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라이벌에 패하면 1위 감독도 수모?
입력 : 2012.06.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서울월드컵경기장] 류청 기자= 프로스포츠의 존재 이유는 팬이다. 팬들을 즐겁게하는 게 구단이 가장 큰 목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오는 풀리지 않는 고민도 있다. 팬들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줘야 하는지, 권리는 어디까지인지의 문제다.

20일 FC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가 벌어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도 이 문제가 불거졌다. 경기 결과는 2-0 수원의 승리였다. 경기 종료 직전에 경기장에서 선수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더 큰 문제는 경기가 끝난 이후였다. 라이벌인 수원전 5연패에 격분한 일부 팬들이 최용수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일이 커졌다.

팬들이 최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하자 만약의 사태를 우려한 구단 측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팬들은 더 거칠어졌다. “최용수 나와라!” “도대체 왜 이렇게 무기력하게 지는지 설명하라”라는 고함이 빗발쳤다. 경찰차 위에 올라가 소란을 부리던 한 팬이 연행되자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약 10여명의 팬들은 구단 버스가 나가지 못하게 스크럼을 짜고 길에 눕기도 했다. 결국 1시간 반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사태가 수습됐다. 서울 측에서 감독과의 만남을 약속했다.


패배는 분명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라이벌에 연패를 당하면, 충격이 큰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패배했다고 감독에게 그 자리에서 소명을 요구하고, 욕설을 퍼부을 권리가 있을까? 게다가 최 감독은 현대오일뱅크 K리그에서 지난 16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에게 패하기 전까지 10경기 연속 무패를 이끌었었다. 서울은 1위 팀이다. 올 시즌 홈에서 첫 번째 패배를 당한 감독과 선수들에게 가혹한 대우라고 할 수 있다. 감정적인 대응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공감 받기 어렵다.

팬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승리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런 식으로 행동해선 안 되는 게 아닐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선수들을 한 시간 반 동안 버스에 묶어 두는 건 다른팀들을 즐겁게 하는 일이다. 팬들은 일주일에 두 경기를 계속해서 치러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승리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응원하는 팀의 경기력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하는 것은 그야말로 모순이다.

축구 문화와 역사가 K리그보다 오래된 유럽 무대에도 잡음이 있다. 하지만 배워야 할 점도 많다. 2011/2012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9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1-6으로 대패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팬들에게 가로막혀 귀가하지 못했다는 보도는 들어본 적이 없다. 유로2012에서 3전 전패로 탈락한 아일랜드 팬들은 마지막까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스페인에게 0-4 참패를 당하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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