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발롱도르] 보도자료 NO! 기자회견장서 싸우자
입력 : 2012.03.3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우리가 축구라고 부르는 스포츠는 그라운드 위에서만 펼쳐지는 게 아니다. 총 22명의 선수들의 각본 없는 움직임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벌어지는 일도 무시할 수 없다. 경기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의 움직임과 팬들의 관심 그리고 심판들까지 더해져야 온전한 축구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

그라운드 밖에서 벌어지는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축구’를 꼽으라면 바로 인터뷰다. 프로축구 감독과 선수의 의무 중에는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의무도 들어 있다. 감독과 선수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입버릇처럼 “팬이 없으면 프로축구도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관심을 끌지 못하면, 팬을 모으지 못하면 진정한 프로라고 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3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 기자회견은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다른 팀들이 질투가날 만큼 확실하게 멍석을 깔아주고,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까지 참석했는데, 수원 윤성효 감독과 서울 최용수 감독은 기자회견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양 팀을 자극할만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지만, 감독들은 평상심을 유지했다. 최 감독이 수원 구단 차원에서 만든 북벌 완장과 승점자판기 동영상을 보고 발끈 한 것이 전부였다. 윤 감독이 “서울도 일반 팀들과 같다”라고 말한 것과 최 감독이 “가족들과 남한 산성에 가서 갔는데 아이보고 가지를 꺾지 말라고 했다”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한 것이 기억에 남을 정도다.

한국 축구계가 선후배로 얽혀있고,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맥없이 끝났다. 가끔씩 보도되는 해외의 날 선 신경전이나 풍자 그리고 촌철살인(寸鐵殺人)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대방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가 용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입씨름을 벌이라는 것이다. 수사법과 풍자를 활용해서 서로 재미있게 놀면 된다.

‘스페셜 원’ 주제 무리뉴 감독은 독설가이자 촌철살인의 대가다. 그는 지휘법만 특별한 게 아니라 입도 특별하다. 인터 밀란을 이끌던 시절에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무리뉴는 단 한 번도 선수로 우승을 거둔 적이 없다. 우승을 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공격하자 “내 치과 의사는 단 한번도 치통을 겪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최고의 치과 의사”라고 반격을 가했었다. 기자회견의 정석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서울과 수원이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부터 보도자료를 통해 설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서울이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원에 신사적인 축구를 제안한다”라는 보도자료를 냈고, 수원에도 공문을 보냈다. 이에 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의 의견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서울은 오후 5시를 넘겨서 다시 한 번 반박 보도자료를 냈다.

권투 시합을 하라고 특설링과 카메라 그리고 기자들을 마련해 줬는데, 무대가 아닌 장외에서 주먹을 주고 받은 셈이다. 기자회견장을 마련해 주고 잔뜩 기다렸는데, 폭발음은 다른 곳에서 늦은 시간에 들려왔다. 이슈를 만들어주는 측면에서는 이것도 아주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간차로 맞붙으면 감정대립으로 번질 수 있다.

생각해보자. 보도자료가 아닌 기자회견장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더 큰 관심을 끌지 않았을까? 기자회견장은 공인된 씨름장이고 링이다.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장소다. 그라운드 위에서 90분 동안 경기를 치르듯 기자회견장에서도 입씨름을 벌이면 된다. 룰도 같다. 인신공격이나 욕설은 퇴장이다.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이 왜 인기를 끌면서 한국축구에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최 감독은 기자회견장을 가장 잘 이용한 한국 감독이었다. 지난 2011시즌 K리그 개막기자회견에서 선배인 정해성 전남 감독에게 “성격이 X랄 맞다”라고 해서 분위기를 끌어올렸었다. 모두 즐거워했다. 이제 기자회견장에서 신나게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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