼 최근 씨름판이 살아나고 있다는 증거다.

그와 관련, 김기태 감독은 “(김민재의)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밝히기 어렵다”면서도 “계약금은 3억 원 플러스 알파로 해달라”고 웃으면서 넌지시 말했다.

씨름판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는 있으나 지자체가 팀을 꾸리는 곳이 많다 보니 예산 조달 면에서는 애로가 많은 게 숨길 수 없는 실정이다. 씨름단 예산은 팀마다 편차는 있겠으나 연간 25억 원가량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태 감독은 “씨름이 국가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도 돼 있는 만큼 나라에서 적극 지원을 해주면 지자체 팀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의 유산을 잘 지켜나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정부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글. 홍윤표 OSEN 선임기자

사진. 대한씨름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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