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아시안컵] 배부른 호랑이들, 병역이 걸렸다면 달랐을까
입력 : 2019.02.0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이현민 기자= 동기부여 탓일까.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에서 한국 축구가 보인 모습은 너무 달랐다.

한국은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김학범 감독 지휘 아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뛰어난 선수 장악력, 여기에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가 와일드카드로 승선해 U-23 후배들을 이끌고 아시아 최강에 우뚝 섰다.

당시 한국이 정상에 오를 수 있던 원동력은 ‘병역 면제’다. 완장을 찬 손흥민은 해결사보다 뒤에서 많이 뛰고 조율하고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골은 황의조가 넣었고, 조현우 역시 최후방을 잘 지켰다. 김민재, 황인범, 황희찬, 이승우, 김문환 등은 각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들은 병역 문제 앞에서 자발적 원팀이었다. 이 악물고 한 번 해보자고 의기투합 했다. 약 2년 가까이 국방의 의무는 프로 선수에게 치명타라는 걸 알았다. 결국 해냈고, 금메달 멤버들은 파울루 벤투 감독이 부임한 A대표팀에서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여섯 차례 평가전에서 무패를 달렸고, 순풍에 돛단 듯 선수들, 팀 전체가 자신감에 가득 찼다.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됐다.

뚜껑을 열자 실망만 가득했다. 지난해 11월까지 보여줬던 주도하면서 몰아치는 역동적인 축구는 사라졌다. 벤투 감독의 색은 하나도 없었다. 부상자 발생, 이와 관련된 의료팀 문제, 선수 이적설 등이 겹치며 어수선했다. 악조건에서도 벤투 감독은 “상관없다”며 갈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졸전을 거듭한 끝에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힘겹게 승리했다. 중국과 조별리그 3차전에서 손흥민 효과로 모처럼 시원한 경기를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한국이 잘한 게 아닌 중국의 전력이 형편없었다. 바레인과 16강은 연장 혈투 끝에 겨우 이겼다.

그래도 아시아에서 방귀 좀 뀐다는 한국이 쉽게 무너질 리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8강은 카타르였다. 문제는 계속 두드려도 열리지 않았다. 골을 못 넣으니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 저하가 눈에 띄었다. 마음은 급했다. 기본적인 터치, 패스조차 안 됐다. 쓸데없는 파울을 범했고, 위험지역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단체로 뭔가에 홀린 듯 무기력했다. 후반 33분 한 골 내줬다. 이후 몰아쳤지만,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악착같은 선수는 몇 없었다. 안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볼을 빼앗기면 어떻게든 되찾아 오려는 책임감은 이미 실종됐다. 마치 ‘나 하나쯤 안 뛰면 어때(일부는 몸을 사리려는)’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듯했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린 후 선수들은 그저 억울하고 분한 표정만 지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일 정도,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드러누운 선수는 없었다. 일부 선수에게 물어보니 당연히 최선을 다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믿기 힘들었다. 되묻고 싶다 다 쏟았는지.

벤투 감독은 카타르전이 끝난 후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졌다”는 원인을 들었다. 맞는 말이다. 이 한 번의 실수가 있기 까지 과정을 보면 선수들이 상대를 얼마나 쉽게 생각했고, 안이하게 준비하고 대처했는지 알 수 있다. 주심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경기의 일부고, 공정성을 위해 VAR까지 활용했다. 벤투 감독도 이 부분에 관해 “판정이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이번 아시안컵은 한 단어로 정리하면 ‘실패’다. 벤투 감독의 전술, 지략 문제는 분명 짚고 가야할 부분이다. 더욱 중요한 건 선수들의 마음가짐이다. 다수 외신에서는 한국을 우승후보로 지목했지만, 실망만 가득했다. 도전자의 자세가 아닌 마치 몇 번이고 이 대회에서 우승한 팀인 것 같았다. 아시안컵 우승으로 얻는 건 상금(500만 달러, 한화 56억 원)과 59년 만에 명예회복 정도다. 개인보다 팀에 초점이 맞춰지니 동기부여가 떨어질 만하다. 그렇지만, 프로이자 국가대표라면 어느 대회에서든 최선을 다하고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만약, 원초적인 힘까지 끌어내는 병역이 걸려 있었다면, 이 정도였을까. 한국은 이미 배부른 호랑이였다. 비단 아시안게임 멤버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그저 우승하겠다는 말만 앞섰을 뿐, 정신적 신체적으로 전혀 준비돼있지 않았다. 그 결과가 8강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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