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7-2> 정인환, “QPR보면 시즌 초 인천 같다”
입력 : 2012.11.2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첫인상은 일종의 오해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틀릴 때도 있다. 고백한다. 기자도 지난 2월 한 선수를 오해했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주장 정인환(26)을 중국 광저우의 한 귀퉁이에서 처음 마주했을 때, 형이 한 5명쯤 있는 집에서 자란 거친 수비수일 거로 생각했었다. 완벽하게 틀렸다. 인천의 부주장 안재곤은 “우리 둘 다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외동아들이다. 그래서 친해졌다”라고 귀띔했다.

털어놓을 게 하나 더 있다. 이것은 여러분도 공감하는 부문일 거다. 정인환이 인천 유나이티드의 엄청난 상승세를 이끈 뒤 대표팀(잠비아 친선전)에 소집됐을 때, 좀 어색하다고 생각했다. 처음일 것이라고 봤다. 아니다. 정인환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을 뿐, 2006년부터 대표팀에 선발됐었다. 그의 표현대로 “살짝 다녀 갔던”것 뿐이다.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지는 죄악이 아니다. 무지를 깨닫고 제대로 알아가면 된다.

걱정할 것도 없다. 정인환은 새초롬한 보통 외동아들이 아니다. 시원시원하다. “나는 막 컸다”라고 운을 뗀 뒤 서슴없이 축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화끈하게 들려줬다. 눈물도 많고, 포기 충동도 많이 느꼈고, 짧은시간에 롤러코스터도 많이 탔던 ‘국가대표’ 정인환의 이야기 속으로 초대한다.

1편에서 이어짐
‘제2의 최진철’의 험난한 프로생활
대표팀 이야기와 어린 시절 이야기는 잘 들었다. 이제 프로 데뷔 후 이야기를 좀 해달라
2006년에 전북에 입단했을 때 자만했다. ‘제2의 최진철’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최악이었는데, 졸업할 때가 되니 최고라고 인정해줬다. 당시 용인축구센터 감독이었던 김봉길 선생님이 “프로에 가면 벤치에도 앉아봐야 한다”라고 했는데, 막상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프로에 가니까 정말 벤치에 앉았다. 당시에는 어렸고, 포기도 빨랐다. 경기력도 좋지 못했다.

데뷔한 후에 부상도 당하고, 운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 했는데, 연습 경기에서 공중 경합을 하다가 수술 두 번했다. 축구를 그만할 생각으로 방황하고 있는데, 홍명보 선생님이 도와줬다. 2006년 도하 아시안 게임에 같이 가자고 했다. 믿음을 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줬다. 뼈가 완벽하게 붙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를 맞추고 일본으로 친선경기를 하러 떠났다. 그리고 바로 아시안 게임에 나갔다. 가장 어린 멤버였다. 가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웃음) 아! U-20 월드컵에도 (박)주영이형, (김)승용이형과 함께 나갔었다.

트레이드를 두 번 겪었다. 전북에서 전남으로 그리고 다시 전남에서 인천으로 왔다
전북에서 최강희 감독님의 기대에 못 미쳤다. 최 감독님은 면담을 많이 하는데, 언젠가는 불러서 “인환아. 왜 이리 축구가 안 느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정말 가슴이 아팠다. 잘 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2008년에 강민수 선수와 트레이드 됐다. 나는 몸만 갔다. (웃음) 전남에 가서는 축구에 흥미를 잃었다. 스치기만 해도 다쳐서 ‘3재가 아니라 6재인가?’라는 생각도 했다. (웃음) 그러다가 2010년에 축구가 좀 재미있어 졌고, 더 열심히 하게 됐다. 그리고 2011년에 허정무 감독님이 인천에서 다시 불렀다. 나를 만들어준 분이었기에 믿고 갔다.

인천으로 이적한 후에도 첫 해에는 욕도 많이 먹었는데
막상 인천에 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비난을 많이 받았다. (임)중용이형 번호인 20번을 받은 게 가장 컸다. 중용이형 후계자인 (안)재준이형과 트레이드된 것도 말이 많았는데, 초반에는 ‘정인환이 뭐라고’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그래도 허 감독님을 믿고 열심히 했다. 지금은 ‘팀에 남아달라’는 팬들도 많다. (웃음)

얼마 전 ‘오일 머니’를 뿌리치고 인천에 남아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표팀에 다녀왔는데 구단에서 일이 진행 중이었다. 그래도 내 의사를 물었는데, “명예를 지키고 싶다”라고 했다. 팀에서도 좋고, 대표팀에도 선발됐는데 흐름을 놓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돈이 얼마든 상관없었다. 다행히 팀에서 배려해줬다.

“성적 안 나와…굿이라도 해달라 했다”
인천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은 16경기 연속무패를 달리고 있지만, 전반기에는 참혹한 성적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안됐다. 잘했는데 비기고, 졌다. 어머니께 전화해서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굿이라고 해달라고 했다. 주장 첫 해에 이렇게 강등당하면 끝이라고 했다. 그래도 안되더라. 전반기가 끝나고는 모두 강등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폭행 사건에 무관중 징계까지 정말 일이 많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잘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기다 보니 어느새 8위와 승점 차이가 얼마 안 났다.

설기현, 김남일 같은 스타가 입단하며 기대를 많이 했었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나?
기대가 있었다. 처음에는 성적이 안 나오니까 솔직히 트러블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형들은 잘하라고 하고, 어린 선수들은 어린 선수대로 성적에 실망하고. 그러다가 (설)기현이형이 팀을 하나로 모으는 비결을 알려줬다. 켜피숍 같은 데서 대화를 많이 하라고 했다. 회식도 많이 하고, 사우나도 같이 가라고 했다. 2011년에는 회식이 한 번 밖에 없었다. 성적이 안 좋아도 자꾸 모여서 축구 이야기를 했다. 언젠가는 좋아질 거라고 했다. 서서히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후반기에 서울을 잡고 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들 진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겼다.

조금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다. 인천이 돌풍을 일으킨 원인으로 허정무 감독의 선수영입을 꼽는 이들도 있고, 김봉길 감독의 개혁을 이야기 하는 이들도 있다. 안에 있는 사람의 솔직한 평가는 어떤가?
밖에서는 허 감독님 욕도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안다.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선수는 없다. 허 감독님이 뽑은 선수들이 지금 맹활약하고 있고, 감독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김봉길 선생님이 잘 이끈 거라고 생각한다. 허 감독님이 계속 있었어도 좋은 성적이 나왔을 거다. 형들도 그렇게 이야기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인천은 늪에서 벗어났지만, 인천처럼 못 이기는 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래서 퀸즈파크레인저스(QPR) 경기는 새벽 3시에 해도 꼭 보고 잔다. QPR을 보면 올 시즌 초반 인천을 보는 것 같다. (웃음) 선수들도 괜찮고, 경기력도 최악이 아닌데 자꾸 진다.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지는 식이다. (Q:언제쯤 이길 것 같나? 운도 정말 안 좋은 것 같은데) 곧 이기지 않을까? 한 번 이기면 계속 이길 거다. 선수들이 좋지 않나? 안톤 퍼다난드도 운이 안 좋아서 그런 거다. 나도 그랬다. 그런 선수들이 좋아질 수 있다. 금방 국가대표가 될 것 같다. (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해보자. 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인천은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나?
지금은 행복하다. A그룹에 못 간 게 조금 아쉽다. 개인적인 목표는 거의 다 이뤘다. 그래도 쉬면 안 된다. 팬과 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힘들 때 같이 이겨냈으니까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 하고 싶다. 형들도 2012년을 잊지 못할 거라고 한다. 나도 그렇다. 가장 기억나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올해의 대표팀 경기도 끝났다. 내년 2월에 벌어지는 친선전에 소집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나?
항상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노력해야 한다. 베스트로 들어가도 베스트가 아니라고 생각하려 한다.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할 것 같다.

인터뷰= 류청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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