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5-1> 이장수, “中축구, 겉포장만하면 미래 없다”
입력 : 2012.07.2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2012년 2월 중국 광저우 외곽의 칭위안 시에 있는 광저우 헝다 연습구장에서 이장수 감독을 만났다. 2부리그 팀인 광저우 헝다를 맡자마자 1부리그로 승격시키고, 바로 슈퍼리그 우승컵까지 거머쥔 ‘대륙의 별’은 빛났다. 그의 뒤에는 카메라 구름이 따라다녔다. 한 달 뒤에는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재회했다. 이 감독이 이끄는 광저우 헝다는 지난 시즌 K리그 챔피언 전북 현대를 5-1로 격파했다. 중국기자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이 감독에게 박수를 보냈다. 이장수는 커다란 산 같았다.

산은 두 달 만에 없어졌다. 중국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구단 역사상
최초로 AFC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하고 리그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구단 수뇌부는 이장수를 내쳤다. 세계적인 명장 마르첼로 리피를 데려오기 위한 수순이었다. 2009년 베이징 궈안에서 갑자기 경질된 것과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이장수는 “괜찮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했지만, 충격이 컸다. 광저우 헝다와 일을 모두 매듭지은 후에 중국에 있는 짐을 다 싸서 귀국했다.

7월의 어느 찌푸린 날, 예기치 않게 휴가를 받은 이장수를 만났다. 이장수는 광저우 헝다와의 이연, 중국 축구의 미래 그리고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대륙의 별’은 거침이 없었다. 미사여구나 수식어를 걷어낸 묵직한 슈팅이 날아들어왔다.

“이번에는 짐을 싹 가지고 돌아왔다”
-최근 어떻게 지냈나? 과정은 뼈아팠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랜만의 휴식을 받았다. 아내가 좋아하지 않나?
정말 오랜만이다. 15년 동안 못 쉬었다. 하지만 마누라가 좋아하지는 않는다. 돈을 벌어야 좋아하지 않겠나. (웃음) (아내와 특별한 계획은 없나?)이제 치과 치료가 끝났다. 아직은 특별한 계획은 없다.

-돌아와서 축구는 보고 있나? 유로2012를 직접 관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알고있다.
가는 일정을 잡고 티켓까지 구입했다가 중국에서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틀어졌다. 유로2012는 국내에서 봤다. 전술적인 큰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한국 언론에서는 ‘제로톱’이다 말이 많았는데 커다른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중국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광저우와의 마지막은 어땠나? AFC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승리한 다음날 호텔에서 경질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아니다. 경기 다음날 아침에 공항 가는 중에 그 이야기를 들었다. 부리람에서 방콕으로 가려면 한 시간 정도 비행기 타야 하는데 공항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들었다. 그전에 결정했던 것이다.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나는 설마 했다. 리그 1위를 하고 있었고, 전혀 문제가 없었다. 생각지도 않았었다.

-지난해 광저우 현지에서 만났을 때 “중국에서는 짐을 반만 푼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빨리 짐을 싸야 하니까”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경질과정을 보면서 그 이야기가 생각났다.
항상 그렇게 사니까. 일이 틀어지면 빨리빨리 짐을 싸서 나와야 하지 않나. 황당한 일이었다. 베이징(북경)에서도 그랬고. 전에는 다른 짐은 맡겨놓고 필요한 짐만 가지고 들어왔었는데 이번에는 싹 가지고 들어왔다. 그러고 싶었다. (그럼 이제 중국과는 완벽한 이별인가?) 우리 직업 자체가 럭비공이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중국 무대는 너무 불안정한 것 같다.
감독은 항상 불안한 직업이다. 중국은 더하다. 성적에 민감하니까 조금만 (성적이) 안 좋으면 감독을 자르려고 하고, 선수들 등살에 못 이겨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본인들의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는 안 가지만 그게 (중국의) 현실이다. 근데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정치적인 중국축구…포장만 하면 미래없다”
-중국 축구가 정치적인 것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 불안정하고 예측하기 힘든 게 아닌가?
어떤 이유가 있겠지. (경질하면서도) 나에게 “정말 미안하다”라고 했었다. 때로는 자기들도 (이해가 안 간다고). 정치적인 게 있다고 본다. 지금 현재 중국이 가는 모습은 가히 정상적이지 않다. 1부 리그 몇 팀에서 어마어마하게 투자하고 있다. 청소년 (축구) 발전에 (돈을) 써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클럽은 좋아질 수 있다. 좋은 선수를 영입하면 전력이 강해진다. 하지만 대표팀은 쉽지 않다.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도 있나?
(중국에는) 유소년 팀이 없다. 광저우도 생각은 하는 것 같은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러니 정치적이라고 생각이 든다. 위에서 축구 좋아하는 사람 있으니까. 그런 케이스에 나도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에 들었는데 콩카를 내보낸다고 한다. 내가 2부 리그 가는 것도 이슈, 2부와 1부리그 우승하는 것도 이슈, 잘리는 것도 이슈였다. 리피가 오는 것도 관심거리 아닌가?

-광저우 헝다를 이끌고 AFC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경험이 누적이 되면서 중국 축구에 경쟁력이 생긴다고 보여지는 면도 있다
리그 수준은 좋은 외국인 선수 들어와서 조금 올라갔다고 본다. 클럽 축구의 판도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대표팀 성적은 형편 없다. 미래가 아니라 단기적으로, 가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좋은 선수를 많이 영입하는 것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앞서서 투자하고 치고 나가면 프로는 어느 정도 저변을 확충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청소년 축구 잘 좀 해”라고 하면 유소년 축구도 급속도로 갈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겉포장만 열심히 한다면, 중국 축구의 미래는 없는 거다. 앞으로 몇 년이 중요하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는 팀의 외국인 쿼터를 ‘4+1’에서 ‘6+1’로 바꿔준 것도 성과만능주의 아닌가?
이해가 안가는 거다. 어차피 국내 리그는 (출전규정이) 그대로다. 축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경기에는 외국인 선수가 네 명(아시아쿼터 포함) 밖에 나가지 못한다.

-곧 국가주석이 될 시진핑 부주석이 축구를 좋아해서 그런다는 분석도 있는데
좋아한다고 한다. 그렇게들 이야기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산둥, 상하이, 광저우, 베이징 등등. 사실 상하이는 그럴 수 있는 재력이 없다. 그 회장이 게임 회사를 운영한다. ‘요시’라고 부르는데 아프리카에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게임 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게 디디에 드로그바라는 이야기가 있다. 언뜻 듣기로는 상하이는 아넬카만 연봉을 맞춰주고 자국 선수들은 돈을 못주고 있다고 했다. 위험한 것 아닌가?

-박성화 감독이 중국에 갔을 때 선수들과 면담을 하니 임금 체납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하던데?
그런 구단이 있다. 나도 충칭(중경)에서 6개월 못 받았었다.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없지만 유럽에도 있다. 시즌 끝나면 선수를 팔고 운영하고 그런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못 봤을 뿐 유럽에도 있는 일이다.

-단점도 많지만, 중국만의 매력도 있나.
중국은 승강제가 있다. 우승도 초점이지만, 누가 떨어지느냐, 올라가느냐도 매스컴의 관심을 많이 받는다. K리그는 올해부터 시작된 거 아닌가? 우승에만 초점을 맞추니 어필할 수 있는 게 적다. 중국에는 관중도 많고, 매스컴도 굉장히 많이 따라다닌다. 베이징이나 광저우는 평균 3만 5천명 정도 경기장을 찾는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인터뷰하면 월드컵 예선전 같은 분위기다. 축구에 종사하는 사람도 많다. 광고효과가 있으니 하려는 팀도 많다.

-승강제뿐 아니라 승부조작의 파도도 먼저 맞았다. 중국 축구가 한국에 시사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중국은 판이 바뀌었다. 정화가 됐다고 할까. 2008년 베이징에 있을 때 올림픽 취재 온 한국 기자들과 식사하며 (승부조작) 이야기를 했는데 믿질 않더라. 이미 (한국에서) 이뤄지고 있었는데 말이 안 통하더라. 모르니까. 사건이 터지니까 전화가 엄청나게 왔었다. 승부 조작은 어디나 있다. 인기 좋은 물건이 있어야 가짜가 나오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도 상당한 문제였었다.
중국은 2년 6개월 전에 이른바 소탕을 했다. 축구협회장, 부회장, 경기 위원장, 심판 위원장, 구단 사장, 감독, 선수 등등 엄청나게 많이 잡아갔다. 다 잡지는 않았겠지만 50~60명 이상이었다. 큰 역할을 했던 축구협회장과 심판 위원장은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 받았다. 한국은 어땠나? 철저하게 조사 안됐다고 본다. 얼마 전에도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하니 쓴소리 한다고 하는데, 사실일 뿐이다. 큰걸 봐서는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누구는 축구 못하게 되고 누구는 뛰고, 억울하지 않나.


“중국진출? 돈 안주면 못 가”
-이적 시장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최근 한국 선수들도 중국행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그전에는 유럽 그리고 일본이 두 번째였다. 이제는 중국 먼저다. 프로니까 수입이 문제다. 돈 안주면 못 간다. 돈 많이 주면 방글라데시라고 못 가겠나? 돈 주면 간다. 다른 데 보다 수입이 많아지니까 선호하는 것이다.

-중국에서 한국 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나?
굉장히 좋다. 중국 선수와 다르게 희생하고 열심히 하고. 그렇지 못한 선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시아 쿼터가 한 명이니 많이는 못 오지만, 꾸준히 진출할거라고 본다. 30대 초, 중반이면 은퇴해야 하지 않나? 돈도 모아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왜 한국 선수를 잘 쓰지 않았나?) 그전에는 재정적인 부분이 없었다. 만약 데리고 왔는데, 한국 선수가 못하면 같이 죽는다. 박성화 감독도 그런 부분에서 실패했다. 감독의 위치도 흔들리고 쓸데 없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굉장히 민감하다. 한국 지도자가 한국 선수 쓴다는 게 쉽지 않다. 오해 받을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성적과 연관이 있다. 성적이 안 좋으면 다 트집거리다. 성적이 좋으면 술 한잔 먹고 나무에 오줌을 싸도 잘 봐주지 않겠나?

-변수가 많은 중국에서 말 그대로 장수 감독이다. 중국에서 경쟁력을 인정 받을 수 있던 이유는 어디에 있나?
성적이 따라와야 한다. 중국도 사람 사는 동네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른 말썽도 없었다. 일부 감독들처럼 술, 여자와 같은 문제 없어서 좋게 보여진 것 같다. (나름의 공략법도 있을 텐데?) 선수 장악이 중요하다. 중국 선수들을 보면 개인 운동은 강하다. 육상, 다이빙, 체조, 탁구 등등.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기력이 떨어진다. 농구까지도 괜찮은 편이지만, 같이 하는 것을 잘 못한다. 팀워크가 중요한 운동은 못한다. 희생, 협동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개방은) 막아놨었지만, 개인 성향이 발달한 나라다. 내 개인의 이익에 민감하다. 모두 독자로 커서 그런 것도 있다. 부딪혀 싸우는 수 밖에 없다. 모험해야 한다. 위기도 넘기고, 베이징에서는 실패도 했었다. 원칙 지키면 마찰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인터뷰= 배진경, 류청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2편에 계속)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