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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134] 왼발로 유럽을 점령한 저승사자 푸스카스

기사입력 : 2014.01.29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한국과 경기할 당시의 푸스카스
한국과 경기할 당시의 푸스카스

[스포탈코리아] 김성진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매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FIFA 발롱도르를 시상한다. 지난 13일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FIFA 발롱도르를 차지했다.

그런데 이것을 아는가? 최고의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이 있다는 것을. 바로 한 해 동안 가장 강렬한 골을 넣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FIFA 푸스카스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FIFA 푸스카스를 만든 이다. 헝가리 최고의 선수로 유럽을 자신의 발 아래에 둔 불세출이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다.

"푸스카스가 찬 공은 마치 대포알 같아서 막으면 갈비뼈가 부러지는 고통을 느낄 정도였다. 크로스바에 맞으면 골대가 한참 동안이나 흔들렸다. 게다가 머리 옆으로 푸스카스가 찬 공이 날아갈 때 ‘윙’하고 거칠게 소리가 날 정도였다."

위 말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한국의 골문을 지킨 故 홍덕영 선생의 회고다. 홍덕영 선생은 스위스 월드컵 때 헝가리, 터키를 상대로 16골을 내줬다. 헝가리전에서는 9골을 허용했다. 그 중 푸스카스에게는 2골을 내줬다.

정확한 왼발킥을 앞세운 푸스카스는 해방 후 처음 세계 무대에 나선 한국에 무서움을 안겼지만, 그는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래서 별명도 저승사자였다.

당시 헝가리는 유럽 축구계에서 무적의 팀이었다. 그리고 푸스카스가 그 무적의 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선수였다. 푸스카스가 1945년부터 1956년까지 11년간 헝가리 대표로 A매치 85경기에서 84골을 넣은 것만 말해도 그의 기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있었기에 헝가리는 스위스 월드컵에서도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푸스카스는 부상으로 서독과의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고, 푸스카스가 없는 헝가리는 2-3으로 패하며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가정이지만 푸스카스가 결승에 나섰다면 헝가리는 월드컵 정상에 올랐을 것이다.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FIFA는 푸스카스의 엄청난 공을 잊지 않았다. 대회 득점왕은 11골을 넣은 푸스카스의 팀 동료 코치시 샨도르였지만, 최고의 선수로 푸스카스를 주저 없이 꼽았다. 샨도르는 실버볼을 차지했다. 득점이라는 단순한 기록보다 팀 기여도, 스타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였다.

FIFA가 FIFA 푸스카스를 제정한 것도 푸스카스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보여준 공적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스카스가 활약하던 1950년대가 헝가리의 전성기였다. 1956년 일어난 헝가리 혁명으로 선수들이 헝가리를 떠나면서 자연히 실력이 약화됐다. 1960년대 잠시 반짝했지만 침체의 길로 접어들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에는 월드컵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 보니 푸스카스를 계승해 월드컵에서 시선을 사로잡을 헝가리 축구의 스타도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은 전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집결하는 장이다.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 네이마르(브라질) 등 푸스카스 못지 않은 화려한 득점력을 자랑하는 선수들이 나선다.

이들이 제2의 푸스카스를 꿈꾸며 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한국과 경기할 당시의 푸스카스 ⓒ스포탈코리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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