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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스타] ‘수원FC 아이콘’ 김한원, 드라마 같은 축구인생

기사입력 : 2014.10.16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페이스북 공유


[스포탈코리아=수원] 한재현 기자= 수원FC 주장이자 레전드, 아이콘, 멀티플레이어이라 설명할 수 있는 김한원(33). 그는 유난히 굴곡 진 축구인생을 살아왔다. 오랜 무명 생활에 배경 없는 삶 속에서 축구를 그만 둘 위기를 맞이한 것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축구를 그만둘 뻔한 그를 잡아준 것은 수원FC였고, 수원FC는 김한원을 K리그 챌린지 최고의 멀티 플레이어로 오를 수 있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그 동안 프로(전북 현대, 인천 유나이티드)로 잠시 몸을 담기도 했지만, 오직 수원FC만 바라봤고 현재 그는 수원FC 역사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거듭났다. 축구선수로서 쓰고 단맛을 본 김한원의 축구 인생은 막판 화려하게 꽃 피우고 있었다.

한 고비 넘기지 못한 개인 연속 최다 골 타이기록
지난 10월 5일 김한원은 챌린지 역사상 개인 최다골과 공격포인트 타이 기록(현재 대전의 아드리아노가 최다 기록)인 6개를 눈앞에 뒀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김한원은 퇴장을 당했고, 팀도 0-0으로 비기면서 기록 달성은 아쉽게 물 건너 갔다. 외국인 선수가 아닌 국내 선수로서 챌린지 역사에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 정작 김한원은 덤덤했다.

“기록은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를 보고 알았는데, 그것 보다는 팀이 이기는 것만 생각했는데 상황이 안 좋게 되어서 아쉽다. 광주랑 하면 성적이 안 좋았다. 의욕이 넘쳐서 (퇴장을 당해) 아쉽다. 10, 20골을 넣어도 팀이 지면 소용이 없다. 기록도 팀이 이겨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국대 편입 실패와 해병대 입대
학창 시절부터 무명 시절을 보냈고, 이로 인해 대학을 가는데 적잖이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축구를 그만 둘 뻔한 순간도 많았다. 세명대에서 2년 동안 보낸 후 동국대 편입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가려 했으나 이마저 실패했다. 실망이 컸던 김한원은 축구화를 벗으려 했고, 결국 해병대 입대를 선택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인생에서 축구와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보면 친구들은 다 좋은 학교로 가는데, 나는 우연치 않게도 진학하는 학교가 잘 안됐다. 대학교를 가도 운동을 그만 두려 했다. 예전 은사님께서 축구를 계속 해보라 권유하셨고, 강원도에 있는 세경대로 입학했다. 처음에는 주위에 산 밖에 없어서 암울했지만, 어리다 보니 부모님 생각밖에 안 나더라, 2년 동안 열심히 하다 보니 동국대에서 제의를 받았지만, 이 마저 안됐다. 자세한 이야기는 못하겠지만, 축구를 포기하고 군대나 가서 다른 일을 찾으려 마음 먹었다.”

육군 아닌 군기가 센 해병대 입단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축구부 창단 소문이 흘러나왔고, 평생 축구만 해온 김한원으로서 일말의 희망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해병대에서 축구부 창단 소문이 흘러 나왔다. 어차피 운동하면서 군 복무 하자라고 생각했다. 막상 들어가니 축구부 창단도 잘 안되어서 없어졌다. 그래도 갈려고 했던 곳이라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 그래도 예전에 운동했던 친구가 많아서 축구 할 때 메시(바르셀로나)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나름 군생활 재미있게 했다.”

해병대 출신 축구 선수는 김한원보다 김원일(29, 포항 스틸러스)가 유명하다.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이며, 해병대 도시인 포항에서 열렬한 성원을 받는 만큼 주목도가 클 수밖에 없었다. 해병대와 인연이 없는 수원에서 김한원이 주목 받지 못한 점은 아쉬울 터.

“포항처럼 해병대 전우들 응원을 받는 것까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누가 응원을 하던 지 우리 팀에 보탬이 됐으면 했다. 원일이가 해병대 출신 대표적인 스타가 되어서 내가 기분이 좋다.”


김한원 축구 인생 은인 김창겸 전 감독

우연치 않게 찾아온 수원FC와 인연
축구 선수로서 꿈을 접었던 해병대 복무 시절 김한원에게 우연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내셔널리그에 있었던 수원FC(당시 수원시청)가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것이다. 그 곳에 김창겸 전 감독의 눈에 띄었고, 2004년 제대 후 다시 축구선수로서 길을 가게 됐다. 이후 김한원의 축구 인생도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김창겸 감독님이 해병대 캠프 형식으로 온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 게임을 뛰게 되었는데 거기서 눈 여겨 보신 후 지금까지 축구 선수로 뛰게 됐다. 제대 1년 남기고 나서 시청으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처음에는 운동할 생각이 없었다. 10년 동안 빛을 못 받았다. 다시 해 봐야 잘 안 될 거라 걱정했었다 지금은 수원시청에 근무하고 계시는 김영진 팀장님 도움으로 축구를 다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운동을 하지 못한 탓에 실전에 나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데 있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1년 간 예열을 마친 끝에 11골로 내셔널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전반기 우승과 내셔널리그선수권 우승까지 이뤄냈다. 김한원 축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짜릿함과 영광이었다.

“제대 후 사회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고, 솔직히 2년 동안 쉬고 나서 시합을 나갔는데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서 동계훈련 때 운동을 많이 했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운이 좋았다. 게임을 많이 나가서 득점도 올렸다. 김창겸 감독님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반기와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2005년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전까지 2관왕을 이룬 적이 없었기에 더욱 뜻 깊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원FC는 집과 같은 곳
김한원은 내셔널리그서 맹활약으로 많은 프로팀들의 관심을 받았다. 2006년 인천 유니폼을 입으면서 꿈에 그리던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됐다. 인천에서 3골 1도움 활약 이후 전북 현대로 이적했으나 2008년까지 14경기 출전에 그치면서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아쉬움만 남았던 프로 도전은 2009년 수원FC로 복귀하면서 막을 내렸다. 2004년 해병대 제대 이후 앞만 보고 달렸던 김한원에게 프로에서 3년이라는 시간은 좌절 만이 아닌 축구에 새로운 눈을 뜨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인천에 있었을 때 괜찮았다. 이후 전북으로 갔는데 안 좋은 일도 있었다. 서로 간의 믿음이 없었기에 그런 것 같다. 2009년에 다른 곳을 생각을 안하고 수원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편했다. 프로로서 최고 클래스에 오르는 것이 좋지만, 자존심을 버리고 머리 숙이고 싶지 않았다. 단지 축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후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 3년 정도 떠나 있었지만, 하루 이틀 떠났다 다시 돌아온 기분이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팀을 떠났지만, 2004년부터 현재 챌린지에 있기 까지 김한원이 없는 수원FC는 상상할 수 없다. 김한원도 자포자기했던 자신을 구해준 팀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컸다. 2009년 프로팀 제의에도 오로지 수원FC 잔류를 고집할 정도였다.

“팀에 대한 애정은 크다. 2009년 모 팀에서 제의를 받았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선수라면 축구를 떠나서 이름을 살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상하게 가고 싶지 않더라. 여기 좋았다. 수원FC 나에게 집이다. 선수가 운동을 하면 중요한 것이 마음이 편해야 한다. 고민을 하면 잡생각이 많아서 운동이 안 된다. 여기 있으면 그럴 염려가 없다.”

멀티플레이의 재미
김한원은 본 포지션은 공격수이지만, 수비수부터 공격수까지 골키퍼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김한원의 멀티 본능은 올 시즌 빛을 보고 있다. 지난해 공격수를 주로 봤지만, 올 시즌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대부분 수비수로서 경기를 뛰었다. 공격수가 수비수로 전환은 쉽지 않지만, 빠른 발과 영리함, 힘을 갖춘 김한원으로서 포지션 적응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비수 전환에도 6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공격 본능도 여전히 과시하고 있다.

“대학 1학년 때까지 수비수를 봤었다. 지금도 수비를 하면서 어떻게 할 지 다 알 정도다. 플레이 하면서 어떻게 하는 지 다 알게 된다. 겨울 전지훈련 때 감독님께서 수비를 봐라 하시면 보는 것이다. 아직도 배울 게 많다. 모든 포지션을 보면 다 특징이 틀리다. 또 다른 재미가 있다. 중앙 수비수를 보면 이 선수를 90분 동안 죽어라 막아야 하는 것도 있고, 측면에서 크로스를 막아야 하고, 공격수로서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하는 매력이 있다.”

멀티 플레이어는 축구 선수로서 큰 경쟁력이지만, 한편으로 정체성 고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김한원의 생각은 달랐다.

“굳이 포지션 하나를 고르라면 공격 본능이 있고 하니 공격수다. 희망사항일 뿐이고, 감독님께서 어떤 자리에 넣어주시든 그 자리에서 100%를 소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단 선수는 제가 뛰고 싶은 자리가 여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기에 뛰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그라운드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Q. 골키퍼 욕심까지 있나?) 제일 중요한 자리가 골키퍼다. 그것까지는 부담감이 있어서 힘들 것 같다. 바로 뒤에 골문이다 보니 제일 중요하다.”



베테랑의 꿈: 클래식 승격과 수원 더비
2009년 내셔널리그로 복귀 후 김한원의 프로 꿈은 접었다. 그러나 2013년 챌린지가 출범하면서 수원FC가 프로에 참가하게 됐다. 비록 2부리그이지만, 프로로서 꿈을 살려 막판 축구 인생에서 다시 한번 불 태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또한 33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도 20대 못지 않은 체력과 기량을 펼치면서 김한원의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챌린지 참가는 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거라 생각했다. 내셔널리그와 프로와 한 장 차이지만, 많이 힘들다고 생각했다. 경기 움직임이 빠른 점에서 차이가 있다. 용병들과 타 구단에서 온 선수들이 있으니 프로 선수라 생각하고 뛰어 뿌듯했다.”

“이전에 텔레비전으로 축구를 보면 모 선수가 35세라 하면 ‘와 아저씨도 운동을 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렇게 되다 보니 힘들 줄 알았다. 공격수를 볼 때 쉬고 있다 한 방에 폭발적으로 뛰곤 했다. 지금은 수비를 보다 보니 많이 뛰게 되어 체력이 좋아졌다. 주위에서 그만하지 왜 더 뛰려 하는 가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이동국(전북), 김병지(전남) 같은 선배님들 같은 경우 더 뛰고 싶은 미련이 있고, 꿈을 더 펼칠 수 있으니까 선수 생활을 하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40세까지 뛰면 너무 민폐다(웃음). 많이 뛰어 봐야 2~3년 더 하고 싶다. 그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체력은 충분하다.”

앞으로 뛸 시기를 대략 정해 놓은 김한원에게 선수로서 이어갈 시간이 많지 않은 듯 하다. 이제 은퇴를 향해 달려가는 김한원에게 선수로서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에게 집과 같은 수원FC와 함께 클래식 무대로 당당히 복귀하는 것이다. 조덕제 감독을 비롯한 코칭 스태프, 동료, 구단 직원 그리고 뒤에서 열렬히 응원하는 팬들과 함께.

“클래식에 내가 잘해서 올려서 그만 두는 게 아니라 다같이 올려 놓고 싶다. 그게 1년 이 될 지 그 이상 걸릴지 모르겠다. 그게 3년 안에 되지 않아야 겠나.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클래식에서 맞붙게 된다면 ‘블루윙즈 축구보다 우리가 더 재미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진=수원FC, 스포탈코리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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