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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의 한마디가 뭐였길래 이근호 벌떡

[이근호의 라인업] 이근호를 일으킨 박찬호의 조언

기사입력 : 2012.04.10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북마크  페이스북 공유  사이월드 공감

그래픽=박연정
그래픽=박연정

[스포탈코리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아름답다. 하지만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별은 없다. 다른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람과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여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질을 완성해간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의 주변인들을 살펴보는 것. 그래서 준비했다. ‘인맥’으로 보는 스타들의 성장보고서. 그 첫 번째 주인공은 K리그로 돌아온 ‘태양의 아들’ 이근호(울산)다. <편집자 주>

김승용| 이근호의 10년지기. 울산 동료
이근호 says_ “우리는 부부 같은 사이”
부평고(2001~2003)의 전성기를 함께 이끌었던 동료. 이근호와 김승용이 투톱으로 호흡을 맞췄고 하대성(서울)이 미드필더로 뛰었다. 이들이 주축이었던 2003년, 부평고는 3관왕을 차지할 정도로 강한 전력을 자랑했다. “승용이는 어렸을 때부터 볼 감각이 좋았다. 우리가 투톱으로 설 때, 내가 저돌적으로 움직이면서 많이 부딪히고 싸우면 승용이가 결정을 짓는 식이었다.” 당시 인연은 J리그 감바오사카(2011), 울산(2012~)에서 호흡을 맞추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달리 말이 필요 없는 “부부같은 사이”라고.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다. 내가 툭툭 장난치고 건드려도 승용이가 다 받아준다. 워낙 나를 잘 챙겨준다. 같이 있으면 늘 재미있는 친구다.” 경기장에서의 호흡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감바오사카에서 좋은 활약(32경기 15골)을 보였던 2011년, 이근호는 김승용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본에서는 김승용이 볼을 잡으면 항상 이근호를 제일 먼저 찾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내가 움직이는 동선, 승용이가 킥을 올리는 시점에 대해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 호흡의 파괴력은 이번 시즌 울산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하대성| 이근호의 스물 일곱 반평생(?)을 함께 한 ‘소울메이트’
이근호 says_ “하대성은 내가 꼽는 최고의 미드필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거쳐 지금까지 경기장 안팎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 동막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에서 함께 공을 찼다. 여기에 김승용이 가세했던 부평고 시절은 이천수-최태욱-박용호 시절(1997~1999)에 비견될 정도의 전성기였다. 고교 졸업과 함께 각각 인천(이근호)과 울산(하대성)에 입단하면서 갈라졌지만, 2007년 대구에서 다시 만나 2년 간 함께 호흡을 맞췄다. 당시 대구는 전력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빠르고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주목받았다. 이근호의 득점기록이 팀 득점의 절반에 가까웠다. “그 때 대성이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성이도 승용이처럼 볼을 잡으면 주로 나한테 연결해줬다. 감독님이 ‘근호한테만 볼을 준다’고 대성이를 혼낼 정도였다. 대성이가 미드필드에서 받쳐줄 때 공격적인 패스도 많이 받고, 내 마무리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대성이는 내가 꼽는 최고의 미드필더 중 한 명이다. 함께 호흡을 맞춘 선수 중에 베스트11을 꼽으라면 반드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선수다.” 수도권에서 경기를 할 때면 하대성의 집에서 자고 소속팀으로 복귀하곤 한다. 비시즌에는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면서 개인 훈련을 할 정도로 생활을 공유한다.



핌 베어벡| 이근호를 ‘메이저’ 무대로 이끈 지도자
대구에서의 폭발적인 활약은 이근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올림픽대표팀과 A대표팀에 차례로 발탁됐다(2007). 당시 올림픽팀과 A대표팀을 겸임하고 있던 지도자 핌 베어벡이 그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이근호는 올림픽 예선이 진행되는 동안 특유의 저돌적인 움직임과 득점 활약으로 주축 공격수로 올라서는 한편 대중적인 인지도도 확보했다. 2007년 6월에는 이라크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까지 치렀는데, 당당히 A매치 데뷔골을 터뜨리며 기대감을 높였다. 곧바로 이어진 아시안컵에서는 3/4위전에 출전해 메이저 대회를 경험했다. 하지만 베어벡과의 인연은 아시안컵이 끝이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을 지휘한 이는 박성화 감독이었다. 예선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감독의 신임을 얻었지만 정작 본선 무대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좌절을 맛봤다. “본선이 시작되기 전까지 감독님이 많은 신뢰를 주셨다. 감독님과 농담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죄송했다. 올림픽팀 끝이 안 좋은채로 헤어져서, 죄송하고 빚진 마음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무렵, 이근호는 박주영이라는 파트너를 만난다.

허정무| 황태자에서 폐적에 이르기까지
이근호 says_ “감독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그때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이근호는 ‘허정무호의 황태자’였다.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기 전까지, 허정무호를 위기 때마다 구해낸 이가 이근호였다. 처음 대표팀의 벤치멤버로 시작해 스리톱의 윙포워드로 이타적인 플레이에 치중하는가 싶더니, 투톱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는 킬러 본능을 발휘했다.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다. 월드컵 참가는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박주영과의 호흡도 무르익었다. “주영이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했고 대표팀에서도 정말 편하게 호흡을 맞추는 사이다. 경기장 위에서도 어떻게 맞출지 항상 의논했다.” 하지만 유럽 진출 시도가 무산되면서 크게 흔들렸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면서 경기력도 부진에 빠졌다. 부상까지 겹쳤다. 2009년 3월 친선경기 이후 1년이 넘도록 대표팀에서 득점포를 가동하지 못했다. “방향도 흩어지고 갈피도 잡지 못했던 때다. 열심히 뛴다고 뛰었지만 정신적으로 중심을 잡기 힘들었다. 집중이 안됐다.” 월드컵 본선을 코앞에 두고서도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이근호는 결국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했다. “사실 (상심이 커서)월드컵 기간 동안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월드컵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허정무 감독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그때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월드컵이라는 무대에는 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던 선수를 데리고 가는 것보다, 월드컵에서 좋은 기량을 보일 수 있는 선수를 쓰는 게 맞다. 내가 감독님이었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다른 선수를 뽑을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을 거다.” 마음을 추스린 이근호는 오히려 먼저 허정무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위로했다. 월드컵대표팀이 대회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 저녁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보균| 이근호의 퍼스널 트레이너. 유명 연예인 및 스포츠스타 관리
이근호 says_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운동에 더 집중하는 것뿐”
이근호는 힘들 때마다 운동에 더 집중한다. 특히 정신적인 방황이 길어질 때, 힘든 순간을 극복하는 방법은 훈련으로 땀을 쏟는 것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늘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축구를 늦게(초등학교 5학년) 시작했기 때문에 공 차는 것도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내가 만족할 정도가 아니면 자신감이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인 트레이너에게 훈련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J리그에서 일본 선수들이 몸 관리하는 것을 보고 자극받았다. 비시즌에도 삼삼오오 짝을 이뤄 트레이너를 고용하고, 체계적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몸관리에 기꺼이 투자를 하고 쉬는 것조차도 계획을 세워서 규칙적으로 하는 것을 보고 프로 마인드를 배웠다. 재작년부터 대성이와 함께 비시즌마다 피트니스 센터를 다닌다. 트레이너 선생님과 함께 프로그램을 짜서 하루 3시간 이상 훈련했다. 코어 트레이닝으로 근육을 강화하고 필라테스로 유연성을 키웠다.” 좋았던 순간을 복기하는 것도 ‘긍정의 힘’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내가 잘 뛰었던 경기 DVD나 기사들을 찾아본다. 옛날 것부터 좋은 것을 찾아보고 기억하면서 좋은 기운을 계속 회복하려고 한다.” 그렇게 매진한 결과, 이근호는 슬럼프를 극복하고 마침내 비상했다.

웨인 루니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 플레이스타일이 닮았다?
이근호 says_ “닮았다는 얘긴 처음 듣는다. 사실 루니보다 (박)지성이 형이 더 위대해 보인다”
이번 시즌 만개한 이근호의 플레이를 보고 이상철 울산대 감독(UBC 해설위원)은 “한국판 루니”라고 극찬했다.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를 흔들어놓는 움직임, 배후 공간으로 침투해 공간을 만들거나 결정짓는 능력이 루니만큼 파괴력 있다는 의미다. 폭넓은 움직임으로 만능공격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 정작 당사자는 루니와 ‘닮은꼴’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처음 듣는 얘기다”라며 조심스러워했다. 루니에 비교되는 것은 영광스럽지만, 그만한 수식어를 달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버겁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롤모델로도 오히려 루니보다 박지성을 먼저 꼽았다. “루니는 TV로만 봤던 선수이고, 지성이 형은 실제로 함께 훈련하고 생활하면서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포지션을 떠나서, 닮고 싶은 선수로는 항상 지성이 형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실제로 옆에서 보니 얼마나 헌신적이고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는 선수인지를 알게 됐다.”



박찬호| 프로야구 한화 선수.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
이근호 says_ “찬호 형의 한 마디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영향력이 컸다”
인터뷰 말미 이근호가 공개한 ‘깜짝 인연’. 이근호가 감바오사카에서 뛰던 당시 지인의 소개로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활약하던 박찬호와 만났다. 이후 박찬호가 자신의 집으로 이근호를 초대해 식사도 차려주고 살갑게 챙겨주면서 친해졌다. “찬호 형이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 중계를 보면서 팬이 됐는데, 그런 분이 챙겨주시니까 너무 감사했다.” 특히 해외에서의 경험담이나 위기 극복 방법 등은 이근호에게 생생한 설득력이 있었고, 직접적인 도움이 됐다. “찬호 형의 한 마디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 영향력이 컸다. 감바에서 한참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었다. 찬호 형에게 그런 어려움을 털어놓았더니 ‘네가 여기서 지내고 훈련하는 게 외롭고 힘들다면, 그게 바로 제대로 길을 가고 있다는 말이다. 네가 가는 길이 맞는 길이다’라고 해주셨다. 가슴에 확 와닿는 말이었다.” 이번 시즌 약속이나 한 듯 둘은 나란히 한국으로 복귀했다. 가끔씩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하고 있다. “찬호 형이 (한국에서)잘해주셨으면 좋겠다. 늘 응원하고 있다.” 둘은 TV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객원 멤버로 출연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인터뷰·정리= 배진경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그래픽= 박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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