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록'에 인색해진 KBO리그, 과연 '최선'인가요
입력 : 2015.06.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김우종 기자]
이승엽이 지난달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9회 볼넷을 얻어내고 있다. /사진=OSEN
이승엽이 지난달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전에서 9회 볼넷을 얻어내고 있다. /사진=OSEN



#1. 5월 31일 잠실구장. LG-삼성전

LG가 3-9로 뒤진 9회초. 삼성 공격 2사 2루 상황. 타석에 6번 타자 이승엽(39)이 들어섰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400홈런 고지에 단, 1개만을 남겨놓은 이승엽이었다. LG 투수는 신승현(32). 그런데….

신승현의 초구. 바깥쪽으로 많이 빠졌다. 고개를 숙인 이승엽은 타석을 한참 골랐다. 이어진 2구째. 인터벌이 다소 길었다. 다시 유강남 포수가 바깥쪽으로 빠져 앉았다. 또 볼이었다. 3구와 4구 역시 볼. 볼넷. 포수가 일어나지만 앉았을 뿐, 사실상 고의4구나 다름없었다. 이승엽이 1루로 걸어 나갔다.

#2. 5월 26일 마산구장. NC-두산전

NC 4번 타자 테임즈가 2회 만루 홈런을 때려냈다. 이어 4회에는 3점 홈런를 친 뒤 6회에는 선두타자로 나와 솔로포를 쏘아 올렸다. 테임즈가 3연타석 홈런을 때려낸 순간이었다. 테임즈의 8타점 활약 속에 NC는 6회까지 13-0으로 앞서나갔다. 이어진 7회초 NC의 수비. 그런데.

NC 벤치가 1루수 테임즈를 조평호로 교체했다. 순간, 이른바 '사이클링 홈런'은 물론, 역대 KBO리그 두 번째 1경기 4연타석 홈런이라는 대기록 수립 기회가 사라졌다. NC는 13-2로 승리했다.

#3. 4월 1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 한화-삼성전

9번·유격수로 선발 출장한 권용관은 3회 솔로 홈런, 9회 좌전 안타, 7회 좌중간 2루타를 각각 쳤다. 이제 사이클링 히트까지 남은 것은 3루타 한 방. 한화가 5-3으로 앞선 8회말 2사 1루 기회. 타석에 권용관이 들어섰다. 초구 스트라이크 이후 2구째. 권용관이 기습 번트를 시도했다. 번트로 3루타를 만들긴 어려울 터. 권용관은 3구 삼진을 당했다.

#4. 4월 4일 잠실구장. LG-삼성전

LG 선발 임지섭이 7이닝 5볼넷 9탈삼진 노히트 투구를 펼치고 있었다. 이어 팀이 3-0으로 앞선 8회초. 임지섭의 투구수는 103개였다. 이제 노히트노런까지 남은 아웃카운트는 6개. 그런데. 전광판에서 LG투수의 이름이 이동현으로 바뀌었다. 투수 교체. 임지섭의 인생투 도전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승엽이 지난 주말 LG와의 3연전에서 400홈런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이승엽이 지난 주말 LG와의 3연전에서 400홈런 달성을 다음 기회로 미뤘다. /사진=삼성 라이온즈 제공



'노히트노런', '사이클링히트', '사이클링 홈런' 그리고 'KBO리그 첫 400홈런'까지. 올 시즌 이런 대기록을 눈앞에 둔 선수들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위업 달성에 실패했다. 물론 마야(두산)처럼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그렇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물론 위 4가지 장면 모두, 어떤 '결정'을 감행한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우선 권용관의 경우, '개인 기록'보다는 '팀 승리'라는 가치에 더 무게를 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개인 기록보다는 오로지 출루를 위한 기습 번트가 나온 것이다.

또 임지섭과 테임즈의 경우,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내다본 선택이었다. 양상문 감독은 4월 4일 경기 후 "임지섭은 LG의 15년을 책임질 선수다"고 말했다. 선수 보호 조치였다는 뜻이다. 또 김경문 감독은 지난 26일 테임즈의 교체에 대해 '조평호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과 '대기록 의식 탓에 자칫 타격 밸런스가 깨질 수 있는 점'을 꼽았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이었다.

NC 테임즈. /사진=OSEN
NC 테임즈. /사진=OSEN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아쉬움과 허무함이 깊게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임지섭과 테임즈 모두 위와 같은 순간이 다시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야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길이길이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권용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이클링히트라는 대기록보다 2사 1루에서 1,2루를 만드는 게 과연 더 가치가 있었을까.

끝으로 이승엽을 볼넷으로 내보낸 장면. 무엇보다 LG는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기 싫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재계 라이벌' 삼성이었다. 더욱이 LG는 최근 9위로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4연패도 아픈데, 대기록까지 내줄 경우 팀 분위기는 극도로 심각해질 수 있었다.

9회 6점차. 사실상 승부가 갈린 상황. 당초, LG 측은 이승엽을 거를 생각이 없었다. 이승엽이 타석에 서자 그를 막기 위한 '수비 시프트'도 펼쳐졌다. 하지만 투수 신승현은 사실상 고의4구로 볼 수 있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다. 3루 측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졌다.

이 결정이 LG 양상문 감독의 지시였건, 혹은 신승현의 단독 결정이었건 간에 결과적으로 LG는 이승엽과의 정면 승부를 회피했다. 그리고 대범하지 못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물론, 이런 사실은 몇 년이 지나면 팬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믿음을 저버린 자충수를 둔 것은 아닐지.

프로 선수들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산다. 야구 경기에서 나오는 각종 대기록들은 팬들의 또 다른 볼거리다. 특히, 대기록 달성 직전에 나오는 경기 흐름들은 긴장과 환희, 전율과 감동의 연속이다. 팬들은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승부 속에서 나오는 선수들의 도전에 열광한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2003년 10월 2일. 대구구장 삼성-롯데전. 당시, 27세인 이승엽이 아시아 홈런 신기록에 1개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그리고 2회말. 이승엽은 롯데 선발 투수를 상대로 솔로 아치를 그리며 대기록을 달성했다. 당시, 이승엽은 "첫 타석부터 정면 승부를 해준 상대 투수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팬들 역시 정면승부를 펼쳐줬던 그 투수에게 따뜻한 격려와 함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제 와서 당시 홈런을 허용한 롯데 투수가 누구였는지를 반추하는 팬은 많지 않다. 그 투수는 바로 현재 '롯데의 베테랑' 이정민(36)이다.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팬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공교롭게도 삼성은 이번 주 포항구장에서 롯데와 주중 3연전을 치른다. 이승엽과 이정민이 조우할 가능성도 있다. 서로가 12년 전의 맞대결 추억을 떠올린 채. 어쨌건, 이번에는 그 누가 됐건,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정면 승부'를 바라본다. 진정 아름다운 승부를.

이승엽에게 포항구장은 '약속의 땅'이 될 것인가. /사진=OSEN
이승엽에게 포항구장은 '약속의 땅'이 될 것인가. /사진=OSEN








김우종 기자 woodybell@mtstarnews.com

<저작권자 ⓒ ‘리얼타임 연예스포츠 속보,스타의 모든 것’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