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VO 초점] 흥국생명의 늦은 결단, 그마저도 왜 애매한 '무기한 자격 정지'였을까
입력 : 2021.02.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동윤 기자=흥국생명이 과거 학교 폭력 논란을 인정한 이재영-이다영(24) 쌍둥이 자매에 대해 '무기한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내렸지만, 여전히 여론은 싸늘하다.

15일 흥국생명은 "사안이 엄중한 만큼 이재영-이다영 선수들에 대해 무기한 출전 정지를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두 선수는 자숙 기간 중 뼈를 깎는 반성은 물론 피해자분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비는 등 피해자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0일 새벽,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이재영-이다영의 과거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진 지 5일 만에 나온 구단 차원에서의 공식 징계다. 흥국생명은 이재영-이다영의 복귀는 장기간 미복귀도 염두에 두고 있을 정도라며 강경한 입장이지만, 웬일인지 팬들의 비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배구연맹, 한국배구협회 자유게시판을 비롯한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무기한 자격 정지' 결정을 내린 흥국생명의 결정에 조소를 보내고 있다.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징계가 나왔음에도 배구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먼저 흥국생명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해 빠르고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 학교 폭력 사실이 밝혀진 10일 오후, 흥국생명은 해당 선수들에 대한 징계 없이 "선수들이 뉘우치고 있으니 충분히 반성하도록 하겠다,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즉각적인 징계가 없어 논란이 된 와중에 흥국생명의 한 구단 관계자가 "두 선수의 상태가 좋지 않아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 징계라는 것도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상태가 됐을 때 내려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보도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러한 취지의 발언은 대중들이 흥국생명 구단 차원에서 학교 폭력 가해 사실을 공식 인정한 이재영-이다영 자매를 감싸고, 징계를 미룬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재영-이다영 자매로부터 피해를 입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와 "쌍둥이들이 징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한다는데 왜 그래야 되는 거죠? 그렇게 어렸던 누군가는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어 참아왔을까요?"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이날 있었던 공식 발표에서는 흥국생명의 고심이 엿보였다.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 발표를 말하기에 앞서 "피해자분들께서 어렵게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밝혀주셨다. 피해자분들께서 겪었을 그간의 상처와 고통을 전적으로 이해하며 공감한다"고 얘기했다.

뒤이어 "학교 폭력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두 선수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깊이 반성하고 있다. 구단도 해당 선수들의 잘못한 행동으로 인해 고통받은 피해자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 말씀을 드린다"며 재차 피해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흥국생명의 결정이 좀 더 빠르게 나왔다면 어땠을까. 해당 사건이 밝혀진 당일에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입장을 내기 어려웠다면, 다음날에라도 입장을 정해 발표할 수 있었다.

설 연휴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같은 학교폭력 논란을 겪은 OK금융그룹이 빠르게 대처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13일 OK금융그룹의 송명근-심경섭 역시 학교 폭력으로 논란이 됐고, 그날 오후 즉시 사과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 흥국생명과 송명근-심경섭, OK금융그룹이 다른 부분은 다음날인 14일 나왔다. 송명근-심경섭은 작게나마 잔여 경기 불출전으로써 속죄 의사를 밝혔고, OK금융그룹은 즉각 수용해 곧바로 공식 입장을 내놨다.

얼마 남지 않은 잔여 경기를 출전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학교폭력'이란 잘못을 덮기에 부족하지만, 선수와 구단이 스스로 생각해 움직인 점은 최소한 배구 팬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는 인식을 줬다.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징계가 나왔음에도 배구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막상 5일을 기다린 결과도 실질적 제약이 없는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점이 아쉽다.

지난 5일 동안 배구뿐 아니라 다수의 스포츠팬이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처벌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송명근-심경섭의 징계가 결정되면서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송명근-심경섭의 자체 징계도 "너무 약하다"는 여론이 나온 탓에 이재영-이다영에 대한 기대 처벌 수위가 높아진 것은 흥국생명에서 아쉬울 법하다. 그러나 그 역시 흥국생명이 빠르고 과감하게 처벌 수위를 결정했다면 부담이 덜했을 것이라는 점에서 자업자득이라 말할 수 있다.

이렇듯 흥국생명은 고심 끝에 '무기한 출전 정지'라는 나름의 철퇴를 내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배구 팬 다수의 예상이다. 배구에서 '무기한 출전 정지'는 별다른 효력이 없다. 조금은 다르지만 임의탈퇴 조항조차도 타 종목은 최소 1년은 돌아올 수 없는 등 비교적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배구에서는 언제든 선수나 구단이 마음을 돌린다면 복귀가 가능하다.

잔뼈가 굵은 일부 배구 팬들은 이번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피해자와 원만한 합의를 하거나, 학교폭력 사안이 잊힐 때쯤 복귀할 수 있는 일종의 휴가로 여기고 있다.

여론이 이렇게까지 치달은 데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늦장 대응한 흥국생명에 책임이 있다. 빠르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아픈 옛 기억을 떠올릴 일은 없었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이재영-이다영 자매가 과거 저지른 학교폭력에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재영-이다영 자매를 감싸는 듯한 흥국생명의 태도에 분노했던 피해자는 글 말미에 "다른 누군가는 누군가에 의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들과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해보신 건가요?···너희가 전 재산을 다 줘도 피해자들이 받았던 상처는 하나도 안 없어져"라고 남긴 말은 학교폭력이 결코 한순간의 사과로 끝날 가벼운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이제 시작일 수 있다. 이번 일로 경각심을 가진 배구계는 학교폭력과 관련해 좀 더 본질적으로 다가서려 노력 중이다. 그 과정이 헛되지 않길 바란다.

사진=한국배구연맹, 한국배구연맹 자유게시판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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