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21시즌 리뷰] KT 위즈 – 마법사들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입력 : 2022.03.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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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성적 – 정규 1위, 통합우승(76승 59패 9무 / 최종 1위)

[스포탈코리아] 기억을 잠시 되돌려 2015년 시즌 시작 전으로 돌아가 보자. KBO의 막내 구단 KT 위즈가 1군 합류 후 7년만인 2021년에, 정규 시즌 우승을 넘어서 통합 우승을 이뤄낼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KT 위즈의 2021년은 구단명답게 마법과도 같은 시즌이었다.

정규 시즌 2위라는 우수한 성적표로 마무리한 2020년이 끝난 후, KT 위즈의 스토브리그 방향성은 ‘전력 유지’였다. FA 시장에서는 여러 링크가 났지만 결국 아무도 영입하지 않았고, 기존 외국인 투수였던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윌리엄 쿠에바스와 재계약에 성공했다.

그러나 스토브리그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MVP’ 멜 로하스 주니어와의 재계약이 불발되어 대체자로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한 조일로 알몬테를 영입했다. KT의 유일한 무브는 2018년 드래프트 2차 2라운드에서 지명한 최건과 2022년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지명권을 내주고 롯데에서 신본기와 박시영을 트레이드해온 것과 한화에서 방출된 안영명을 영입한 것이었다.

고된 첫 정규 시즌 우승까지의 여정

시즌 초 KT는 삼성, SSG와 선두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순위싸움을 지속하였다. 6월 13일부터 1위 자리를 차지한 KT는 10월 23일까지 무려 121일간 리그 선두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9,10월 들어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슬럼프에 빠지며 결국 단독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고, 시즌 최종전까지 정규시즌 우승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시즌 최종전에는 단 한 경기만으로 정규 시즌 우승이 갈리는 어려운 상황에서 SSG와의 경기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고, 리그 최종 성적 144경기 76승 9무 59패로 삼성과 동률 공동 1위를 기록해 35년 만에 정규 시즌 우승이 걸린 KBO리그 타이브레이커 경기까지 치르게 되었다.

이 때 이강철 감독은 쿠에바스를 단 이틀 휴식 후 등판시키는 초강수를 두었는데,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쿠에바스는 7이닝 8K 무실점 대활약으로 이강철 감독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여기에 6회초 강백호가 원태인을 상대로 뽑아낸 1타점 적시타가 결승타가 되어 1:0으로 승리, 팀 창단 7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 ‘마법’을 보여주었다. 더군다나 쿠에바스는 6월 중순까지 ERA 6점대 중반을 기록하는 극심한 부진에 시달려 외국인 투수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했으나 리그 재개 후 반등에 성공하며 타이브레이커 경기까지 승리로 이끌었기에 더욱더 극적이었다.

작년 PO의 완벽한 복수극

어렵게 정규시즌 우승과 직행 티켓을 따낸 KT는 와일드카드가 도입된 2015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와일드카드를 거쳐 한국시리즈까지 올라온 두산 베어스와 맞붙게 되었다. KT 입장에서는 작년 창단 후 최초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지만 PO에서 두산에 발목을 잡혀 탈락한 악몽이 뇌리에 남아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확실히 될만한 시리즈가 성사된 것이다. 두산은 정규시즌 MVP가 유력한 아리엘 미란다의 한국시리즈 복귀가 확정되었고 기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KT에 어려운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분명 존재했다.


마법사들의 첫 우승(사진=KT 위즈 제공)


그러나 결과는 KT의 4전 4승 완승이었다. 시리즈 내내 KT는 선취점을 먼저 냈고, 단 한 번의 리드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쿠에바스-소형준-데스파이네-배제성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도합 24와 1/3이닝 동안 4실점만을 허용하는 위력투를 선보였다. 타선에서는 강백호와 호잉이 펄펄 날았고, 다른 타자들이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귀중한 홈런을 매 경기 때려내 한국시리즈 최초 모든 경기에서 홈런을 때려낸 진기록도 세웠다.

한국시리즈 MVP는 부상으로 인해 4차전에 결장했음에도 시리즈 내내 놀라운 호수비를 선보임과 동시에 3차전 미란다를 상대로 결승 솔로포를 때려낸 박경수가 선정되었다. KT 이적 후 최악의 정규시즌을 보내며 마음고생을 했을 박경수이기에 그의 한국시리즈 MVP 수상은 더욱더 값졌다.

철벽 요새와 같았던 선발진


<2021 KT 위즈 선발진 주요 성적 / 구원 등판 기록 합산*>


KT 위즈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굳건한 선발진이었다. 시즌 시작 전에도 큰 기대를 받았던 데스파이네-쿠에바스-고영표-소형준-배제성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시즌 초 쿠에바스와 소형준의 난조에도 불구하고 선발 WAR 총합에서 리그 1위(15.51)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탄탄한 선발 로테이션을 자랑했던 2018,19년 SK, 2019년 두산을 뒤잇는 최근 5년간 선발 WAR 총합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선발진 중에서도 가장 빛난 선발투수는 단연 고영표이다. 고영표가 살고 있는 지옥 – 야구공작소 ‘고영표가 살고 있는 지옥’이라는 제목의 야구공작소 칼럼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군 입대 전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꾸준히 마운드를 지켜왔던 고영표는 커리어 내내 불운한 선수였다. 하지만 전역 후 복귀한 첫 시즌에 그가 느낀 KT는 천국과도 같았을 것이다.

고영표는 통산 GO/FO(땅볼/플라이볼) 비율이 2.0 이상인 땅볼 유도 능력이 뛰어난 투수이다. 땅볼 유도 비율이 높은 투수들은 수비의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는데, 고영표는 ERA-FIP(평균자책점-수비무관평균자책점)의 차이가 커리어 내내 1.0일 정도로 수비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러나 입대 전과는 다르게 수비가 견고해진 KT에서 투구한 올해는 커리어 최초로 ERA(2.92) 보다 높은 FIP(3.19)를 기록하며 클래식 스탯에서도 이득을 보았다. 이 정도면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리그 전체로 놓고 봐도 고영표는 리그를 대표할만한 토종 선발로 자리매김하였다. FIP는 MVP가 논의되는 두산의 아리엘 미란다(2.67)에 이은 리그 전체 2위에 ERA도 3위, 토종 선발 중 가장 많은 166.2이닝을 소화했고, 원래도 좋기로 소문났던 제구는 더 날카로워져 규정 이닝을 소화한 투수 중 BB/9 비율이 1.46으로 압도적인 리그 1위를 차지하였다.

배제성의 성장 또한 KT에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 비록 3년 연속 10승 달성에는 한 끗 차이(9승)로 실패했지만, 다양한 세부지표의 개선을 이루어내며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치를 더 높였다. 지난해 평균 139.6km/h로 크게 감소했던 패스트볼 구속이 올 시즌 평균 144.4km/h로 회복하며 삼진율 K/9(20년 5.25-> 21년 8.64)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 여기에는 2020년부터 직구-슬라이더 투피치 조합으로 투구 레퍼토리를 변화시킨 것이 과도기를 거치며 성공적으로 정착한 영향도 존재한다.

여기에 데스파이네의 꾸준한 활약, 후반기 쿠에바스와 소형준의 부활, 상무 전역 후 150km/h를 넘나드는 구속으로 미래에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할만한 가능성을 보여준 엄상백까지. KT 선발진은 앞으로의 미래도 밝아 보인다.

화려하진 않아도 제 몫을 다해준 불펜진


<2021 KT 위즈 불펜진 주요 성적 / 김민수-선발 등판 성적 포함*>


지난 시즌 부활투로 KT 불펜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이보근(10이닝 ERA 15.30)과 유원상(13이닝 ERA 6.23)이 크게 부진하고 마당쇠 주권도 불펜 전향 후 가장 적은 이닝(49이닝)을 던지며 불펜에 구멍이 생길 수 있었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이적생과 기존 자원들의 성장으로 이 구멍을 잘 메우는 데 성공했다.

불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롯데와의 트레이드로 영입한 박시영이었다. 주권, 조현우 이외에 9회 이전을 확실하게 책임져줄 투수가 마땅치 않았던 KT 불펜의 고민을 말끔히 해결해줬다. 7월 4일 키움전, 21구 연속 슬라이더로 4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는 충격적인 피칭을 구사한 박시영은 올 시즌 다른 구종의 구사율을 대폭 낮추고 자신 있는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대폭 늘리는(19.5%=>54.3%) ‘선택과 집중’을 시도했다 잘 키운 공 하나, 열 구종 안 부럽다 – 야구공작소. 그 결과, 불펜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인 9이닝당 삼진(K/9)이 (6.23=>10.20) 큰 폭으로 증가함과 동시에 커리어하이 시즌을 만들어냈다.

박시영 이외엔 시즌 32세이브와 개인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굳건한 마무리 김재윤, 후반기에 복귀해 불펜에 큰 보탬이 되어준 이대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심재민 등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알짜 활약을 보여준 여러 투수들이 올 시즌의 탄탄한 불펜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천재 타자’ 강백호가 이끈 타선

탄탄했던 투수진과는 다르게 로하스가 떠난 KT 타선의 빈자리는 꽤 크게 체감되었다. 대체자로 영입된 알몬테는 60경기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시즌 중반 방출되었고, 팀 타선의 중심이 되어줘야할 황재균, 박경수, 배정대, 조용호가 전 시즌에 비해서 아쉬운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다. KT의 팀 OPS는 .738로 리그 전체 6위를 기록했고 전, 후반기로 나눠서 살펴봐도 중하위권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T가 결국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팀 타선의 중심을 굳건히 지탱한 ‘천재 타자’ 강백호의 존재였다.


역시 천재 강백호(사진=KT 위즈 제공)


7월 12일 KBO 리그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강백호는 놀라운 타격감을 유지하였다. 홈런 개수는 10개로 평범했으나 1982년 백인천이 기록한 마지막 4할에 도전할 수 있는 타율 .395에 출루율 .492, 장타율 .579를 기록하며 팀 타선을 홀로 이끌다시피 했다. 비록 리그가 재개된 이후 페이스가 많이 떨어지며(OPS .860) 최종 성적은 .347/.450/.521 16홈런으로 마무리했지만 리그 전체 2위의 조정득점생산력(wRC+ 165.5)을 기록,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했음을 보여주었다.

강백호 이외의 KT 타선은 기존 주전급 야수들이 작년에 비해 타격 성적이 떨어졌지만 백업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시즌 초 황재균이 불규칙 바운드에 얼굴을 강타당해 코뼈가 골절당하는 큰 부상을 당했을 때 김병희가 깜짝 활약을 보여주었고, 부진한 박경수와 조용호 대신 권동진과 김민혁이 각각 좋은 데뷔 시즌과 스텝업을 이루어내며 팀 타선에 보탬이 되었다.

완벽한 엔딩, 유한준


Thank you, 유한준(사진=KT 위즈 제공)


유한준만큼 아름답게 커리어를 마무리한 선수가 있을까. 2015년 스토브리그, FA 신분으로 4년 60억 계약을 맺으며 KT로 이적한 유한준은 팀의 암흑기 동안 꾸준히 타선의 중심을 잡아주며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유한준은 비교적 늦은 나이(35세)에 FA로 영입됐음에도 wRC+ 130에 가까운 성적을 꾸준히 기록하며 모범 FA 사례로 기록될법한 활약을 펼쳤다.

40세가 된 2021시즌, 유한준은 2013년 넥센 시절 이후 가장 적은 5개의 홈런을 때려냈지만 나이를 잊은 컨택과 볼넷 생산 능력을 보여주며 .310/.411/.420 wRC+130.5라는 40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성적을 기록, 강백호의 뒤를 받혀주는 팀의 4번 타자로 굳건히 타선을 이끌었다.

비록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율 .125로 부진했지만 4차전에서 3볼넷을 얻어내어 여전한 출루 능력을 보여주며 팀 승리에 보탬이 되었고 커리어 첫 우승이라는 기쁨을 동료들과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유한준은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그의 긴 선수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었고, 구단 프런트로 제 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할 것임을 알리며 KT 팬들에게 레전드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왕조 ‘가능?’

우승 이후, KT는 ‘우승 포수’ 장성우와 4년 총액 42억 원 재계약을 맺으며 스토브리그의 첫발을 내디뎠다.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한 KT 위즈는 어린 토종 투수들의 꾸준한 발전과 타선에서 강백호라는 확실한 코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전망이 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팀 타선의 상수가 되어주었던 유한준의 은퇴와 황재균의 FA 선언, 그리고 박경수의 노쇠화 등이 팀 타선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왕조 건설을 목표로 삼기 위해서는 야수 FA 시장에서의 적극적인 참전이 불가피했는데, 박병호와 3년 30억 계약을 체결하면서 타선 보강에 성공했다. 여기에 올 시즌 가능성을 보여준 김민혁, 권동진, 천성호, 김병희 등의 활약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프로 야구 역사에는 수많은 우승팀이 존재했지만, ‘왕조’를 건설하는 데 성공한 팀은 극히 일부뿐이었다. 과정은 무척 어렵겠지만, 역사에 드디어 굵은 발자국을 남긴 KT 위즈가 왕조를 향해 다음 시즌에도 전진할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자.


야구공작소
전희재 칼럼니스트 / 에디터= 이도삼, 홍기훈


참고=STAT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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