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효연 감독 ''내 지도자 인생도 맨발의 청춘! 깨지면서 나아가겠다''
입력 : 2020.09.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동국대학교] 서재원 기자= 안효연 감독이 모교 동국대학교(이하 동국대)를 대학축구 정상에 올려놓았다. 가진 것 하나 없이 뛰어든 지도자의 길도 '맨발'로 헤쳐 나가고 있다.

안효연 감독이 이끄는 동국대학교가 지난달 28일 강원도 태백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 56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하 추계연맹전) 태백산기 결승전에서 숭실대를 2-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동국대는 2010년과 2011년 2연패 이후 9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결코 쉽지 않은 우승이었다. 사실 동국대는 우승 후보로 평가받는 팀이 아니었다. 엔트리를 겨우 맞출 정도로 선수단 규모도 작았다. 한 경기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이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4강에 오른 것도 기적과 같았다. 결승에서 만난 숭실대와 전력차도 상당했다. 숭실대가 선제골을 뽑아낸 뒤에도 전반 내내 일방적으로 경기를 펼친 것도 그 이유였다.

그러나 안효연 감독이 이끄는 동국대는 맨발의 정신이 있었다. 안 감독을 상징하는 '맨발의 청춘'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젊은 것 빼면 시체지만 꿈이 있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폼 잰다지만 젖 먹던 힘을 다해 꿈을 이뤄나갔다. 안 감독은 하프타임에 그런 정신을 강조했다. 가진 것 없이 이곳까지 올라왔으니 한 번 해보자고 외쳤다. 선수들은 안 감독의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고 후반 중반부터 완전히 다른 경기력을 보였다. 결국 후반 18분 황명현과 후반 30분 이규빈의 연속골로 승부를 뒤집었다.

9년 만에 정상에 오른 동국대도 동국대지만, 안 감독 본인에게도 의미 있는 우승이었다. 어렵게 선택한 지도자의 길이었고, 모두가 안 된다고 할 때에도 꿋꿋이 자리를 지켜냈다. 그 결과 동국대 감독 부임 4년 차 만에 팀을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안 감독이 강조하는 믿음의 축구가 빛을 발휘한 것. "안효연이 지도자로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외친 게 2년 전인데, 자신과의 약속을 누구보다 잘 지켜나가고 있다.

우승 직후 안 감독에게 1천여통의 이상의 축하메시지가 쏟아졌다. 여러 프로팀 및 에이전트를 통해 코치직 제안도 들어왔다.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안 감독은 생각보다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우승 이후 약 2주간 휴가가 주어졌는데, 집에서만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지난 3일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도 "이제 우승 한 번 했을 뿐"이라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 스스로도 몰랐던 지도자의 길



안효연 감독은 선수 시절에도 틀에 갇히는 것을 싫어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어준 '카우보이'라는 별명처럼, 그라운드를 자유롭게 내달렸다. 인생 자체도 그랬다. 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다했고, 지나간 일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 인생이었기에 스스로 지도자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가 선수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의 길에 접어들지 않고, 사업에 도전했던 이유다.

안 감독도 "선수 때는 지도자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성격이 자유분방하고 사람도 좋아하다보니, 지도자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초부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 그때 후배가 '사람은 제일 잘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잘 하는 건 축구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축구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었다"고 자신의 방황 아닌 방황에 대해 설명했다.

안 감독은 용호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어떻게 시작하는지도 몰랐다. 부평고 선배인 임종헌 감독이 선수들의 개인 레슨을 부탁한 것이 인연이 됐다. 이후 임 감독이 울산 현대 코치로 가면서, 그에게도 기회가 왔다. 안 감독은 "임 감독님이 울산으로 가게 되면서 코치로 승격하게 됐다. 2년 정도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해보니까 나랑 잘 맞는다고 느껴졌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대화하고, 개인운동을 따로 시켰을 때 기량이 훨씬 느는 것이 보였다. '내게도 소질이 있네?'라고 느낀 뒤 본격적으로 지도자의 꿈을 키웠다. 나쁘지 않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용호고에서 시작한 지도자의 길은 모교인 동국대로 이어졌다. 지도자 자격증을 준비했고 용호고에서 나올 때쯤 A급 연수에 들어갔다. 그때 우연치 않게 김호영 감독(현 FC서울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안 감독은 "사실 전에는 김호영 감독님과 인연이 없었다. 학교 선후배라는 관계 밖에 없었다. 마침 동국대 출신 젊은 지도자를 찾고 계셨고, 대학교에서 같이 해보자고 연락이 오셨다. 사실 김 감독님 주변의 반대도 있었다. 스타일이 맞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김 감독님은 나를 직접 만나보고 평가하셨다"고 모교와 자신을 이어주게 한 김호영 감독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 동국대에서 4년, '감독' 안효연이 되다



때를 잘 만났다. 안효연 감독이 코치로 오자마자, 동국대는 왕중왕전 4강에 올랐다. 이후 김호영 감독은 안 감독에게 지휘봉을 넘겨주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동국대에 안 감독의 시대가 온 것. 하지만 본격적인 대학 지도자 생활은 쉽지 않았다. 안 감독이 이끄는 동국대는 매년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대회에서 탈락했다. 안 감독도 이제야 "지난 2~3년은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젊은 감독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매번 8강, 예선 탈락, 16강까지 밖에 못 갔다. 플레이는 좋았는데 고비를 계속 넘지 못했다. 게임을 잘 하고도 졌다. 플레이가 좋아서 우승까지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대회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내 축구를 바꿔야 하나 고민을 했다. 사실 이기는 축구를 싫어한다. 그런데 성과가 없으니 딜레마에 빠졌다. 3년 동안 실패만 맛본 것 같다."

그러나 때는 분명 있었다. 올해는 이상하게도 잘 풀렸다. 8강에서 호남대를 2-0으로 꺾고, 4강에서는 사어버외대와 2-2로 비긴 뒤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5-3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안 감독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작년에는 프로랑 경기를 해도 1~2골 차로 졌다. 올해는 한 번 지면 5~6골 차가 났다. 게임도 안됐다. 그런데 이 선수들이 우승을 했다. 사실 나도 대회를 치르면서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웃었다.

단순히 운이 아니었다. 실패를 통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였다. 안 감독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빛을 발휘했다. 안 감독은 "올해 코치들이 새로 왔다. 조직력적인 부분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자유롭고, 재밌는 축구를 원하는데, 내가 원하는 축구와 코치들이 원하는 축구를 믹스했다. 처음엔 아이들이 혼란을 겪었다. 하지만 경기를 치르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그래도 우승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다"고 했다.

안 감독의 리더십은 결정적인 순간에 발휘됐다. 바로 결승전이었다. 사실 결승전에서 동국대는 전반 내내 밀렸다. 선제 실점도 내줬다. 전반을 0-1로 마친 안 감독도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커룸에 들어가 고개 숙인 선수들의 얼굴을 보면서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 새끼들의 고개 숙인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평상시 하프타임 때 1~2분 만에 말을 끝내는 안 감독도 결승에는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잔소리를 했다.

"아이들의 고개 숙인 모습이 보기 싫었다. 아마추어라도 고개 숙이는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평소 지더라도 우리의 축구를 하면 뭐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잔소리를 조금 했다. '여태까지 잘 해왔고, 여기가지 온 것도 너희들이 만든 거다. 선생님들은 서포트만 했다. 이렇게 잘 해왔는데, 솔직히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오늘 경기는 너무 부끄러운 것 같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심리를 건드렸다. 스스로 창피해지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고 나갔다."

안 감독의 처방은 정확했다. '창피해지지 말자'는 말이 선수들의 잠자고 있던 신경을 깨웠다. 전반 내내 얼어붙어 있던 선수들은 후반 들어 귀신 같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결국 후반 2골을 몰아친 동국대는 승부를 뒤집었다. 그렇게 '남산코끼리' 동국대는 모교가 낳은 최고의 스타 안효연과 함께 대학축구 정상에 올랐다.

그럼에도 안 감독은 모든 공을 코칭스태프, 자신을 믿어준 학생들, 모교 동국대에 돌렸다. "나는 특별히 한 게 없다. 날 믿어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스스로 해낸 것이다. 무엇보다 모교인 학교에 감사함을 드리고 싶다. 잠재력만 보고 초짜 감독을 자리에 앉혀 주셨다. 지금까지 실패만 거듭했는데, 믿고 기다려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다. 이사장님, 총장님, 체육실장님을 비롯해 모든 학교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 부담은 없다. 단지 즐길 뿐. 맨발의 청춘이니까



예상하지 못한 우승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다음에 대한 기대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부담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이는 아마추어나 프로 모두 매한가지다. 그러나 안효연 감독은 달랐다. 그에게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부담에 사로잡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지도자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승팀이라고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즐기려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제야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더 욕심이 난다."

안 감독은 더 많은 실험을 예고했다. 우승에 대한 부담을 줄였으니, 이제는 자신의 축구에 대한 욕심을 내겠다고 했다. 물론 성적은 기본적으로 가져가면서 말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축구를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다. 아이들을 통해 실험도 하고 싶다. 물론 성적을 내는 한도 내에서 실험을 해야 한다. 나 역시 지도자로서 스스로 발전하는 단계다. 프로 감독이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에게도 프로로 나아갈 수 있고,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남다른 솔직함을 보였다.

그렇다면 안 감독이 원하는 축구는 무엇일까. 바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자율적인 축구, 창의적인 축구다. 안 감독은 부산아이파크 시절 이안 포터필드 감독과 대표팀에서 만난 히딩크 감독을 떠올렸다. 안 감독은 "포터필드 감독님과 히딩크 감독님 모두 내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믿음을 주셨다. 나도 믿음을 주려는 감독이 되려고 한다. 아이들이 감독을 믿는다면 순간순간의 재치와 번뜩임이 나오게 된다"고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축구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믿음과 자율, 창의적인 축구만으로는 팀을 완성시킬 수 없다. 포지션마다 약속이 필요하고 모든 합이 맞춰졌을 때 비로소 빛을 발휘할 수 있다. "무엇보다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어야 한다. 미드필드에서 활동량이 기반이 돼야 공격이 살아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공격수들의 개인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다. 내가 프로 때 그랬던 것처럼,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고 사이드에서 벗길 수 있는 축구를 구사하고 싶다. 그런 축구를 하면 못 이길 수 없다."

안 감독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축구를 완성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계획이다. 우선 다음 목표는 프로 지도자다. 물론 우승을 했다고 바로 프로에 가겠다는 뜻이 아니다. 대학교에 머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정체될 수밖에 없기에 늘 다음 목표를 설정해 두는 것뿐이다. 안 감독도 스스로도 "아직은 아니다. 냉정히 스스로를 판단한다면 지금 당장 프로 감독이 될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안 감독은 "대학교도 마찬가지고, 프로도 마찬가지지만, 이 자리에 안주하면 지도자를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에 계속 있겠다는 생각도 금물이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계속 머물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대학교에서 최소 2~3년 더 해야 프로에 도전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역량을 채울 수 있다. 내 스스로 준비가 됐다고 생각할 때 움직이겠다. 내 위치에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이 올 때까지는 공부를 더 하고 싶고, 실험을 하고 있다. 솔직히 주위에서 프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스스로 느끼기에 아직은 아니다"고 자신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맨발로 뛰어들었던 선수시절과 같은 마음이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배우고 익히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이다. 안 감독도 "나는 그렇게 멀리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플랜은 갖고 있지만 바로 앞 단계만을 생각하고 나아가겠다. 늘 맨발의 청춘의 마음이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폼 잰다지만, 폼생폼사다. 내 스스로가 자신 있고 떳떳해야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강조한다. 나와 내 제자들 모두 그렇게 나아가겠다"고 외쳤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대학축구연맹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