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토크] <48> 김재하 대구FC 단장,''축구만 하는 건 배부른 소리''
입력 : 2012.11.2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한때 잘 나가는 프로야구 단장이었다. 한국시리즈 우승 3회를 이끌며 삼성 라이온즈라는 구단을 한국 최고의 명문 구단 반열에 올려놓았다. 영화 ‘머니볼’로 주목 받은 빌리 빈 단장과는 전혀 다른 ‘현장-프런트 분리’ 정책을 고수하면서 많은 지도자, 야구인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직원으로 시작해 대기업 부사장까지 거치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연봉을 받은 그는 자타공인 성공 경영인이었다.

2010년 12월, 김재하 단장(59)은 과감히 헬멧을 벗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11년 동안 야구, 삼성의 발전을 위해 뛰었던 터라 이제는 자신과 가족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전화 한통을 받고 인생이 바뀌었다. 발신자는 김범일 대구시장(62). 대구FC 단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평소 같으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겠지만, 친구의 형이자 삼성 시절부터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던터라 “알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길로 호주·뉴질랜드 여행 계획을 접어 두고 2011년 2월 생소한 축구계에 입문했다.

- 김범일 시장의 권유로 대구 단장직을 맡게 되었다. 시장과의 통화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았나?
골 아파 죽겠다고 하시더라(웃음). 대구FC가 전년도 최하위를 하고, 구단 안팎으로 안 좋은 일도 있어서 시끄럽다고. 스포츠 단장을 오래 맡아 우승도 경험했으니 이 팀을 맡아 잘 이끌어달라고 하셨다. 친형 같은 분이라 거절할 수 없겠더라. 법적절차를 거쳐 2011년 2월 1일자로 대구 단장 자리에 앉았다.

- 기존 단장들이 타지역 출신인 반면 대구 토박이에다가 삼성을 맡으며 줄곧 대구에서만 지냈다. 처음부터 이사회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하던데.
이사회 멤버, 주주총회에 나선 시민들, 지역기업 인사들도 대부분 다 아는 분들이다. 그분들 입장에선 스포츠 전문 경영인으로 오랜기간 근무했고, 종전과는 다르게 이 지역에 오래있었기 때문에 반겼던 것 같다.

- 쉬지 못하고 또 일을 하게 되었다.
1972년 10월 제일모직 대구공장에 입사해 38년을 삼성맨으로 지냈다. 임원 15년, 단장만 11년을 했다. 승부와 관련된 스포츠 분야다보니 그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퇴임을 하면 기업에서 2년간 자문역으로 예우를 해주기 때문에 대우를 받으면서 3~4월 호주-뉴질랜드, 7~8월 유럽 여행을 가려고 준비를 했다. 여행 계획은 무기한 연기다(웃음).

- 대구FC를 맡고 처음 든 생각은?
대구가 자존심이 센 도시다. 2년 연속 꼴지를 한 터라 시민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감독이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일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연루되기도 했다. 작년에는 팀 복구에 초점을 맞췄고 올해부터는 시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내년에는 한 단계 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김재하 단장은 ‘야구붐’에 기여한 대표 인물이다. 야구계 최장수 기간인 11년 동안 삼성 단장직을 맡아 구단의 성장과 함께 야구판의 확장을 이끌었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2 한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축구붐을 일으킨 축구에 밀려 머리를 쥐어짠 적도 있고, 구단 운영 과정에서 팬과 마찰을 빚은 적도 있다.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에 지금 축구계를 감싼 고질적인 문제가 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다.

- 부임 초기 축구와 관련해서 말하기를 꺼려했다.
축구에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스포츠 분야에 오래 있었다고 해도 축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게 옳지 않다고 봤다. (Q. 지금은?) 조금 아는 정도다. 아직도 멀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좋은 경기를 하고 많은 관중을 불러 모으기 위해선 야구계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스스로 한 구단의 단장이자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로서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현재 흥행면에서 야구계가 축구계를 앞질렀다. 이를 바라보는 축구팬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지금 한국프로야구는 광주, 대구에 전용구장이 마련되면 1,000만 시대를 능가한다. 2004~2005년까지만 해도 200만에 불과했다. 1,000만 관중은 인프라 구축, 북경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이 조화를 이루고 팬 중시 마케팅 정책, 중계권 확보와 같은 각 구단의 보이지 않는 노력의 결과다.

내가 삼성에 있을 때 우리 홈 개막전을 다른 경기장에서 한 적이 있다. 그곳 관중이 더 많고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끼리 힘을 합치는 것도 중요하다. 좋은 선수를 보유하고 우승하는 게 모든 구단의 목표겠지만, “축구판 한번 키워보자”는 식의 동업자 정신이 있어야 축구계도 발전한다.

그런 면에서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의 기운을 잇지 못한 건 아쉽다. 64년 만에 처음으로 딴 올림픽 축구 메달 아닌가. 2002 한일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하늘이 주신 기회다. 구단, 연맹, 협회에서 활용을 잘 못한 부분이 있다.

- TV 중계에 대한 말들이 많다
야구 때문에 축구 중계권을 못 딴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전에 야구도 중계를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때가 있었다. 요새 TV의 중계 채널이 얼마나 많나. 꼭 메인 스포츠 방송이 아니더라도 다른 일반 및 케이블 방송국과 협의를 통해 2시간 중계를 따면 된다.

- 관중 유입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할까?
축구만 해서 관중을 불러들이는 건 너무 배부른 소리다. 경기력, 마케팅, 인프라 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투자 없이 결실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 대구도 진정성을 갖고 팬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매년 더 좋아지기를 기대하면서 3~5년 계획을 세웠다. 재능기부, 유소년 정책, 마케팅 등 노력이 쌓이고 쌓이다보면 언젠가 K리그도 흥하고, 우리도 FC바르셀로나 같은 구단이 되지 않겠나?(웃음)



김재하 단장은 2009, 2010년 최하위에 머문 대구를 맡아 2011년 12위, 2012년은 10위(41라운드 현재)로 만들었다. 구단 성적과 함께 마케팅 수완도 발휘해 올해 대구 경기장에는 평균 1만명이 찾아와 뜨거운 열기를 뿜었다. 과감한 감독 교체, 철두철미한 경영 방식, 현장-프런트의 완벽 조화 등 경험 없는 신인 구단에 베테랑의 색깔을 입혔다. 그러나 이런 활약에도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스스로 진단하고 있다.

- 삼성이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올해 스플릿B에 머문 대구FC와는 차이가 나는 행보다.
올 시즌 삼성이 우승한 건 이승엽 등 좋은 전력을 갖춘 것과 현장-프런트간 팀웍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삼성 야구단 취재를 가보면 알겠지만 직원, 선수 모두 개개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다. 자기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내가 그런 시스템을 갖춰 놨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성적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성적이 안 좋은 구단은 불협화음이 심하다. 대구도 이제 발전의 길을 걷고 있다. 계속해서 좋아질 것이다.

- 삼성은 대기업을 등에 업은 부자 구단이다. 반면 대구FC는 16개 구단 중하위권에 머문 가난한 구단이다.
삼성에서도 물론 팬 확충을 위해 신경 썼지만, 근본적으로 그룹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 여기 와보니 너무 절박하다. 일부 도시민 구단은 직원의 급여가 체불될 정도다. 우리도 빠듯한 살림살이를 한다. 당장 이 재정규모를 늘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시민 후원금, 스폰서를 얻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 구단 운영의 투명성, 진정성도 계속해서 보여줘야 한다. 돈이 없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강등되고 없어진다.

- 부임 후 직원들의 사기가 몰라보게 높아졌다. 특별한 비결이 있나?
전시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은 과감히 줄여야 한다. 반면 직원 사기, 동기부여 이런 부분에 대해선 과감히 투자를 해야 한다. 전임 사장은 어떤 기획을 내면 재정 때문에 하면 안 된다는 게 80~90%였다고 한다. 처음 부임하고 방향은 내가 잡아주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테니, 부정-횡령을 하지 않는 선에서 마음껏 일하라고 했다. 또 남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의심하는 문화를 없애려고 노력했다. 국장, 직원, 감독, 선수가 ‘1당 150‘을 하게 만들어야 최고의 조직이 되는 것이다. 잘되는 집안에는 말이 없다는데, 대구가 2년째 조용한 걸 보면 한 방향으로 잘 나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언제쯤 대구FC가 삼성과 같은 명문구단으로 자리를 잡을까?
삼성도 굉장히 오랜 기간 노력으로 이루어진 클럽이다. 대구는 이제 10년 됐다. 갈 길이 멀다. 올해 U-15팀 운영을 시작했다. 유소년 클럽이 정착하여 박주영과 같은 선수를 키우려면 시간이 걸린다. 프로팀의 기본인 클럽하우스, 전용구장과 같은 인프라도 갖춰져야 한다. 할 일이 정말 많다(웃음). 일단 내년에 돌풍을 일으키고 난 다음 구단주인 시장님께 요구해야 할 것 같다. 열심히 하는데 안 될 게 있겠나.

인터뷰=윤진만 기자
사진=이연수·윤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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