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육성 맛집과 헹크와 MOU, 밑바닥에서 성공한 32세 청년 감독 도전
입력 : 2021.06.0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부산] 한재현 기자= 축구 인생은 내내 화려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일찍 그만 뒀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유소년 지도에 몰두했다. 그러나 누구의 도움도 없이 밑바닥부터 실력을 다졌고, 이제 프로 산하 유스팀들이 앞다퉈 그의 팀을 찾아가 선수를 데려오고 있다. 벨기에 명문 중 하나인 헹크도 무명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초등학교 유스클럽인 해운대FC 여원혁 감독이 이룬 성과다.

여원혁 감독은 부산 지역에서 손꼽히는 초등부 지도자 중 하나다. 만 32세로 젊은 나이임에도 선수를 잘 키워 울산 현대, 포항 스틸러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등 기업구단 유스팀에 선수들을 대거 보낼 정도다.

전 경남FC 수비수 안성남도 자신의 아들을 믿고 맡길 정도다. 경남 선수들도 “여원혁 선생님이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라고 칭찬하고 있다. 더 놀라운 건 창단한 지 7년 만에 프로 산하에 32명 선수를 보냈고, 여원혁 감독의 나이도 갓 30세를 넘겼다. 그러나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고, 시작은 무모 그 자체였다.

그는 “2012년 남해초등학교 코치를 하다가 2013년 호남대 축구학과로 4학년 복학했다. 지도자 수업을 받으면서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졸업해도 갈 곳이 없었고, 클럽을 만들자니 돈이 없었다. 대신 눈을 돌린 건 해체 된 축구부다. 인조잔디 구장을 비롯해 자재들이 남아 있어 인프라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여러 곳을 찾다 해운대초등학교가 눈에 띄었다. 당시 2014년 3월이었고, 한 달 전에 선수 부족으로 해체 됐다. 운동 시설도 아직 있고, 주위 인구도 많았다”라며 “교장 선생님께 전화해 미팅했지만, 막상 가니 왜 오냐고 하더라.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봤다. 이후 3~4번 더 찾아 뵌 끝에 수락 받았다”라고 했다.

그러나 당장 축구부 부활을 이루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선수 수급은 물론 교육청 허가도 받아야 했다. 여원혁 감독은 “부산에 사는 친구 도움을 받아 같이 집을 쓰며, 이사를 갔다. 교장 선생님도 진정성을 알아주실 정도다. 그러나 방과 후 강사가 있어 축구부 창단할 수 없어 학교 밖에서 준비를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라며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스포츠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엘리트만 교육하다 취미반인 6~7세 꼬마 아이들을 데리고 가르치니 어려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3~4개월 동안 많은 걸 배웠다”라고 전했다.



여원혁 감독은 스포츠 클럽 원장의 신뢰를 얻어 자신의 꿈을 위해 하나하나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원장님께 솔직한 이야기를 했고, 선수반 구축을 제안했다. 허락을 받아 업무 시간 외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10명을 데려왔다”라며 “다시 해운대초로 들어가 2014년 11월 해운대FC를 만들었다. 본래 다시 학교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교육청이 승인해주지 않아 무산됐다. 대신 클럽으로 만들었는데, 주말리그 참가를 위해서 법인화가 필요했다. 우선 3~4학년 어린 선수들을 위주로 2015년 이종대회를 나가고, 2016년 정식으로 주말리그를 나갔다. 주말리그 첫 참가 순간 설랬다”라며 당시 감정을 설명했다.

주말리그 데뷔 시즌 부산지역리그 13팀 중 1위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부산 아이파크 U-12팀과 최종전에서 패해 우승을 이루지 못했지만, 왕중왕전에 진출해 16강 진출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렀다. 성적과 함께 선수들도 잘 키우면서 프로 유스팀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타 팀들이 간신히 1~2명 보낸다면, 해운대FC는 5~6명 보낼 정도다.

여원혁 감독도 제자들과 같이 승승장구했다. 2018년 팀 차붐 지도자로 선택 받았다. 대한축구협회 초등 분과위원회에도 선택 받았고, 2019년 국제대회 선발 4팀 중 청룡팀 감독으로 준우승했다.



이는 저 멀리 벨기에도 소문났다. 케빈 더 브라위너를 비롯해 디보크 오리기, 티보 쿠르투아를 발굴했던 헹크가 손을 내밀었고, 결국 정식협약(MOU) 체결을 앞두고 있다. 이로 인해 헹크의 선수 육성 노하우를 습득할 기회까지 얻게 됐다. 여원혁 감독도 “IPA에이전트(김세윤 대표)와 교류하면서 헹크와 인연이 됐다. 최근 훈련도 헹크 훈련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한국 축구와 비슷한 면도 많다”라고 전했다.

여원혁 감독은 많은 훈련량 보다 볼을 가지고 좋은 습관을 들이는 기본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현재 아이들에게 일대일과 드리블을 키워줘야 한다. 팀에 맞춰버리면 아이들이 죽어 버린다. 내 팀을 만드는 것보다 각자 성향에 맞는 선수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라며 “운동량이 많으면 당장 성적 내지만, 혹사로 이어져 근육에 문제 생기고 집중력도 떨어진다”라고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그 과정까지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감, 보이지 않은 견제와 시기, 인맥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러나 그를 지탱한 건 제자들의 성장이다. 여원혁 감독의 꿈을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여원혁 감독은 “선수를 잘 키워 좋은 팀으로 보내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 많은 프로 팀들이 좋게 봐주고 있어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내 방식이 정답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현대 축구 트렌드에 맞게 선수를 키우며 보완하고 있다”라며 “그저 그런 지도자나 사업가로 남고 싶지 않았다. 헹크랑 MOU를 했던 이유 중 하나다. 한국형 유소년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사진=여원혁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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