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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숙의 터키 축구 이야기]누구나 자신의 팀을 가지고 사는 이스탄불

기사입력 : 2013.04.18      기사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네이버 북마크  페이스북 공유  사이월드 공감


[스포탈코리아] 터키의 주말 경기는 보통 금요일부터 월요일 사이에 펼쳐진다. 우리나라처럼 일요일 하루에 대부분의 경기가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총 아홉 개의 경기가 사나흘에 걸쳐 나누어 열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 동안 이스탄불에 머무르며 지켜보니 갈라타사라이와 페네르바체, 그리고 베식타스의 경기는 결코 같은 날 열리지 않는다. 리그 일정을 짤 때 이렇게 인기 있는 팀들이 같은 날 경기를 치르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주말이 되면, 리그 일정을 꿰고 있지 않아도 그 날 어느 팀의 경기가 열리는지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갈라타사라이의 경기가 있는 날은 갈라타사라이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페네르바체의 경기가 있는 날은 또 페네르바체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내내 거리에서 수도 없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리고 4월 15일은, 베식타스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차례다. 아니나 다를까. 경기가 열리기 두 시간 전쯤, 베식타스 광장으로 나가보니 그곳에서는 이미 여기저기서 베식타스의 서포팅 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거리에서 구걸을 하는 어린 남자아이마저 작은 피리로 베식타스의 응원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 이 도시도 참 유별나긴 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토요일에는 갈라타사라이가, 일요일에는 페네르바체가 이미 차례대로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베식타스도 이 경기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두어야 한다. 지난 겨울, 내가 처음 이노누 스타디움을 찾았을 때만 해도, 베식타스는 그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페네르바체를 따돌리고 단독 2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그로부터 넉 달이 지난 지금, 베식타스는 선두팀을 따라잡기는커녕 다시 3위로 추락한 상태이다.

그 사이, 갈라타사라이는 비록 4강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자신들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페네르바체 또한 라치오를 물리치고 유로파 리그 4강에 진출한 상태다. 이렇게 1위와 2위 팀이 유럽 대회로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베식타스는 리그에 집중하며 선두권 진출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베식타스는 중위권 팀들에 발목을 붙잡히며 페네르바체와 승점차가 더 벌어진 상태니 현재 베식타스 팬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만.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샤멧 아이바바 감독이 소개되자 관중석에는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이 감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이을용 현 강원FC코치가 트라브존스포르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당시, 트라브존의 감독이 바로 샤멧 아이바바 감독이었다.) 이 야유가 타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베식타스가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드필더 자원이 부족한 것인지 늘 중원 장악에 어려움을 겪는 듯한데 그나마 수비수들은 탄탄한 수비 실력을 갖추고 있고, 골키퍼 앨렌 맥그레거 또한 꾸준히 좋은 경기를 보여주고 있어서 이 정도의 순위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이 날, 베식타스와 상대팀 안탈리아스포르는 전반전 내내 어느 쪽도 우세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기를 펼쳤다. 일진일퇴라면 일진일퇴지만, 사실 지루한 공방전이라고 부르는 쪽이 더 어울렸다. 하지만 후반전에 접어 들며 베식타스 선수들은 과감하게 공세를 취했고, 그러자 골문 앞에서 꽤 가슴 섬뜩할 만한 슈팅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후반 12분, 올자히 샤힌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에서 살짝 빈 공간을 노리고 찬 슛은 일품이었고, 그 슛이 그대로 골인이 되자 의자 위에 서 있던 팬들은 일제히 앞으로, 옆으로, 위로 환호성을 지르며 점프를 해댔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서 있던 의자가 이상하게 자꾸 흔들린다 싶었다. 매 경기 팬들이 저렇게 의자 위에서 뛰어댄다면 제 아무리 튼튼한 의자라도 멀쩡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간간히 빈자리가 보이는 것이, 그 의자들은 이미 부서진 채여서 누구도 그 위로 올라서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 이기면 이기는 대로, 또 지면 지는 대로 이노누 스타디움의 의자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부서져 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서서, 함께 점핑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 역시 무척 기뻤다. 베식타스가 다시 2위로 올라가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더불어 내가 베식타스 경기를 보러 왔을 때 이 팀이 한 번도 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어쨌든 축구팬이라면, 자신의 직관 승률을 중요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나 또한 (좋아하는 팀이 대전 시티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역시 홈경기 직관 승률이 좋았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그 좋은 징크스를 이어나가고 싶다.

그렇게 선제골이 들어가자, 팬들은 열렬히 2대0을 외쳤다. 실제로 베식타스는 후반전 내내 경기를 압도했으나, 추가골을 넣지는 못했다. 경기가 그대로 끝이 나자, 팬들은 ‘잘 가요, 안탈리아.’와 같은 노래를 힘차게 불러주었다. 이 노래를 들으니, 울산팬들이 우리에게 부르곤 하던 ‘잘 가세요~ 잘 가세요~’하는 노래가 떠오르는 것이 세상 어디서나 축구팬들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쨌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베식타스 팬들은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르며 어슬렁어슬렁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그러다 팀의 서포팅곡은 자연스럽게 ‘갈라타사라이’를 공격하는 노래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또 한 번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노래로 이어졌다.

사람들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출입구를 찾아가던 나는, 그 순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베식타스 팬들은 정말로 열정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응원가를 불렀고, 그런 자신들이 스스로도 우스운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난 3월 19일, 베식타스의 110주년 행사 때도 몇몇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머플러를 들고 나와 갈라타사라이가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하기를 기원하는 듯했다. 그리고 8강전이 끝난 지금, 베식타스 팬들은 또 한 번 레알 마드리드의 이름을 외치며 갈라타사라이의 패배를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래도 다른 나라의 클럽보다는 터키의 클럽을 응원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나라면? 만약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나라 클럽이 AFC에서 다른 나라 클럽과 우승을 놓고 다툰다면? 그렇다면 내가 애국심 같은 것을 느끼며 우리나라 클럽을 응원할까? 아니,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응원을 해왔던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물론 또 어떤 팀은, 우승을 함께 바래주기도 했다. 하지만 대전 시티즌과 사이가 좋지 않은 K리그의 클럽이라면, 결코 나는 그 팀을 응원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베식타스 팬들의 그 마음을 가슴 절절히 이해하며, 함께 레알 마드리드의 응원가를 흥얼거리면서, 천천히 어두운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다 보니 빵빵거리며 달리는 차 위에 베식타스 깃발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스탄불의 곳곳에서는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어떤 음식점 위에는 페네르바체의 깃발이 흔들리고 있고, 또 어떤 호스텔 위에는 갈라타사라이의 깃발이 꽂혀 있고, 또 어떤 보트 위에는 베식타스의 깃발이 흩날리고 있다. 그러한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쯤은 자신의 팀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진다.

물론, 모든 사람이 축구를 좋아한다고 해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일단, 티켓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또한 리그 데이에는 교통 체증이 너무 심해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구를 좋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번 주말엔 뭐하세요?’ 라는 물음에 ‘K리그 보러 가요.’ 라고 대답해도 놀라거나, 아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거나, 또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지금보다 적은 그런 곳에서 말이다.

이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넌 이스탄불을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냐고 물어보고는 한다. 사실 이스탄불을 좋아할만한 이유는 아주 많이 있다. 수많은 문화 유산. 역사가 깃들어 있는 숱한 장소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아름다운 바다. 그리고 너무나 친절한 터키 사람들과 아주 맛있는 터키 음식. 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역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축구팀을 가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 바로 이러한 모습이 아닌가 싶다.

김민숙(스포탈코리아 칼럼니스트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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