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개월의 헌신' 최강희, 비난 아닌 고마움이 먼저다
입력 : 2013.06.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두원 기자=사람은 때때로 이기적이다. 과거에 아무리 고마운 일이 있었더라도 그것이 과거가 되는 순간 기억은 희미해지고 현재의 처지만이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어 버리곤 한다. 2011년 12월, 한국이 월드컵 2차 예선에서 탈락 위기에 몰렸을 당시 대한축구협회의 삼고초려를 받아들여 희생했던 '봉동이장' 최강희(54) 감독에 대한 시선도 다르지 않다.

모든 걸 희생해 8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을 이뤘건만 최강희 감독은 지금 이 순간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죄인이 되어 버렸다. 최종예선 막판 경기력 논란에 휩싸였던 최강희호는 마지막 이란전에서마저 0-1로 패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무례한 언행 속에 설전까지 주고받은 상황이었고, 그래서 반드시 이겼어야 모두가 바라는 해피엔딩이 가능했는데 불운하게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최강희 감독이 죄인이 되어야만 하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고마워해야 될 사람이고 수고했다는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최강희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전북 현대를 프로축구의 강자로 성장시키며 승승장구 했던 그는 뚜렷한 대책도 없이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고 급히 후임자를 물색하던 대한축구협회의 요청을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그가 잘못한 것이라곤 대표팀 감독은 생각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의 SOS 요청을 모른척 하지 못한 뿐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물에 빠진 사람을 우역곡절 끝에 건져놨더니 왜 안전하게 구하지 구했냐고, 죽을 수도 있었다고 질타하는 격이다. 물론 스포츠라는 게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시된다. 하지만 과정을 질타하기 전에 어려운 상황에서 팀을 맡아 임무를 완수한 것에 대한 고마움과 수고했다는 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또 그를 위한 변명을 하나 더 붙이자면 시한부 감독으로 시작했다는 점은 어떻게든 핸디캡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플랜을 짜고 이를 적용하는 게 애초부터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보니 최 감독 역시 아름다운 축구보다는 월드컵 티켓 획득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대표팀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막판 3연전에는 기성용과 박주영, 구자철이라는 핵심 멤버들이 빠졌음에도 미션을 완수했다.

과정이 좋지 않다 보니 ‘감독이 시한부인데 선수들이 어떻게 100%로 헌신하고 집중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선수들의 자세를 질타해야지 최 감독의 책임이 아니다.

이번 최종예선을 통해 죄인이 돼버리다시피 한 최강희 감독도 이란전을 마친 뒤 8횐 연속 월드컵 진출에 대한 기쁨보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아쉽다"며 "못난 감독을 만나 고생한 선수들에게 고맙다"는 소감을 밝혀야 했다. 경기 결과에 실망한 관중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간 텅텅비다시피 한 자리였기에 씁쓸함은 더 컸다. 은인이 죄인이 되어 떠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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