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제대로축구] '슈팅 개수 27-4' 로저스의 공허한 외침
입력 : 2014.11.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리버풀의 첫 슈팅은 후반 11분이 되어서야 터졌다. 90분 통틀어 슈팅 '4개'를 날린 동안 상대팀 레알 마드리드(레알)엔 무려 '27개'를 내줬다. 이는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자발적으로 오랜 시간 웅크려 있었거나 강제로 중앙선 아래 갇혀 당했다는 사실이다. 5일 새벽(한국시각) 스페인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014/2015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B조 조별리그 4차전. 수비도, 공격도 약했던 리버풀은 홈팀 레알에 1-0으로 패했다.

호날두가 생글생글 웃는 만큼 리버풀 수비진과 골키퍼 미뇰렛은 울상이 됐다. 레알이 '해동' 상태로 자유롭고도 힘차게 움직였다면 리버풀은 '냉동' 상태로 경직돼 끌려다녔다. 지난달 23일 안필드에서 있었던 3라운드(0-3, 레알 승) 결과가 크게 작용했을 터. 정면으로 부딪히면 깨지고 부서지는 게 현실이었다. 그 만큼 스페인 거함을 상대하는 리버풀의 스타일 및 전형에는 전력 차를 자각한 로저스의 고민이 깊게 스며있었다. 포인트는 '스페인 원정에서 굳이 앞으로 나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실점 시기를 최대한 늦춰 승부를 보려 했다.






레알의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4-4-2로 나선다. 괜히 중앙 미드필더 두 명만 배치해 '2(레알)vs3(리버풀)'의 불리한 숫자 싸움을 벌인 건 아니었다. 이스코가 안쪽으로 좁혀 오며 수시로 공간을 채웠고, 하메스는 깊숙이 올라가 여러 공격 형태를 취했다. 윙어의 이동에 따라 생긴 측면 공백에는 좌 마르셀로, 우 아르벨로아가 관여했다. 리버풀은 루카스 레이바를 중앙 수비 앞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4-1-4-1로 대응한다. 최전방 보리니까지 중앙선 아래로 내려와 수비 태세를 준비했다.

(A), (B) 진영에서의 세력 다툼이 관건이었다(상단 삽화 내 별도 표기). 리버풀이 바짝 웅크린 건 (B) 공간으로 들어오는 볼을 틀어막고자 함이었다. 레이바와 콜로투레-스크르텔로 이뤄진 정삼각형 안에 상대 공격수를 가두고, 사전에 패스를 차단하는 것이 로저스가 짜낸 방책의 핵심 의도였다. 즉, 호날두, 벤제마, 하메스 등과 정상적인 경합을 벌일 중앙 수비 자원이 없으니 공간을 죽여서라도 속도 싸움을 줄이자는 것. 조앨런-엠레찬과 레이바로 형성되는 역삼각형 (A) 지점에서 볼 훔치는 비중을 늘려야 했다. 이 작업만 성공한다면 가드를 올린 상태로도 최소한의 반격을 꿈꿀 수 있었다.

도리어 뒤로 물러난 것이 상대의 템포를 살려줬다. 레알이 볼을 빠르게 돌리면서 공간을 엿볼 때, 리버풀의 수비 전형은 이리저리 쏠렸다. 간격 조절에 실패하며 팀 조직이 깨졌고, 상대 공격에 뒤늦게 반응하는 수동적인 경기가 이어졌다. (A) 지점의 함락은 곧 (B) 지점의 위협을 의미했다. 레이바가 수비 영향력을 잃었을 때, 중앙 수비 중 한 명은 앞으로 나가 상대 공격수와 싸워야 했고, 남은 수비 한 명은 또 다른 공격수를 잡아둬야 했다(하단 캡쳐 참고). 이 과정에서 리버풀은 레알의 연계 속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지난 3라운드 중 호날두에게 내준 첫 번째 골과도 유사한 맥락이다.






호날두, 벤제마에 하메스까지 좁혀 들어온 시너지는 대단했다. 볼 잡은 이가 리버풀 수비를 몰고 다니면 볼 없는 이는 공간을 사냥했다. 그 덕에 레알 공격진은 수비를 등지며 힘겹게 볼 받는 장면이 적었고, 이들이 자유롭게 돌아서 골문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리버풀의 문전은 완전히 찢겨나갔다. 벤제마의 골도 마찬가지다. 중앙과 측면을 오간 레알은 마르셀로의 오버래핑을 요긴하게 활용하며 벤제마의 슈팅을 이끌어냈다. 스크르텔과 콜로투레에게는 낮고 빠르게 들어오는 크로스를 처리할 신체 속도도, 판단 속도도 없었다.

레알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절한 로빙 패스를 섞었다. 최후방 수비 라인 뒷공간으로 볼을 떨어뜨려 득점에 근접한 장면도 연출했다. 여기에 인심 좋게 실수 하나쯤은 저질러주는 리버풀의 수비가 카메오로서 레알의 작품 완성도를 높였다. 스크르텔은 터치 실수로 일대일 찬스를 내줬고, 콜로투레와 미뇰렛은 의사소통 실패로 볼 처리에 잡음을 남겼다. 탄탄하지 못한 수비 조직, 반복되는 개인 실수에 선제 실점까지. 리버풀이 승점 3점을 챙기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레알에도 약점은 있었다. 리버풀이 첫 슈팅을 기록했을 때, 레알은 이미 16개의 슈팅을 퍼부은 뒤였다. 그럼에도 한 골밖에 뽑지 못한 건 흐름상 승리를 놓칠 여지를 남겨둔 셈이었다. 일부 지도자는 "동기 부여 및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전반전을 2-0 대신 1-0으로 마치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지만, 전반 막판부터 살아난 리버풀의 불씨를 확실히 밟아놓을 필요도 있었다. 후반 초반 중앙선 너머에서 볼 잡는 빈도를 늘린 리버풀은 라모스의 수비에 고전하는 와중에도 두세 차례의 슈팅을 더 날렸다.

로저스가 택한 시간대는 70분 내외였다. 인저리 타임까지 20분 남짓한 시간에 승부를 걸어보겠다는 심산이었으나, 동시에 상대의 공격도 막아내야 했음을 고려하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레알이 후반 17분 하메스 대신 베일을 투입하자, 리버풀은 후반 24분 마르코비치 대신 스털링을 내세우고, 후반 29분 루카스와 엠레찬을 뺀 뒤 각각 제라드와 쿠티뉴를 내보내며 맞받아친다. 라인을 위로 끌어올려 정상적으로 맞선 첫 시점으로 중앙선 근처에서 볼을 다루던 이스코나 모드리치도 익숙지 않은 방해를 받아야 했다.

최소한의 기회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고자 했다. 제라드를 받치고, 조앨런-쿠티뉴를 역삼각형으로 올린 형태에 랄라나-보리니-스털링의 스리톱으로 나섰다. 하지만 리버풀엔 한두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특급 피니셔(Finisher)가 부재했다. 수아레즈가 떠나고, 스터리지가 돌아오지 못한 형국에 로저스의 외침은 공허할 뿐이었다. 제라드의 롱패스로 부랴부랴 공격 루트를 찾았으나, 남은 20분간 리버풀이 쏜 슈팅은 '단 하나'도 없었다.



글=홍의택
사진=리버풀 공식 트위터, SPOTV 중계화면 캡처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