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정지훈 기자= 사상 유례없는 혼전 양상의 축구협회장 선거. 4명의 후보들은 각종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미처 싣지 못했던 후보들의 다양한 공약과 장밋빛 계획들을 위해 기자의 취재수첩을 열어봤다.
허승표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유일한 축구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허 회장은 1980-90년대 축구협회 국제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주류의 반대편에 서 소신 있는 의견을 펼쳤다. 특히 1993년 정몽준 회장 취임 후 그는 지금까지 20년간 비주류로서 축구계의 야당 역할을 했다. 두 차례(1997년, 2009년) 축구협회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세 번째 도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외실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고 축구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주위의 격려도 힘이 됐다. 허 회장은 바로 준비에 착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허 회장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고 준비를 많이 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고했다. 대의원분들이 저의 열정을 알 것이라 생각하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좋은 결정을 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허 회장은 구체적인 공약보다 세 가지 약속만을 전했다. 그는 “축구협회장에 배정된 약 2억 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4년 동안 총 8억 원을 장학재단에 쓰겠다.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 또, 제 곁에 있는 측근 인사들을 쓰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상의를 통해 인사를 결정할 것이고 좋은 분들이 있다면 함께 하겠다. 마지막으로 절대 연임은 없다. 한국 축구 10년의 기틀만 마련하면 물러설 것이다”며 세 가지 약속을 전했다.
사진=스포탈코리아 DB
허승표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은 유일한 축구인 출신이라는 것이다. 허 회장은 1980-90년대 축구협회 국제통으로 이름을 날렸고 주류의 반대편에 서 소신 있는 의견을 펼쳤다. 특히 1993년 정몽준 회장 취임 후 그는 지금까지 20년간 비주류로서 축구계의 야당 역할을 했다. 두 차례(1997년, 2009년) 축구협회장 선거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세 번째 도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외실보다는 내실을 다져야 할 때라고 생각했고 축구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주위의 격려도 힘이 됐다. 허 회장은 바로 준비에 착수했고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허 회장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고 준비를 많이 했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많은 분들의 의견을 참고했다. 대의원분들이 저의 열정을 알 것이라 생각하고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좋은 결정을 할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허 회장은 구체적인 공약보다 세 가지 약속만을 전했다. 그는 “축구협회장에 배정된 약 2억 원의 연봉을 포기하고 4년 동안 총 8억 원을 장학재단에 쓰겠다.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어 미래를 위해 투자하겠다. 또, 제 곁에 있는 측근 인사들을 쓰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상의를 통해 인사를 결정할 것이고 좋은 분들이 있다면 함께 하겠다. 마지막으로 절대 연임은 없다. 한국 축구 10년의 기틀만 마련하면 물러설 것이다”며 세 가지 약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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