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 '13세 찐팬'의 나홀로 제주 여행기...일일 선수로 '해피엔딩'
입력 : 2020.03.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제주] 이경헌 기자= 코로나 19 확산으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K리그. 외부인의 발길이 완전히 끊겨 적막감만 감돌았던 제주유나이티드에 예상치 못한 깜짝 손님이 찾아왔다. 지난 6일 제주 선수단을 응원하기 위해 나홀로 클럽하우스 나들이에 나선 현유석 군(13)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유석 군은 소위 말하는 '찐팬'이다.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주황색 유니폼 챙겨 입고 빠짐없이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찾으며, 전 경기 결과 뿐만 아니라 선수들의 활약상과 전술 변화까지 다 꿰고 있는 '축잘알'(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다. 지난 시즌 2부리그 강등에도 끝까지 '최강 제주'를 외쳤던 의리남이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K리그 개막이 무기한 연기된 것. 3월 1일 제주의 홈 개막전을 손꼽아 기다렸기에 아쉬움이 컸다. 하지만 제주를 위한 열망은 더욱 커졌다. 오는 23일까지 개학이 연기되면서 아주 특별한 외출을 준비했다. 제주 선수단 응원을 위해 부모님 동의 하에 클럽하우스를 나홀로 직접 방문하기로 한 것.

먼저 선수단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거주지 제주도 서귀포시 보목동에서 제주 클럽하우스까지의 거리는 약 10km.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안전수칙을 더욱 준수하고, 대중교통(버스) 이동 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도 수시로 사용했다. 만약의 경우를 감안해 핸드폰 화면에서 부모님 번호를 잊지 않았다.

훈련 일정에 맞춰 약 1시간 만에 어렵사리 도착한 클럽하우스. 또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클럽하우스에서 진행되는 훈련과 연습경기에 외부인 방문을 자제시키고 있었던 것. 그렇게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 모자를 쓴 중년 남성이 찾아와 따스히 손을 잡아줬다. 바로 멀리서 현유석 군을 지켜봤던 남기일 감독이었다.

현유석 군의 사연을 귀담아 들은 남기일 감독은 바로 구단 AT(athletic trainer)팀을 호출했다. 발열 확인과 함께 기침과 콧물, 한기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는지, 부모님과 통화 후 위험지역을 방문했거나 확진자와 접촉한 적이 있는지를 확실하게 체크한 뒤 제주의 '일일' 선수로 현유석 군을 영입했다.

남기일 감독은 선수단에 현유석 군을 정식으로 소개하고 훈련 참관을 허락했다. 현유석 군은 안전상의 문제가 크게 없는 선에서 해맑은 미소와 함께 훈련 도우미로 활약하며 삭막했던 그라운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제주 선수들도 현유석 군과 수시로 눈맞춤을 하며 더욱 뜨거운 땀방울을 흘렸다.



훈련 종료 후 제주 선수단은 현유석 군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현유석 군이 챙겨온 유니폼에 선수단 전원이 친필 사인을 해줬다. 그리고 두 손으로 쥐고 있던 낡은 축구공 대신 지난 시즌 선수들이 홈 경기에서 직접 사용했던 공인구를 선물했다. 현유석 군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여행이었다.

남기일 감독은 "훈련장 밖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현유석 군의 제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은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었다.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다. 팬들은 우리와 함께 추억을 남기는 것이고 추억은 영원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추억이 현유석 군에게 최고의 선물이 됐으면 한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구단 프런트의 차량 지원으로 안전하게 귀가한 현유석 군은 "나홀로 깜짝 방문으로 행여나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 어쩌면 무모했던 내 도전을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게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준 남기일 감독님과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제 제주유나이티드는 내게 둘도 없는 친구다"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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