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피플] 브라질 선수들의 '한국인 누나', 김원희 대표
입력 : 2012.02.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류청 기자= 2011년 가을, ‘브라질 선수들의 누나(혹은 엄마)’가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계약과 협상을 돕는 에이전트가 아닌 실생활을 도우며 브라질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매니저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수소문 끝에 ‘투비원(2be1) 매니지먼트’의 김원희 대표와 연락이 닿았고, 약속을 잡았다. 인터뷰 장소는 이태원이었다. 김 대표와 브라질 전통음식인 ‘슈하스코’를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대표의 명함에는 한글이 없다. 베레니세(Berenice)라는 이름이 적혀있다. 어렸을 때 브라질 이민을 간 김 대표는 20년간 김원희가 아닌 베레니세로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2001년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때부터 김원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축구계에 발을 담근 건 아니었다. 브라질에서 대한항공, 삼성 등과 같이 일했었던 김 대표는 한국에서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에 몸담았었다.

“거듭된 출장으로 집은 장식용”이고 “돈을 생각하면 못 하”며 “미혼 여성으로서는 가기 힘든 곳까지 가야 하는 일”에 끌어들인 것은 에닝요(전북)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에닝요가 2010년 김 대표에게 “베레 매니지먼트 회사를 꾸릴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선수들과 가족들을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고심 끝에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세웠다. “에닝요에게 코가 꿰였죠. 하하”

에닝요와 함께 시작한 사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에닝요와 한 팀에서 뛰는 루이스가 들어왔고, 작년에는 총 9명의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고객이었다. “광고를 하거나, 선수들에게 홍보를 한적이 없는데 신기하게 계속 전화가 왔다. 일을 해달라고 했다.” 그만큼 수요가 많았다는 방증이다. 각 구단에 있는 통역은 그라운드 위에서는 도움을 주지만, 실생활에는 크게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브라질 선수들에게 그라운드 밖은 진짜 한국, 말이 통하지 않는 나라다.


투비원 매니지먼트의 직원은 김 대표를 포함해 세 명이다. 하는 일은 무한대다. 생활에 관계된 모든 일을 한다. 김 대표는 “나는 선수 가족의 생활을 도와주고, 한 명은 선수들의 고민 상담과 구단과의 일을 돕는다. 나머지 한 명은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모아 선수들에게 배포하는 일은 한다”라고 했다. 90분은 짧지만, 24시간은 길다. 김 대표는 핸드폰 예비 배터리를 세 개나 들고 다닌다. "시즌 중에는 전화가 3분 마다 걸려온다."

“선수 가족이 오기 전에 옵션을 세 가지 정도 생각해둔다. 같이 다니면서 마음에 드는지 여부를 확인 한 후, 업주들에게도 인사를 한다. 명함을 건네고 언제라도 전화를 달라고 한다. 은행에는 담당 직원도 만든다. 시장에 가는 것도 중요하다. 생활하려면 먹는 게 가장 문제인데, 마트에 몇 번 같이 다니면서 포인트카드 쓰는 법까지 가르쳐 준다. 그리고 잘 모르는 물건이 있으면 찍어서 보내라고 한다. 이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선수들이 내일 뭐 먹을지 대충 머리에 그려진다.”

병원도 집처럼 드나들 수 밖에 없다. 선수들은 팀에서 도와주지만, 가족들은 김 대표의 몫이다. 김 대표는 미혼인데도 산부인과가 전혀 낯설지 않다. “내가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이렇게 많이 드나들게 될 줄은 몰랐다. 브라질 사람들은 가족을 정말 아낀다. 아내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힘들면 훈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프면 병원에도 함께 간다. 수술실에 같이 들어간 적도 있다. 맘 편하게 운동만 할 수 있도록 안 보이는 곳에서 돕는 셈이다.”

사실 김 대표는 전북이 2011년 K리그를 제패하는 데도 보이지 않는 공로를 세웠다. 최강희 감독은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루이스를 원래 2차전에 내보내지 않으려 했는데, 에닝요가 간곡하게 부탁해 출전시켰다”라고 했는데, 에닝요의 뜻을 최 감독에게 전한 이가 바로 김 대표였다. 김 대표는 쑥스러운 듯 “아무래도 개인사를 잘 알고 있으니 전달을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은 최 감독님이 결정한 것이다. 나는 말만 전했을 뿐”이라고 발을 뺐다.

김 대표의 생활은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즌이 개막하면 전국 방방곡곡을 누벼야 한다. 개인 생활은 꿈도 못 꾼다. 하루에 세 번씩 인천국제공항에 가야 할 때도 있고, 집에 15일 동안 못 들어 갈 때도 많다. 하지만 김 대표는 나태해지지 않으려고 항상 자신을 채찍질한다. “피곤하다고 해서 일을 대충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부탁을 받으면 꼭 해준다. 그래야 나도 만족하고, 신뢰도 쌓인다."


진심은 통한다. 선수들은 이제 김 대표를 '누나(NUNA)'라고 부른다. 누나는 동생들 때문에 다시 힘을 낸다. “이제 라커룸에 들어가도 선수들이 신경을 안 쓴다. 처음에는 수건으로 몸도 가리고 했는데, 이제 그냥 팬티바람으로 인사한다. 내가 여자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도 “이 일은 힘들지만 정말 매력적인 일이다. 새벽 두 시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서로에게 ‘고생했다’라고 말하면서 웃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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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식초는 왜 이리 달아?”- 어느 날 에닝요가 김 대표에게 이렇게 물었다. 김 대표는 한국 식초가 달리 없다며 사진을 요구했고, 에닝요는 바로 사진을 전송했다. 사진을 본 김 대표는 박장대소했다. 김 대표는 “달 수 밖에 없었다. 물엿이었다”라며 “한국어를 못하니 병을 보고 감으로 집었는데, 틀렸던 것 같다”라고 했다. 이어 “루이스는 ‘퐁퐁’을 세제인 줄 알고 구입한 적도 있다. 하얀 옷에 전부 분홍색 물이 예쁘게 들었었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루이스, 면허증 제시 거부사건- 브라질 선수들은 대게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래서 김 대표는 선수들에게 “몰랐어요”라는 말을 가르쳤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 루이스는 잘못해서 교통 법규를 위반한 후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없어요”를 연발했다. 결국 김 대표에게 전화 연결을 한 후 문제가 해결됐다. 루이스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실수에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도대체 얘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김 대표는 어느 날 아디에게 전화를 받았다. 집으로 와달라는 부탁. 딸 이사도라와 아들 니콜라스가 한국 말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디는 내용이 궁금해 김 대표를 부른 것. 내용은 간단했다. 두 아이는 치킨 배달을 계획하고 있었다. “결국 결정을 내렸고, 이사도라가 아디에게 치킨을 얻어냈다. 이사도라는 정말 한국말을 잘한다.”


사진=이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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