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핫피플] 신진호의 진심, “포항에서 꿈 키웠어, 늘 감사하다”
입력 : 2020.06.0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포항] 이현민 기자= 울산 현대 주장 신진호가 '친정' 포항 스틸러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포항 유스 출신인 신진호는 현재 울산에서 뛰고 있다. K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가장 치열한 라이벌 두 팀을 모두 경험하고 있다. 지난해 5월 4일 친정에 비수를 꽂은 후 경례 세리머니를 해 화제를 모은 신진호다. 그러나 가장 중요했던 12월 1일 포항과 리그 최종전에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1-4 패배, 준우승으로 밀려난 상황을 관중석에서 지켜봤다. 두 팀과 때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인 그에게 아픔은 배로 다가왔다.

울산은 충격을 딛고 새 시즌 새판짜기에 들어갔다. 외부에서 전현직 국가대표들을 대거 수혈했다. 김도훈 감독은 신진호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실력과 경험을 믿었다. 신진호는 태국 치앙마이 동계훈련 때부터 안팎에서 리더십을 발휘했다. 우선, 팀 결속을 다지는데 주력했다. 팀 훈련이 끝난 후 그라운드에서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부족한 운동량을 채웠다. 국내에 들어와서도 기조를 유지했다.



안타깝게도 2월 FC도쿄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1차전(1-1무) 후 공식 축구시계가 멈췄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발목을 잡혔다. 그럼에도 신진호는 감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5월 9일 우여곡절 끝에 시즌이 개막했고, 울산은 2승 2무로 나름 순항했다. 승격 팀인 부산 아이파크, 광주FC와 비기며 다소 주춤했으나, 기우였다. 5라운드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포항을 만났다.

165번째 동해안더비를 앞두고 신진호의 발언은 또 화제가 됐다. “포항이 우리를 조롱하듯 헹가래를 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고 불을 지폈다. 비장했다.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6월 6일 뚜껑을 열자 신진호는 기다렸다는 듯 펄펄 날았다. 전반 25분 이청용의 선제골은 신진호 발에서 시작됐다. 신진호가 측면에서 올린 날카로운 크로스가 주니오 머리를 거쳐 골대를 강타했다. 세컨드 볼을 이청용이 마무리했다.

신진호는 경기 내내 가벼웠고, 자신감 넘쳤다. 뒤에 전문 홀딩인 원두재가 버티고 있으니 장점인 패스와 운영 능력이 살아났다. 수세에 몰릴 때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해 포백을 보호했다. 몸을 사리지 않았다. 궂은일을 도맡으며 울산의 승리를 뒷받침했다.

화끈한 대승에도 크게 웃지 않았다. 현재 자신을 있게 해준 직장 선후배, 동료들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경기에서 졌지만, 신진호를 어릴 때부터 지켜봤던 포항 직원들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살살 좀 하지”, “몸 좋던데”라고 웃으며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날 적이 됐다고 한들 어떻게 미워하리.

현장에서 만난 신진호는 “동해안더비를 많이 기다렸다. 다른 경기처럼 준비했다. 목표를 향해 가야하는 경기였다. 똘똘 뭉쳐 잘 해냈다. 첫 대결을 크게 이겨 개인적, 팀적으로 기쁘다. 울산 팬들이 경기장에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청하시면서 지난해 느꼈던 아픔을 조금이나마 씻어내셨길 바란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날 경기 후 김도훈 감독은 주장인 신진호를 포함한 선수단에 덕담을 건네며 승리를 자축했다.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고 묻자 신진호는 “감독님이 ‘지난 두 경기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으나, 이번 경기를 준비하면서 코칭스태프, 선수 모두 자신감이 보였다. 준비하는 과정 속에 의지를 확인했다’고 칭찬해주셨다. 선수들의 사기가 더 올랐다. 밝고 긍정적인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이처럼 신진호가 잘하면 잘할수록 동해안더비는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포항 일부 팬들은 과거 영광을 잊은 채 아직 그에게 엄격한 잣대를 가한다. 프로의 세계가 그렇다. 때로는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없는 상황도 있다. 신진호도 안다. 그럼에도 유연하게 대처하면서, 겸허히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이와 관련해 입을 열었다.

“포항에 있을 때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었다. 나는 스타일 자체가 어딜 가도 열심히 한다. FC서울로 이적할 때 포항 팬들의 마음이 조금 상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오해 아닌 오해가 불거졌다. 이적 후 포항 원정에 오면 야유가 쏟아진다. 선수가 자기 고향 같은 곳에서 야유 받으면 기분이 안 좋은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프로니까 항상 받아들이고 이겨내려 한다. 축구를 하며 여기서(스틸야드) 꿈을 키웠다. 마음속에 포항이 있다.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진심이 묻어났다.

신진호는 포항 팬들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혔다. 그럼에도 이런 화제성 발언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더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다. 포항을 자극하는 건 정말 포항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다. 동해안더비 나아가 K리그가 조금이라도 주목 받고 콘텐츠가 생산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자극하자 직진이든 우회든 반응이 온다. 그렇게 하나하나씩 스토리가 쌓여간다.

“언론을 통해 가끔은 자극적으로 기사가 나갈 때도 있다. 우리가 신호를 주니 포항도 응답했다. ‘1588(포항 외국인 선수 4인방)’로 재치 있게 받아치기도 하고, 우리도 거기에 살을 덧대고. 긍정적인 부분이다. 사실, 동해안더비 자체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수년 동안 그래왔다. 포항에 있을 때 더비의 중요성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울산에 오니 알겠더라. 지난해 1승 3패를 하면서 자존심이 상했다. 선수로서 감정, 팬들의 감정, 제3자 입장에서 분명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개인적으로 더 노력하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신진호가 진정으로 포항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증거가 있다. 포항 레전드이자 현 수장 김기동 감독이다. 김기동 감독은 지난해 “진호가 조금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포항을 만날 때를 제외하고. 김기동 감독이 현역으로 마지막 불꽃을 태울 때 신진호가 막 프로에 입성했다. 등번호 6번을 물려받았다. 아꼈던 후배 중 한 명이다.

“(김기동 감독님과) 아주 잠깐이었지만, 같이 있으면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K리그 레전드다. 훌륭한 선수 시절을 보낸 후 6번을 내가 이어 받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이 본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상대로 만나면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나도 감독님도 승리 앞에 냉정해야 한다. 나는 지금 울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포항과 남은 경기도 우리가 가져가겠다. 이왕이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하루빨리 끝나고 팬들 앞에서 이기고 싶다.”



사진=울산 현대,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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