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주말 최고의 예능' QPR-리버풀 보셨나요?
입력 : 2014.10.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마지막 10분을 놓치지 않은 그대가 승자다. 19일 밤(한국시각) 영국 런던 로프터스 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8라운드에서는 홈팀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가 리버풀에 2-3으로 패했다. 윤석영의 데뷔전에 쏠린 관심은 이내 두 팀의 난타전으로 향했고, 지켜보는 이들의 엉덩이를 들썩하게 한 골 행진은 '주말 최고의 예능'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었다.


# EPL 8R QPRvs리버풀(2-3)

[QPR] 바르가스(87,92')
맥카시(GK) / 윤석영-코커-리처드던-오누오하(필립스,H.T) / 페르-헨리-산드로(트라오레,59')-이슬라 / 오스틴-자모라(바르가스,78')

[리버풀] 리처드던(상대자책,67'), 쿠티뉴(90'), 코커(상대자책,95')
미뇰렛(GK) / 엔리케-로브렌-스크르텔-글랜존슨 / 엠레찬(조앨런,66')-핸더슨 / 랄라나(쿠티뉴,66')-제라드-스털링(콜로투레,96') / 발로텔리


▲ QPR의 모토,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칼 헨리와 산드로 앞에 페르가 드나들던 전형으로 리버풀의 제라드, 엠레 찬-핸더슨과 맞서야 했던 QPR. 정면 승부만으로는 경기를 즐길 수 없었던 이들은 차라리 피하는 방법을 택한다. 패스 축구, 점유율 축구 따위는 경기 시작부터 미련 없이 버렸다. 대신 볼을 공중으로 띄워 상대 미드필더가 볼 잡는 시간을 최소화했고, 그 결과 중원에서 볼을 빼앗겨 상대 역습을 맞는 위험 상황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상대 진영으로 길게 때려 넣는 방식은 믿는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주로 중앙 수비 로브렌과 부딪혔던 자모라는 육중한 체격을 오롯이 활용할 줄 알았고, 피지컬과 유연함이 가미된 포스트 플레이로 화답했다. 등을 지고 지켜낸 볼을 재차 연결할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한 건 팀적으로도 큰 이익이었다. 후방에서 볼을 잡은 QPR은 자모라를 타겟 삼아 지체 없이 볼을 전진시킬 수 있었고, 이는 리버풀을 조금 더 쉽게 상대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 선수에게는 다소 뻔해 보이는 공격 패턴도 유효하게 이끌 능력이 있었다.







▲ 중원 생략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전반 2분에 나온 오스틴의 첫 슈팅은 윤석영의 롱패스와 자모라의 헤더가 만든 합작품이었다. 전반 28분, 34분 잇달아 크로스바를 때린 페르의 슈팅은 골키퍼 맥카시의 킥에서부터 시작됐다. 후반 10분 골대를 슬쩍 빗겨간 오스틴의 슈팅 역시도 롱볼의 향연으로 연출된 장면이었다. QPR의 중앙 수비가 양 측면으로 넓게 퍼져 숏패스를 받으려 했다면, 그리고 중앙 미드필더를 착실하게 거쳐 나오려 했다면 이만한 공격 완성도를 보였으리라 확신하기는 어렵다. 번번이 골대에 막혔어도, 어떻게든 앞선에서 볼 잡는 비중을 높였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었다(실제 양 팀 골키퍼가 처리한 볼의 평균 거리는 맥카시가 더 길었다. 상단 캡처 참고).

QPR식 축구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수비 안정'이라는 조건도 붙었다. 중원에서 볼을 빼앗길 경우 공간을 빠르게 밀고 들어올 스털링, 랄라나 등을 저지할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볼을 간결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투쟁력 있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 전환의 시발점을 방해해야 했다. 수비 자원엔 공간 이해 능력이 절실했다. 상대에게 넓은 공간을 주고 뒤로 물러나는 수비 과정 속, 주력 및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함은 당연하며 서로의 빈자리를 커버해줄 지능도 요구됐다. QPR은 전반전까지는 딱히 허점을 보이지 않았다. 윗선에서 영리하게 파울을 범해가며 위기를 넘겼다(파울 10개 중 8개가 골대로부터 30m 이상 떨어진 지점에서 나왔다).






▲ 답답하면 니들이(너희가) 넣든가? 답답해서 내가 넣었다

QPR이 공수 밸런스에서 무난했던 반면, 리버풀은 답답함의 극을 보였다. 중원에서 볼을 훔쳐 내달린 장면 말고는 생산적인 상황을 만들지 못했다. 최전방 원톱도, 그 외 2선 및 3선도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탓. 엠레찬이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에 실패하며 질 좋은 패스를 뽑아내질 못했고, 중앙선 넘어 전진하는 과정에서도 팀 전체의 세밀함이 결여됐다. 유일한 공격 루트로 작용했던 스털링 역시도 윤석영의 태클에 막히곤 했고, 발로텔리는 빈 골문 대신 하늘 높이 슈팅을 쏘아 올렸다.

그럼에도 지난시즌 막판까지 우승을 다툰 저력은 달랐다. 후반 22분 트라오레의 파울 이후 집중력을 잃은 찰나를 리버풀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이미 상대 공격진이 박스 안으로 들어와 있던 상황, 트라오레도, 윤석영도 주심을 찾기 전에 볼부터 잡아두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뒤늦게 반응하며 따라간 리처드 던에게는 충분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볼은 골문 안으로 향했다. 아군 페르가 크로스바를 두 방이나 때렸고, 적군 발로텔리가 변변치 않은 경기력을 보이자, 몸소 선제 득점(자책)에 성공한 것이다.






▲ QPR의 정답은 공중, 리버풀의 정답은 역습

스스로 '안될 팀은 안 된다'의 표본이 되었던 QPR은 후반 41분 공중에서 답을 찾았다. 프리킥으로 시작한 공격에서 세컨볼을 차지했고, 바르가스가 재차 찍어 차고 뛰어들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리버풀 수비진의 볼 처리 능력은 경기 내내 엉망이었다. 단순히 개인 능력으로 치부하기엔 팀 전체 집중력의 문제가 커 보였다. 전반 초반부터 최후방 진영에서의 볼 처리에 사족을 남겼고, 안 줘도 될 슈팅까지 헌납하며 위기를 자초했다. 피지컬 싸움을 하던 자모라가 대신 속도전을 펼칠 바르가스가 들어오자,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후반 들어 제라드를 내리고, 쿠티뉴와 조앨런을 투입했던 리버풀은 여전히 경기력이 살지 않았다. 믿을 건 스털링에 의한 역습 패턴 정도. 코너킥 수비 이후 빠르게 올라가 숫자 싸움을 거는 것이 리버풀 팀 컨디션상 골에 가장 근접할 법했다. 후반 45분 골 장면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일대일 경합에 나선 이슬라는 몸의 중심이 측면 쪽으로 빠져 있었고, 쿠티뉴가 볼을 인사이드로 감아 때릴 수 있게끔 오른쪽 발등으로 밀어 터치한다면 그 뒷공간은 동료가 대신 막아줘야 했다. 코커가 번지 수를 짚고 부지런히 내려는 왔으나, 쿠티뉴에겐 이를 뛰어 넘는 개인능력이 있었다.


▲ 축구는 92분부터. 예능감 욕심낸 마지막 두 골

후반 47분, QPR은 바르가스의 은총에 또 한 번 동점을 만든다. 공중볼을 줄곧 완만하게 띄워 순수 높이 경합을 벌였던 이들은 인저리 타임에 얻어낸 코너킥에서는 조금 다른 루트를 택한다. 가까운 골포스트 쪽으로 바짝 붙인 킥은 낮고 빠르게 날아들었고, 바르가스가 상대 수비진보다 먼저 움직임을 가져가며 절묘하게 방향을 바꿔놓았다. 1승 1무 5패로 최하위, 7경기에서 4골밖에 뽑지 못한 팀이 새롭게 변해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시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후반 50분, 또다시 역습에서 시작된 리버풀의 공격에 QPR은 폭삭 무너지고 만다. 빠르게 수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코커는 몸을 돌려놓을 채비를 못 했고, 결국 속도를 이기지 못하며 리처드던에 이어 자책골 2호를 기록했다. 한 골만 넣고도 2-3 승리를 챙긴 리버풀, 네 골을 넣고도 2-3 패배를 떠안은 QPR. 이 경기는 재방송으로라도 꼭 한번 권하고 싶다. 텍스트만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또 다른 감흥이 담겨 있다.


사진=SBS 스포츠 중계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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