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LEGEND] 차범근의 위대한 분데스리가 족적 (中)
입력 : 2013.09.1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차범근이 분데스리가를 떠난 지 24년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독일의 많은 축구팬들은 한국하면 차범근부터 떠올린다. 분데스리가에서 쌓아온 차범근의 업적은 그만큼 위대하다. 한 평생 축구 현장을 누빈 축구전문대기자의 낡은 취재수첩을 펼쳐 차범근의 분데스리가 족적을 되짚었다.

프랑크푸르트는 1979/1980시즌을 앞두고 프랑스 1부리그 팀, 분데스리가 2부리그 팀 등과 7번의 프리시즌 경기를 치르면서 개막을 준비했다. 차범근은 7월 21일 분데스리가 2부 소속 보르마티아 보름스와 경기에 프랑크푸르트 유니폼을 입고 처음 출전해 헤딩골을 터트렸다. 입단 이후 첫 골이었다. 이후 8월 11일 도르트문트와 시즌 개막전에 팬에게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다. 독일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축구전문지 '키커'는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 출전한 차범근을 1979/1980시즌 1라운드 '베스트11'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데뷔전을 치렀던 차범근이 얼마나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랑크푸르트의 유력 지역지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짜이퉁'은 한 달에 한 명씩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에서 화제가 된 인물을 '이달의 인물'로 선정해 소개하는데 차범근은 '8월의 인물'로 선정, 지면을 장식했다. 팀의 터줏대감이자 주장인 율겐 그라보브스키는 차범근을 특히 좋아했다. 훈련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정규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자서 30분 이상 개인운동을 빼놓지 않는 차범근의 성실함이 36세 노장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처럼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팀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았지만 계약과정까지는 우여곡절과 행운도 따랐다.  

브레멘에 도착한 차범근은 당장 테스트를 받게 됐다. 드리블 헤딩 볼 리프팅 등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하는 과정에서 볼을 높이 던져주고 떨어지는 것을 논스톱으로 슈팅하는 테스트를 받았는데 이 때 차범근은 4개의 슈팅을 모두 성공시켰다.

브레멘 측에서는 흡족한 표정으로 "3~4일 동안 선수들과 함께 합숙훈련을 한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계약할 용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차범근이 테스트를 받으면서 4개의 골을 성공시킨 것이 '연습게임을 하면서 혼자 4골을 넣었다'고 신문에 보도됐던 것이다. 물론 취재기자의 일방적인 미스였다. 그러나 그 미스는 차범근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브레멘 측에서 막 계약을 체결하려고 하는데 프랑크푸르트의 슐테 코치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직 사인을 하지 않았으면 하루 이틀만 더 계약을 지연시키라"는 것이었다.

이미 외국인 보유 한도를 채우고 있었던 프랑크푸르트는 이 '오보'를 보고 깜짝 놀라 부랴부랴 스위스 국적인 한 선수를 다른 팀으로 이적 시켰고, 서둘러 차범근을 영입하려 했던 것이다. 프랑크푸르트가 제시한 조건도 브레멘보다 좋았다. 차범근은 이런 '기연과 행운'으로 프랑크푸르트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입단 뒤 실력으로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오히려 행운을 잡은 것은 프랑크푸르트였을지도 모른다.

차범근은 1979/1980시즌 3차전이었던 8월 28일 슈투트가르트와 홈경기에서 역사적인 분데스리가 데뷔골을 폭발시킨다. 이어 9월 1일 브라운슈바이크와 4차전에서 연속골을 작렬하며 팀의 연승을 이끌었다. 두 번 모두 헤딩골이었다. 통산 98골을 향한 대장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첫 골을 넣은 뒤의 인터뷰 내용이다.

“첫 골을 올릴 때까지가 그렇게 힘이 들었습니다. 매스컴이나 팬이 저의 첫 골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저도 신경이 쓰이고 오히려 뜻대로 플레이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슈투트가르트와 경기에서 첫 골을 넣고 나니까 마음이 그렇게 개운할 수 없어요. 그 동안 제 집 사람도 입 밖에 내놓으면 오히려 제가 더 긴장할까 봐 아무 말 안 했지만 무척 걱정했었나 봐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주장 그라보브스키를 비롯한 동료와 라우스 감독 등 팀 관계자들도 '역시 차붐을 잘 데려왔다'고 기뻐해 주는 통에 무척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글=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사진=차범근 소장본

*9월 20일 차범근의 위대한 분데스리가 족적 마지막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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