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최용수 감독이 정장 대신 트레이닝복 택한 이유
입력 : 2012.04.2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울산] 배진경 기자= “한 번씩 양보도 해주셔야죠.” (최용수 서울 감독)
“우린 아무 것도 없다니까.” (김호곤 울산 감독)

25일 울산과 서울의 K리그 8라운드 순연경기가 벌어진 문수월드컵경기장. 전장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 연출됐다. 경기 전 양팀 감독이 만나 덕담을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김호곤 울산 감독과 최용수 서울 감독은 막역한 사제지간이다. 동래고-연세대 선후배 사이이자 김 감독이 연세대 사령탑이던 시절 최 감독이 선수로 뛰었다. 평소에도 최 감독이 종종 안부를 묻거나 조언을 구하곤 한다. 두 감독이 나란히 벤치를 나눠 쓰는 건 이번 시즌이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K리그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맞대결을 펼쳤지만 최 감독은 대행 자격이었다. 당시 울산이 서울을 3-1로 제압했다. 두 감독의 캐릭터로 대변되는 울산의 ‘노련함’이 서울의 ‘패기’를 꺾은 경기였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즌 맞대결이 화제에 올랐다. 최용수 감독은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배움의 시간이었다”면서 “경기에 진 뒤 2주 동안 생각했던 내용이 앞으로 감독을 하면서 10년 동안 고민할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팀의 저력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하면 벤치에서 그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지도 배웠다. 감독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다”라며 겸손해했다.

최 감독이 눈여겨 본 스승의 미덕은 무엇일까.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세다. 긴장도가 높은 경기일수록, 팀 상황이 위기에 몰릴수록 일관되게 ‘포커페이스’였다. 최 감독이 “벤치에 서서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서 있는데, 벌써 분위기를 제압하는 것이었다”고 하자 김 감독은 “그게 긴장한 모습이었다”며 허허 웃었다. 다시 최 감독은 “리더라면 그런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말을 받았다.

옷차림새도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22일 인천-울산 원정 경기에서 김호곤 감독이 트레이닝복을 입고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유심히 봤다. 그만큼 여유를 갖고 있다는 의미. 최 감독도 울산전에서 빨간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왔다. 감독이 된 후 정장 대신 트레이닝복을 택한 것은 처음이다. 최 감독은 “선생님 흉내를 좀 내보려고 했다”며 웃었다. 김 감독도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4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명문팀의 수장이 된 것을 대견해하는 동시에 “일찍 팀을 맡아서 걱정도 되지만 오랫동안 계속해서 축구판에서 버텨야지”라며 건승을 기원했다.

사제간의 정은 승부 앞에서도 유효할까. 최 감독이 “한 번씩 양보도 해주셔야죠”라고 운을 띄웠다. 김 감독은 “아디가 (부상으로)안나온다니까 우리도 신욱이를 (선발로)안내보내지 않느냐”며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고 응수했다. 날선 신경전도 아니고 의뭉스러운 탐색전도 아니었다. 한껏 자세를 낮추는 제자와 그의 등을 토닥거리는 스승의 정이 훈훈하게 주위를 데우는 시간이었다.


자료사진=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만난 두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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