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스카우트(27)] 서울 황기욱, 노력 그 이상의 노력을 쏟기에
입력 : 2017.01.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홍의택 기자= 막 꽃피우려는 친구들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축구판 역시 피라미드 구조다. 통계상 초등학생 축구 선수 100명 중 번듯한 프로팀까지 올라서는 이는 1명이 채 안 된다. 생존률 1% 미만의 극한 경쟁. 숱한 이들이 궤도권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그런데 프로 무대 초입에서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잘한다는 이들만 살아남았으니 누구 하나 빠질 리가. 각 지역구에서 두각 드러낸 것은 물론이며, '천재'나 '신동' 소리도 제법 들었다. 프로팀 주전 확보 및 대표팀 진입을 위한 다툼은 이제부터다.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다들 고만고만하다. 기술력도, 들이는 노력도 거기서 거기다. 격차가 크지 않아 발이라도 헛디디면 또 다른 누군가가 바로 치고 들어온다. 이게 현실이다. 축구 참 어렵다.

단, '그 이상'을 찍고야 마는 이들이 더러 있다. 남들이 한계를 느낄 때, 한 번 더 발버둥 친다. 더 짜낼 게 없을 듯한데, 기어코 한발 더 나아가야 직성이 풀린다. 오늘 소개할 황기욱(20, FC 서울, 사진 가운데)도 마찬가지다.




황기욱. 수비형 미드필더로 탑재한 장점이 꽤 많다. 184cm, 70kg 중후반대 체형부터 탄탄하다. 기본적인 파워, 수비력, 예측 능력, 활동량, 적극성, 타점 등이 눈에 띈다. 공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의 선택이나 간헐적으로 쏘는 왼발 슈팅도 준수하다.

수비형 미드필더의 미덕 중 하나로 꼽는 터프함도 따져볼 만하다. 동료 수비수에 앞서 상대 공격수를 괴롭히는 게 이들의 임무. 단, 잘 쓰면 약이요, 못 쓰면 독이다. 빨빨거리면서 많이 뛰어도 위험 진영서 저지르는 파울 하나에 팀 전체가 요동친다. "파울하지마! 따라가기만 해!"란 지도자 단골 멘트도 여기에서 나왔다.

적정 선을 지키기가 참 어렵다. 무작정 뛰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들어올 길목을 떡 하니 차지하고 힘 있게 부술 수 있느냐에 수비형 미드필더의 퀄리티가 나뉜다. 황기욱은 이 부문을 묵직하게 해냈다. 딱 끊거나, 줄기차게 따라가거나. 해당 포지션에서 갖춰야 할 '치고 빠지는 눈치'란 게 있었다.

연세대의 4-1-4-1 형태가 곧잘 돌아간 것도 이 덕이 크다. 한승규(울산 현대 입단), 전주현, 강상민 등이 공격적으로 활개를 친 동안, 후방 1자리는 황기욱이 도맡았다. 공격 템포를 극대화한 팀 플레이 속, 선수 본인의 시야도 넓어졌다. 상대적으로 팀 전력이 약했던 서울 오산고(FC 서울 U-18) 시절보다 한결 흥을 냈다. 홀로 너무 많은 짐을 떠안기보다는 개인 역할에 충실하며 팀을 지탱했다.




각급 대표팀 이력도 꽉 채웠다. 세계 무대에까지는 연이 닿지 않았으나, 본선행 티켓을 걸고 싸우는 AFC(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U-23 챔피언십 실전에 모두 출격했다. 만 16세 당시 출전한 AFC U-16 챔피언십 외 연령대가 맞지 않았던 황기욱은 월반을 통해 기회를 잡았다.

월반 대상자를 찾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빼어난 기량으로 한두 살 많은 형들을 누르곤 한다. 하지만 3년을 뛰어오르는 건 엄연히 다르다. 리우 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1996년생 황기욱이 1993년생 형들과 경쟁했던 데 눈길이 간 것도 이 때문. 가랑이 찢어지리란 우려에도 순항을 거듭했다.

오히려 주요 대회와 연령대가 어긋난 게 선수 내면의 동기를 자극한 건 아닐까 싶다. 선수는 온몸 던져 열정을 불태웠고, 지도자는 동 연령대에는 얻지 못할 '양질의 경쟁'을 제공했다. 대학 무대는 2학년에서 접고 더 높은 레벨에서 부딪혀봤으면 하는 시선도 이에 근거한다. 현재 하고 있는 축구를 편하게 여긴다면 딱 거기까지일 공산이 농후하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끈을 조여맨들, 성장의 폭을 보장받지는 못한다.




황기욱은 지난 연말 휴가차 유럽으로 향했다. 현지서 축구를 보고 돌아와 "소름이 돋더라고요"라며 소감을 전했다. 보통은 구장 분위기가 좋다는 둥의 얘기를 늘어놓건만 "공중볼 딱 뜨는데 수비형 미드필더가 세컨볼 잡으려고 스프린트 하는 거예요. 그거 보고 진짜 전율이 와!"라며 신나게 떠들었다.

그간 쭉 관찰해온 해당 연령대 선수들과는 또 다른 구석이 있었다. '에이, 걔는 타고났잖아'라는 무심코 내뱉는 평가가 실례일 정도로 축구에 집착했다. 적당히 유지하려 할 법도 한데, 끊임없이 갈구하며 채우려 했다. 극한으로 몰아붙이면서 건설적 불편함을 감수했다.

그러자 축구가 계속 달라졌다. 정체기는 있었을지라도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그 나잇대는 한두 달이 다르게 발전한다니까"라던 여느 지도자들의 말을 황기욱을 보며 몸소 느꼈다. 프로에서의 적응기가 필요는 하겠으나, 이런 타입은 대개 시간만 주어진다면 어느샌가 제 위치를 찾곤 한다.

가끔은 이 세상 축구를 혼자 다 짊어지려 했다. 그 모습이 가상하다가도, 나잇대에 맞지 않는 엄중함에 웃음이 나오곤 했다. 너무 잘하려고 힘 주다 몸이 무거워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했다. 다만 그마저도 지금의 황기욱을 만든 긍정적인 욕심으로 바라보는 게 맞다 싶었다. 노력, 그 이상의 노력을 쏟던 그 행보는 언제나 특별했으니 말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FC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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