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컵] 이회택·김태영, 방콕의 추억을 노래하다
입력 : 2012.01.1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방콕(태국)] 윤진만 기자= “그땐 정말 인기가 대단했지.”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김태영 올림픽 대표팀 코치는 태국 킹스컵 추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에 비해 적은 상금에 참가팀 수준도 오락가락한 태국 동네 잔치여도 축구에 울고 웃은 순간을 잊지 못한다. 1969년 2회 대회부터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할 당시 핵심 공격수로 활약한 이회택 부회장과 1998년 차범근 감독과 함께 한국의 아홉 번째 킹스컵 우승에 일조한 김태영 코치는 “킹스컵은 정말 인기가 많은 대회였다”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강산이 바뀌고 둘은 각각 올림픽팀 단장과 코치가 되어 다시 태국을 찾았다. 감회가 새롭다. 이회택 부회장은 축구 모임과 관련하여 수 차례 찾았을 뿐 1987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방문했을 때 이후로 공식 업무를 위해 찾을 기회가 없었다. 김태영 코치는 1998년 대회 이후 첫 방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주역에 2006년 현역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태국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회택 부회장과 김태영 코치는 킹스컵을 위해 각각 25년과 14년 만에 찾았다.

이들에게 많은 관중과 국내 팬들의 지대한 관심 말고도 킹스컵에 대한 추억이 넘쳐 흐른다. 이회택 부회장이 먼저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그는 당시 상황부터 설명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정부의 간섭이 심하고 외교 상황이 좋지 못해 여권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돈 많은 재벌도 해외에 나가기 힘든 세상이었다. 축구 선수는 별난 직업이었다. 국위 선양과 같은 번지르한 명분을 앞세워 비행기에 올랐다. 태국도 밟았다. 지금처럼 원정팬이 따라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출국했다가 얌전히 우승 트로피를 들고 오는 일을 3년 동안 반복했다.

축구 수준은 월등했다. 태국, 버마(현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이회택 부회장은 “우리 하기에 달려있었다. 한 번 해보자는 식으로 열심히 훈련하고 경기하면 무조건 우승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승이 좋은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었다. 이회택 부회장을 비롯한 선수들은 우승을 하면 금세 동기를 잃었다. 보상금도 없고 프로가 창설되지 않은 터라 대회를 마치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소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수 개월 만에 다시 모여 대회에 참가했으니 소풍 같은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월드컵에서 느낄 법한 사명감은 없었다. 퀸스컵, 메르데카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회택 부회장은 1971년 우승 후 16년 만에 킹스컵과 재회했다. 이번에는 포항 감독 신분이었다. 킹스컵은 국가뿐 아니라 프로 구단도 참여가 가능했다. 이회택 부회장은 이때 우승보다 더 뜻 깊은 시간을 보냈다. 박두익 전 북한 대표팀 감독과 친분이 있던 그는 킹스컵 참가를 위해 태국을 방문한 박두익 감독과 감독 대 감독으로 만났다. 포항은 예선에서 북한을 이기고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이회택 부회장은 더 중요한 것을 얻었다. 회포를 풀면서 서로의 이산 가족을 찾아주기로 약속하고 1990년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40년 만에 상봉했다. 킹스컵은 이회택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대회였다.



김태영 코치가 이회택 부회장의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라는 말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김태영 코치는 차범근 사단의 수비수로서 동계 훈련을 마치고 1998년 킹스컵에 참가했다. 포지션은 3-5-2 전술의 왼쪽 윙백. 김병지, 윤정환, 최용수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뛰며 태국, 덴마크, 이집트가 참여한 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김태영 코치는 “잔디 상태와 기타 환경이 힘들었다”면서 “이집트와의 결승전에서 내가 이동국의 골을 도왔다는 것이 생각난다”라고 밝게 웃었다.

14년 만의 방태 심정은 어땠을까.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길거리를 가득 메우던 툭툭(세 발 달린 오토바이)과 오토바이는 드문드문 보이고 고급 차량과 높은 빌딩이 그를 대신 맞이했다. “킹스컵 대회 당시 얼굴에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도 악어 지갑을 사러 나갔던 기억이 있다”는 그는 “태국이 많이 성장했구나”라고 몸소 느꼈다. 태국의 축구 실력도 동반 성장 했냐고 묻자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건물은 많이 높아졌는데 축구 실력은 조금 발전했다”라고 했다.

그 웃음 뒤에는 아쉬움도 숨어 있었다. 18일 덴마크전을 앞둔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김태영 코치가 뛰던 킹스컵팀은 1998년 대회에서 유일하게 덴마크에 1-2로 졌다. 김태영 코치는 “히딩크 감독이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은 유럽팀에 상당히 약했다. 파워에 밀리면서 비기거나 자주 졌고 때에 따라 승리했다”라며 당시의 덴마크 전력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면서 제자들이 15년 만에 찾아온 기회를 승리로 복수하길 바랐다.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척척해내는 선수들이 덴마크도 두려워하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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