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전어' 박성호, 지도자로 새 출발...''유소년 축구 문화 바꾸고 싶다''
입력 : 2020.04.2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송도] 서재원 기자= '가을 전어' 박성호(37)가 은퇴 후 유소년 지도자로 다시 태어났다.

K리그 306경기 출전 67골 24도움. 2001년 안양LG를 통해 데뷔해 17년 동안 K리그를 휘저었던 박성호가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사실 박성호는 2017시즌을 끝으로 프로 생활을 마감했다. 2018년부터 소속된 팀이 없었으니, 은퇴한지 벌써 2년이 지났다. 굳이 은퇴 시점을 따지자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박성호의 은퇴에 대해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을 전어'라는 독특한 별명을 지닌 K리그 내 몇 안 되는 선수임에도 너무나 조용히 축구화를 벗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K리그에서 17년 동안 활약했지만, 한 클럽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시기가 4년(대전시티즌)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클럽인 성남FC에서는 1년 만 뛰었다.

지난 17일 인천 송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성호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저는 원클럽맨과 거리가 먼 선수다"면서도 "그래도 한 매체의 인터넷 방송에 나가 은퇴 소식을 전했다. '가을하면 생각나는 선수'라는 주제로 인터뷰를 했고, 작게나마 저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조용히 떠나보기엔 아쉬운 선수다. 여전히 '가을'만 되면 생각나는 선수로 꼽힐 정도로 K리그에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기 때문이다. 마지막 시즌도 나쁘지 않았다. 2017년 성남에서 31경기 뛰며 9골 1도움을 기록했다. 팀 내 최다 득점자이자, 최고 활약 선수였다. 성남이 여름에 황의조를 떠나보낼 수 있었던 것도 박성호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성남과 재계약을 논의하기도 했다. 타 구단의 오퍼도 있었다. 타 구단의 경우, 은퇴식 및 플레잉코치의 기회까지 주겠다는 매력적인 제안을 했다. 그러나 박성호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적극적인 제안은 아니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타지 생활에 지친 그는 '여기까지 하자'고 마음먹었다. 목표했던 300경기도 채웠기에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선수 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도 있었다. 마지막 해에 9골을 넣었다. 팀 내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팀 성적이 안 좋아 감독님이 교체되는 과정이었다. 새로 오신 감독님의 스타일과 제가 안 맞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새로운 팀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를 필요로 하는 팀이 우선이었다. 저를 간절히 원했던 팀이 있었다면 갔을 거다. 그런데 대부분 팀들이 노장을 선택할 때, 부담을 느낀다. 협상은 했지만 와 닿지 않았다. 어느 순간 미련 없이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이 없다고 했지만, 아쉬움은 분명하다. 박성호는 자신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외쳐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까지 은퇴를 고민했던 이유다. 그래서 해외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마침 태국의 몇 개 클럽은 물론, 인도의 케랄라 블러스터스FC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과거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던 데이비드 제임스가 이끌고 있는 팀이었다. 당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웨스 브라운도 있었다.

박성호는 "제임스 감독이 제게 제안을 했다는 점에 놀랐다. 만약 갔다면 베르바토프와 브라운과 호흡을 맞출 수도 있었다. 해외에 가서 가족들과 편안하게 지내며 은퇴를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끝내 인도행을 택하지 않았다. 컵대회 단기 계약 제안이었는데, 즉시 전력감을 원했다. 하지만 저는 동계훈련도 못하면서 2~3개월 쉬던 터라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 꽤 괜찮은 대우였는데, 먹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2018년)에 뛸 수 있는 팀을 찾았는데, 결과적으로 안 됐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성호는 가을만 되면 최고의 몸 상태가 되기로 유명했다. 유럽리그처럼 추춘제로 운영되는 리그에서 뛰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에 그도 "그 고민도 했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사실 대전에 있을 때만 해도 안 그랬다. 가을전어는 포항에서 얻은 별명이다. 저는 자유롭게 뛰는 걸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포지션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다. 포항에서 초반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황선홍 감독님께서 많은 역할보다 골대 앞에서 득점을 하는 것만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그동안 안 해본 역할이라 너무 어려웠다. 첫 경기였던 ACL 플레이오프에서 1골을 넣었는데, 이후 오랫동안 득점하지 못했다"라고 '가을 전어'로 불리게 된 사연에 대해 입을 열었다.



포항 첫 시즌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황선홍 감독과 강철 코치가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끝에 후반기에 진가를 발휘할 수 있었다. 9월 이후 5골을 몰아치며 포항의 순위를 3위까지 올려놓았다. FA컵 결승전에선 극적인 결승골로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박성호는 "강철 코치님이 많이 도움을 주셨다. 데얀과 동국이형 등 스트라이커들의 영상을 모아두신 것을 보여주면서 참고하라고 하시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다. 믿고 기다릴테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결국 여름에 리그 첫 골이 터졌고, 이후 계속 골을 넣었다. 그 땐 시즌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몸이 올라왔다. 경기가 계속 이어졌다면 정말 좋은 시즌을 보냈을 거라 생각한다"라고 황선홍 감독과 강철 코치 등 당시 코칭스태프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박성호는 여전히 황선홍 감독을 최고의 지도자였다고 말한다. "기억에 남는 지도자들이 많이 계시지만, 황선홍 감독님은 권위적이기 보다 선수의 생각을 같이 이해하고 공유하시는 분이었다. 훈련 중 선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어주시고, 경기에 반영하셨다. 실전에서 해본 뒤 판단하시는 분이었다. 무엇보다 공격수로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격수로서 전문적인 교육을 황선홍 감독님께 처음 배웠다. 상황 상황마다 움직임, 타이밍, 등지는 플레이 등 말이다. 참 웃긴 일이다. 프로에서 200경기 이상 뛴 공격수가 움직임에 대해 처음 배웠으니 말이다. 학창시절 때는 배운 적이 없다. 우리나라 교육의 현실인 것 같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박성호 역시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 프로 출신 선수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프로 등 성인 팀이 아닌, 유소년 지도자로 발을 들였다는 점이다. 프로와 대학팀의 제안도 있었지만, 가장 밑 단계인 유소년 지도자로서 시작하기로 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그가 언급했듯이, 본인이 학창시절 배우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는 지난 3월 인천 송도에 'SD 일레븐'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처음부터 어느 한 팀에 소속되고 싶지 않았다. 한 팀이나 학교에 소속되면, 제가 하고자하는 지도 방식을 시험할 수 없다. 팀 색깔에 맞춰 따라야 한다. 프로팀에 갈 수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으로 지도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금전적인 부분은 부담되지만, 제 사업으로써 클럽을 발전시키면 따라올 수 있는 게 많다고 봤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시험하고, 지도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클럽이라고 생각했다."



박성호는 지난해부터 유소년 지도를 시작했다. 1년 동안 클럽 운영을 배우면서, U-12팀 지도는 물론, U-15팀 선수들의 레슨도 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박성호는 유소년 클럽에 대한 눈을 떴고, 클럽을 새로 세워 자신의 뜻을 펼치기로 했다. 그는 "아직 아이들이 즐겁게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고 본다. 지도자 교육을 받을 때 '유소년들은 즐겨야 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이상적인 이야기다. 저는 그 이상을 실현시키고 싶었다. 지금도 성적을 내는 팀은 자율적인 축구를 하는 팀은 거의 없다. 반복적인 훈련을 해야 빨리 성적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땐 틀을 잡아야 한다. 어릴 때 모든 것을 다 시키면 저처럼 밖에 못된다"라고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답했다.

결과와 과정은 유소년 축구에서 늘 고민하는 문제다. 박성호는 "플레이가 좋은 팀은 아이들의 개인 기량이 좋은 팀이고, 성적이 좋은 팀은 팀이 좋은 팀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결과를 논하면서 팀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개인을 모아서 팀을 만들어야 한다. 팀을 위해 개개인을 모으는 게 아니다. 한 명 한 명 개인 기량을 살려서 접목을 시켜야 한다. 8명에게 똑같은 것을 가르치고 똑같은 것을 원하면 안 된다. 아이들의 성향을 찾게 한 다음에 포지션을 배치해야 한다. 제가 안타깝게 느끼는 성적 내는 팀의 축구는 골을 먹지 않기 위해 수비에서 공을 걷어내고, 수비 지역에서 빌드업을 못하게 하고 있다. 수비 지역 빌드업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사실 부모님들과 의견 대립도 있다. 처음에 난리가 났었다. 전국대회에서 입상하는 팀과 경기에서 10~12골씩 실점하면서 졌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실점해도 공을 돌리라고 했다. 아이들이 1골, 2골 계속 먹히니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밖으로 차내라고 지시하더라. 경기 후 부모님들을 불러놓고 설득했다. 아이들이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기는 지금밖에 없다고 했다. 나중에 가을 쯤 되니, 10~12골 먹는 팀을 상대로 1~2골 밖에 실점하지 않게 됐다. 시기가 다를 뿐이다. 한국 유소년 축구가 점차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모든 스타일을 존중해야 한다. 하지만 저희 클럽은 그렇게 운영해 가보려고 한다. 모두가 결과보다 성장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저희는 그렇게 하려고 한다"라고 유소년 지도에 대한 신념에 대해 밝혔다.



그렇다면 'SD 일레븐' 대표 박성호의 목표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그는 "저희 클럽 출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목표다. 유럽 등에서 활약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이익을 창출하는 것보다 그런 친구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친구들이 활약을 하면 클럽이 탄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즐기는 축구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저희 클럽이 뿌리가 되고 싶다. 저도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떳떳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이제는 선수들이 지도자를 평가한다. 외국은 선수들이 지도자를 마음에 안 들어 하면, 경질까지 이어지곤 한다. 선수들한테 인정받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라고 말했다.

박성호는 생각보다 더 길게 바라보고 있었다. 최소 5년을 유소년 클럽에 매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언젠가는 프로 등 성인 팀을 맡겠다는 꿈은 있다. 하지만 당장의 조급함 때문에,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한 도전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박성호는 "지도자는 자기 축구 색깔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K리그에서 '병수볼'이 가장 핫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병수 감독님도 대학에서 오랫동안 선수들을 지도하셨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색깔을 만들 수 있다. 제가 어느 정도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제가 감독이 됐을 때 저만의 것을 갖춰야 한다.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이 실패하는 이유도 그런 거라 생각한다"라고 지도자로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박성호는 마지막으로 "저희 클럽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아이들에게 성적이나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아이들이 즐겁게 축구하고, 특기로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무조건 축구선수가 돼야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적이나 목표의식, 꿈에 사로잡히지 않고 즐겁게 축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라며 유소년 축구 지도 문화를 하나씩 바꿔나갈 것을 약속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박성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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