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김'대호'씨와 연기, 다시하라면 못하죠''(인터뷰)
입력 : 2015.12.1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김현록 기자]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지난해 '명량'의 이순신 장군으로 1761만 관객을 불러모은 최민식(53)이 일제시대 이야기를 한다 했을 때, 속으로는 '어게인 '명량''이로구나' 했다. 힘겨웠던 일제시대, 민족감정에 다시 기대 다시 마음에 불을 댕기는 작품이 또 나오겠구나 지레 짐작했던 거다. 그러나 드디어 공개된 '대호'(감독 박훈정·제작 사나이픽쳐스)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다. 영화 속 최민식 역시 알량한 기대와 달랐다.

영화의 배경은 호랑이 가죽에 홀린 일본 장군이 산군(山君)으로 불리는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를 잡겠다며 포수대를 산으로 내몰던 1925년. 최민식은 총을 내려놓고 어린 아들과 홀로 사는 포수 천만덕으로 분했다. 그는 영웅 이순신과는 거리가 먼 무지랭이 포수이자, 일본의 지배를 묵묵히 견디는 평범한 민초다. 다만 평생을 산에서 살며 터득한 대로 산군에겐 총을 겨누지 않아야 한다 믿을 뿐이다. 하지만 그도, 호랑이도 결국엔 알게 된다. 마지막 순간 마주해야 할 이들이 서로라는 것을.

'명량' 이후 1년이 훨씬 지났건만, 최민식은 이순신 이야기만 나오면 "장군님"이라며 황송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저 순리를 따를 뿐인 사연 많은 포수 천만덕에게는 깊이 다가가 공감한 모습이었다. 그는 100% CG로 탄생한 호랑이와 연기하느라 허공에 대고 열연해야 했던 지난날을 두고 "다시 하라면 못한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천만덕의 마음은 더 따져들 필요 없이 그저 이해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의 마지막 선택에도 500% 공감하고 동의할 할 수 있다고. 왜 영화 속 그가 최민식이자, 천만덕이자, '대호' 그 자체이기도 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는 잘 봤나. 호평이 많더라.

▶다행이다. 긴 영화다. 이런 영화도 있는 법이다. 트렌드를 쫓기보다 긴 호흡으로 느릿하게 가는 영화도 있는 거다. 저는 도리어 너무 빠르다고 느꼈다. 좀 급하다.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게 우리도 영화에 시간을 정해놓지 말고 3시간짜리 영화도 만들고, 중간에 쉬는 시간도 만들고 하자는 거다. 이해는 하지만 정해진 시스템, 프레임에 모든 걸 집어넣는 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좀 답답하다. 문화상품이 획일적 기준에 부합할 수는 없다. 영화란 매체가 대중을 간과하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창작하는 사람이 주관을 포기해선 안 된다.

-'대호'는 그 조율이 잘 된 편일까.

▶제작자나 감독이 왜 의식을 안 하겠나. 저는 계속 '주관' 쪽을 펌프질하는 쪽이었다. 누군가는 야당이 돼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자연에 대한 생각, 가치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그건 산에 대한 예의, 도리인 것 같다. 미물이라도 함부로 잡아선 안 되고, 필요한 만큼만 잡아야 한다는 건 우리의 고유 가치관이었다. 불교 신자인 저희 어머니가 절에 갈 때 저는 초며 쌀, 과일을 지고 따라가곤 했는데, 산이라 해도 싸는 것도 아무 데나 못 싸게 했을 정도다. 함부로 하지 말라는 그런 보편적 가치가 착취, 억압으로 대변되는 암울한 시기와 잘 대비됐다고 본다.

-왜군에 맞서 싸운 '명량'과는 다르더라.

▶보시면 알겠지만 일제 침략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없다. '왜놈들 세상이 왔구나' 하고 살아가는 민초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가치관이 일본 장군 마에조노(오스기 렌 분)나 복수심에 불타는 다른 포수 구경(정만식 분)과 자연스럽게 대비를 이룰 뿐 항일과 연결되지 않는다. 저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산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이 그렇게 정치적인 생각이었겠나. 물론 보시는 관점에 따라 범을 민족정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사람이 생각하는 범은 신성하고 영험하며 때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한 절대적 존재였다. 그래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게 천만덕의 가치관이자 세계관이었다. 한평생 포수로 살며 터득한 순리다. 그는 자신에게 닥친 비극도 총을 쏴 가며 살아온 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도 수모를 당하느니 사라지자는 비장함이 있다.

-이순신과 천만덕, 어느 쪽이 본인과 가깝고 몰입하기 쉽던가.

▶장군님 이야기는 좀 안 해주셨으면 좋겠다. 제대한 지 좀 됐다. 이제 예비역이다.(웃음) 장군님 경우는 감히 저와 공통분모를 어찌 찾겠나. 억지다. 천만덕이 더 가까울 것이다. 얼굴 팔린 배우라는 직업을 빼면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술 좋아하고 그런. 어려서부터 불교적 사고방식에서 자라나서 그런지 그의 생각이 대번에 이해가 됐다. 불교에서 최고로 치는 것이 업을 소멸하는 것이다. 진정한 해탈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결말로 맺어지는 천만덕의 마지막 행위에 500% 공감하고 동의한다.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대호'의 배우 최민식 /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보이지 않는 호랑이를 마주하며 연기하는 건 어땠나. 대호와 최민식이 닮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제가 그렇게 이상하게 생겼나.(웃음) 참 답답하고 막막하고, 나중에는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뭐 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도 들더라. 연기하고 나니 어처구니가 없는 거다. 하지만 낯설고 어색해도 극복해야 하지 않겠나. 실재가 없는 어색함을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 각자 알아서 극복해야 했다. 상상 속으로 '컷' 하먼 쟤도 저리 가서 물 먹고 올 것 같다고 상상하며 '김대호'라고 이름도 짓고, '김대호 인마, 왜 스탠바이 안 해' 해 가면서 찍었다. 독특한 경험이었다.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너무 외롭다.

-완성된 모습을 보니 흐뭇하던가.

▶특수효과팀 '포스'를 무시해서가 아니다. 왜 안 불안했겠나. 하지만 영화를 보고 정말 박수를 쳐 주고 싶었다. '대호'가 개봉해 잘 된다면 전적으로 그 분들의 공이다. 대호가 이상했어 봐라, 감정이입이 되겠나. 흥행을 떠나 우리 CG 팀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진짜 (손뼉을 짝짝짝 치며) 이거다. 제가 속으로 그렸던 호랑이가 더 잘생기긴 했다.(웃음)

-특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고생 많이 한 게 가장 애착이 가더라. 산 올라가다 건 죽는 줄 알았다. 세상에, 지금 생각해도 웃음밖에 안 나온다. 그게 만든 산이다. 어디 휴게소 옆에 만들어 놨더라. '어디서 산을 퍼왔냐' 했다. 굉장한 높이에 진짜 바위도 놓고 하루 종일 찍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만 스턴트 하는 친구가 했는데 선수라 잘 하니까 너무 매끄럽더라. 그 소리를 했다가 '형이 하시게?' 이렇게 됐다.(웃음) 본편에선 제 장면과 스턴트를 섞은 것 같다.

-아들 석이로 나오는 성유빈과의 케미가 좋다.

▶사실은 딸이었으면 했다. 그러면 포수대 간다는 소리도 안 하고 나도 더 챙겨주지 않았겠나. 제안은 했는데 안 들어주더라.(웃음) (성유빈은) 이놈은 어르신 같았다. 말도 느릿느릿하고 밥은 또 얼마나 느리게 먹는지. 다들 먹고 걔 밥 먹는 걸 보고 있으면 '먼저들 일어나세유' 그런다. 그런데 그 친구는 느린 게 장점이었다. 저나 감독과 촬영 전 맞춰보면서 해준 이야기가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면 '멘붕'이 온다. 그리고 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단 모드 전환이 되면 굉장히 깊다는 게 느껴졌다. 표피적으로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깊은 곳에서 정서가 바뀌어야 애가 바뀌더라. 그게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대호' 촬영 중에 있었던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작품보다 흥행을 생각하는 자신을 반성한다는 이야기가 회자됐다.

▶못 살아요, 그거 신경쓰면. 그런데 어떤 놈이 자기가 출연하고 연출한 영화에 손님이 안 들길 바라겠냐. 100% 안 쓴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게 기준이 돼선 안된다. 인생 피곤해지는 거다. 방관하고 무책임해지자는 게 아니라, 우리 손을 떠났다는 거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영화가 안 좋으면 관객이 안 온다. 관객 수에 부화뇌동 해봤자 허탈해진다. 그게 얼마나 허망한 건지 안다. 만드는 재미에 취해 살아야지 관객 수에 취해 살면 안 된다고 말하면 내가 너무 가식적인가? 어쨌든 그리 되어야 한다. 관객 수에 매달리면 관객의 취향이나 트렌드를 조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면 기획영화만 나온다. 그렇다고 돈 낸 사람들에게 '니들이 예술을 알아' 하는 것도 오만방자하다. 자본의 논리와 창작의 논리를 얼마나 조화롭게 끌고 나가느냐가 중요하다. 투자자에게 경제적 이득을 돌려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런 작품에 투자했다'는 뿌듯함을 선사하는 것도 우리의 의무인 것 같다.






김현록 기자 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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