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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말을 하지, 말을 하지”…한 맺힌 어머니의 통곡

기사입력 : 2012.04.16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인천] 윤진만 기자= “아이고….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15일부터 16일 발인까지 인천시 동구 한 의료원 장례식장에는 故 이경환(24) 모친의 통곡이 끊이질 않았다. 꽃다운 스물 넷에 가장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들이, 승부조작 연루 사건 후 1년 가까이 받았을 외로움과 심적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빈소를 찾은 유가족과 지인들도 먼저 떠난 이경환을 향해 원망과 미안한 감정을 뒤섞어 가며 영정 사진을 쳐다봤다. “믿기지 않는다”며,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며. 하지만 14일 오후 2시 인천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투신한 이경환은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죄송하다는 내용의 짧은 유서와 상처만 남긴 채.

▲ “미친 듯이 축구가 하고 싶다”
이경환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겉보기에 멀쩡한 삶을 살았다. 지난해 6월 승부조작 사건 여파로 선수자격 영구박탈 및 직무자격 영구상실, 보호관찰 3년에 사회봉사 300시간의 징계를 받고서 일용직을 하며 살림을 꾸렸다. 작년 부친을 여의는 아픔이 더해져 힘들 법했지만 홀어머니를 모시고 꿋꿋하게 살았다. 틈 나면 바람을 쐬러 다녔고, 축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종종 아마추어 팀과 어울려 축구를 했다. 겉으론 “축구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다”고 자책했지만, 속으론 “미친 듯이 축구가 하고 싶다”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 12일경 한 지인과 풋살 대회 출전을 논할 정도로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는 단 한 번의 결정을 행동으로 옮겼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선수 A는 “그 동안 꾸준히 연락했다. 징후라고 말할 게 없었다. 평소 성격이 털털하고 씩씩한 녀석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심정은 이해한다. 작년에 안 좋은 일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이 닥쳤다. 얘기를 해보면 힘들어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경환이라면 충분히 견딜 줄 알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대전 시티즌에서 이경환을 지도한 왕선재 감독도 “선생보다 먼저 간 못난 녀석”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이경환은 모친과 여자친구에게 단 한번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더 큰 충격을 줬다. 홀어머니를 놔두고 다음 달 현역 입대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홀로 고민했다.

▲ K리거의 자격을 포기한 순간…
외로움. 어머니는 그 부분이 가장 안타까웠다. “말을 하지. 엄마한테 말을 하지.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라고 통곡한 이유다. 지인들도 이경환의 우울증을 염려했다. 평생 한 곳만 바라보고 달려오던 축구 선수에게서 공과 축구화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진 것만큼 상실감을 주는 건 없었다. 이경환은 축구와 담을 쌓고 입대, 사업과 같은 새로운 인생을 사는 승부조작 가담자와 다르게 축구공을 발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미련은 더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한 지인은 “경환이가 대학교때부터 프로에 입문하기까지 정말 힘든 시기를 많이 겪었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온 프로 세계에서 한 순간에 도태됐다고 생각해보라. 선수 입장에선 끔찍하다”고 했다.

이경환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준비하는 사회봉사 프로그램 ‘나눔과 성장’ 두 차례 참가 후 내리 네 번을 불참했다. “따로 봉사하는 게 있다”는 게 이유였지만, 마음 속으론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축구공은 만져도 K리거의 인생을 포기한 셈이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분명 (봉사활동 프로그램은) 좋은 취지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이 프로그램이 선수들의 프로 복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3년, 5년간 교육을 이수한다 해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할 나이가 된다”고 우려했다. 이경환에게도 보호관찰 3년, 봉사활동 300시간 등은 그에겐 비현실적으로 들렸을 법하다. 선수 A는 “사실 사건 이후 우리 이름을 걸고 뭘 한다는 게 아직까지는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 부모님이 흘릴 눈물을 먼저 생각하라
보호관찰 프로그램은 해결책 중 하나다. 불우 이웃을 도우면서 꿈을 다시 키우라는 뜻이 담겼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강제성이 없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자유 의사에 따라 참가 여부가 결정된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을 꼭 붙들어 맬 수 없다. 정종관, 이수철 감독에 이어 세 번째 비극적 결말이 나온 이유이다. 이대로 가다간 또 다른 비극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조금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선수들간 비상 연락망을 적극 활용하고, 친밀한 단체 및 기구와의 지속적인 커넥션 구축이 요구된다. 승부조작 가담이라는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만큼은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수 본인이 가족, 지인, 동료를 위해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십, 수백 명의 가슴에 멍이 든다.

사진제공=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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