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택의 대담] '샤이니 민호 아빠', 아니 '강원 최보스'가 온다②
입력 : 2015.04.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강릉] '대담(對談) : [대ː담] [명사] 마주 대하고 말함, 또는 그런 말'. 숨 가삐 달려오느라 놓쳤던, 어디에 쉬이 털어놓을 수도 없었던, 그래서 세상 아래 조용히 묻혀 있었던 이야기들 [홍의택의 대담]에서 풀어냅니다.

[1편에 이어서 계속(다시보기 클릭)]

최윤겸 강원 감독이 '축구'를 말했다.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간 속살, 그곳에 '니폼니시 축구'가 있었다. 부천SK 코치 시절 니폼니시(니포) 감독 아래서 쌓아간 배움이 곧 철학의 초석이 됐다. 당장 공만 잘 차면 된다는 기술, 기능주의 시선에서 탈피해 축구에 대한 접근법 자체를 달리한 것. 성과만 바라보며 독촉하기보다는, 믿고 기다리는 데서 최윤겸표 축구를 시작했다.

축구라는 꺼풀을 벗겨냈다. 이번엔 '가족'이 나왔다. 성공 가도를 달린 대전을 나와 야인처럼 떠돌았던 지난날. 최 감독이 기댄 언덕에는 두 아들이 있었다. 서로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못 해 집사람을 통해 속마음을 확인하지만, 무엇보다도 든든한 버팀목이 됐음은 물론이다. 어쩌면 강원 부임은 단순히 축구 감독이 아닌, 한 가정의 가장으로 내민 도전장이기도 했다.



▲ 부천SK에서 활약했던 이들이 K리그판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자연스레 '니포 축구'도 떠올랐다. 당시 코치로 보필하면서 지켜본 니포 축구는 무엇이었나. 현재 패싱을 기반으로 한 아기자기한 축구 정도로 통용되기도 하는데, 정확한 개념은 뭘까.

"내가 느낀 니포 축구는 감독님 모습 그 자체이지, 패싱과 같은 축구 전술이 아니다. 그분은 선수들을 욕하고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대신, 끝까지 기다려주셨다. 그러면서 고통은 혼자 다 끌어안으신 거다. 이겼으면 선수들 입장에서 '애썼다', '잘했다'고 했고. 지면 '우리 선수들은 잘했고, 내가 잘못했다'는 식이다. 최근에 보니 김봉길 전 인천 감독 인터뷰가 감독님과 비슷하더라."

▲ 가끔 필요 이상으로 팀의 짐을 짊어지려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형편없는 경기가 감독만의 책임이 아닐 수 있음에도, 화살을 피하기는 어렵다. 월드컵 4강 진출 등 기적적인 성과가 나오면서부터일까. 감독을 마법 부리는 절대적인 존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그게 우리 운명이다. 선수들이 경기 지고 나서 뉴스를 안 볼 것 같나. 다 본다. 그때 감독의 마음이 전해지는 거다. 지난 대구전에서 실수한 우리 팀 박용호도 마찬가지다. '용호가 좀 침착했다면···.'이라고 말하면 그 친구가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게 되는 거다. 니포 감독은 그런 말씀을 절대 하지 않으셨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감독을 믿고, 따라오더라. '저분은 우리가 믿으니까 저런 축구를 해도 된다'면서 말이다. 그때부터는 산을 뛰게 하든 말든, 훈련 프로그램을 어떻게 짜든 상관없을 정도로 끈끈해진다."

▲ 경기를 풀어가는 측면에서도 접근해보고 싶다. '니포 축구'라는 한 울타리로 묶긴 했어도, 당시 멤버들이 현재 K리그 팀을 이끌면서 구사하는 축구는 각양각색이다. 상대방 골문에 접근하는 방식도, 경기 전체에 입힌 색깔도 모두 다르다.

"그러니까 짧은 패스만으로 니포 축구를 설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기자기한 패싱도 있지만, 이는 일부분일 뿐이다. 윤정환 울산 감독도 니포 감독님 밑에서 같이 축구를 배웠어도, 색깔은 완전히 다르지 않나. 축구 자체만 두고 보면 조성환 제주 감독의 모습이 가장 비슷하다. 그다음이 남기일 광주 감독이다. 윤정환은 맨 꼴찌다. 비슷하다고 표현도 못 한다(웃음)."

▲ 믿고 기다려준다는 스타일만으로 니포 시절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을 듯하다. 가령 특정 축구를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도 다른 법이고. 본인만의 축구를 구현하던 단계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는 없을까.

"우리가 생각하지 못 한 부분을 건드셨다. 가령 사이드 어태커를 보자. 당시만 해도 우리는 측면 자원에게 직선으로 움직이는 기찻길과 같은 움직임만 요구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안으로 치고 가서 슈팅까지 때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측면에서 수비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골도 넣고 오라'면서 색다르게 유도하신 거다. 물론 여기에 부합하는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선수 구성이 달랐다면, 패싱이 아닌 다른 축구를 선택하셨을 거다. 현재 김신욱이 있는 울산의 윤정환처럼 말이다."

▲ 말이 좋아 색다른 접근이지, 현실 속에선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정보 공유가 쉬운 시대도 아니었고. 똑같은 축구를 놓고도 다르게 다가서는 비결, 혹은 원동력이 있었을 텐데.

"항상 비디오를 갖고 다니셨다. 다 보고 나서 직접 풀어주셨다. 지금 우리 강원 선수들도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나보다는 선수들이 상대를 알고 있는 게 훨씬 효과가 좋다는 생각에서다. 선수들이 보고 난 뒤, 내가 설명하고, 선수들이 다시 보면서 터득하게 하는 거다. 감독도 공부하지만, 선수들도 공부하게끔 자연스럽게 습관을 만들어줘야 한다. 니포 감독님은 스스로 공부하게 하고, 대응 능력을 키우도록 해주셨다."



▲ 강원에서는 어떤 축구를 하려 하나. 부임 후 '패싱'을 언급한 적은 있지만, 부천전(4일, 4-0승) 초반만 해도 중앙선 한 번 넘기조차 버거웠다. 한창 안 풀렸을 때의 강원 경기력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과거 이을용처럼 구력 있는 미드필더가 부재한데, 패싱이 가능하겠는가.

"지금은 미드필드 플레이를 많이 줄였다. 강원에 올 때부터 미드필더 스쿼드가 부족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래서 손설민을 뽑게 된 거고. 그 외 다른 친구들도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가격이 잘 안 맞더라. 원래 중앙으로 좁혀서 하는 축구를 해왔다. 측면 애들도 한 단계 늦게 올려보내는 식인데, 이들 역시 측면으로 유도하고는 있다. 좁히는 것 7, 넓히는 것 3 정도로 했던 것을 이제는 5대 5로 하려 한다. 계속 맞춰가는 중이다."

▲ 외국인 선수는 벨루소 하나를 보고 가는 건가. 대전에서 썼던 성공 역사에서도 외국인 선수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강원도 마찬가지. 창단해 돌풍 때에는 마사히로가 활력을 불어넣었고, 극적으로 1부리그에 생존했던 2012년에는 지쿠가 중원을 창조했다.

"슈바, 데닐손, 알리송, 브라질리아까지. 대전에 오는 외국인 선수마다 사고를 쳤다. 강원에는 너무 늦게 합류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 없었다. 미드필더가 생각만큼 구축이 안 돼 오히려 센터포워드로 쓸 외국인 선수를 원하게 됐다. 동계 전지훈련 동안 좋은 모습을 보인 최승인이 있었기에 외국인 선수도 크게 걱정이 없었는데, 이 선수가 갑자기 부상을 당해버리면서 (외국인 선수가) 조금 급해졌다."

▲ 미드필더를 못 뽑은 대신, 최전방에 무게를 둔다는 건 어떤 상관성을 가질까. 볼을 나를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마침표도 찍을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사고인데. 그만큼 앞에서 공격하는 시간을 늘려 수비 부담도 줄이겠다는 의미인가.

"공격이 약하면 그 하중이 계속 수비 쪽으로 떨어지게 된다. 작년 대전에도 아드리아노가 있으니 상대가 무서워 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개막전 상주전(3-1패)은 어땠나. 위에서 컨트롤을 못 하자, 상대는 중앙선을 맘껏 넘나들었다. 괜찮은 외국인 선수만 있다면 나머지 선수들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면서 '지고 들어간다. 우리가 조금 숙이고 들어간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직 우리 선수들이 굉장히 착하다. 안에 갖고 있는 게 소심하면 밖으로 표출되는 게 약할 수 있다."

▲ 그 문제는 팀 내력처럼 전해져왔다. 김학범 전 강원 감독이 선수단을 강하게 다스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소위 '엉덩이를 못 빼는 경기', 즉 주눅이 들어 물러서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극했다. 그렇게 공을 차온 게 습관이 됐는데 당장 고쳐질 수 있을까.

"상주전, 대구전(2-1패)을 지고도 똑같이 얘기했다. '난 여러분 기다려. 뭐라고 하지도 않고, 욕도 안 해. 내가 너희들 변화시키는 건 힘드니까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없어. 편하게 해. 실수도 자신 있게 해'라고 부탁했다. 그런 부분들을 고쳐나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요즘 정식 리그 외 연습 게임을 많이 잡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전을 통해 몸으로 익히게 하려고 한다."

▲ 결국엔 시간이다. 민감한 얘기 또 하나 던져보고 싶다. 시도민구단 감독 교체 주기는 이미 세상에 다 알려진 객관적인 사실 아닌가. 강원에서는 최순호 감독이 3년째 되던 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게 전부. 그 이후엔 모두 수명이 짧았다. 1년을 못 채운 감독도 있고. 철학을 모두 펼쳐 보일 만큼의 여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성적이 안 좋으면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내가 그리 훌륭한 것도 아니고, 요술 부리는 사람도 아니기에 한계는 있다. 다칠 수도 있다. 그래도 선수들을 기다리면서 올라오게끔 할 계획이다. 내가 나간 다음 한 명이라도 '아, 그래도 그때 그 감독이 좋은 축구를 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걸로도 만족한다. 선수들도 나중에 은퇴한 뒤 지도자가 될 텐데, 윽박지르는 것만이 정답은 아님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다."

▲ 그동안 갓 프로에 진출한 어린 선수들을 직접 지켜봤고, 얘기로 들어왔다. 감독 성품이 너그러울 경우 더러 만만하게 보는 습성들도 있더라. 존중해주고, 편하게 해주면서 그만큼 축구에 집중하기를 바랐던 감독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강하게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무엇이 맞다고 할 수 없지만, 이게 내 방식이다. 선수들이 느끼기에도 '저 감독 너무 순하게 해서 안 되겠더라. 내가 지도자가 되면 더 강하게 해야겠다'고 할 수도 있고, 나처럼 '축구는 기다리면서 해야 된다. 터득하게 해줘야 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런 장단점이 있지 않을까(웃음)."



▲ 2000년대 K리그를 지켜보지 않은 세대들에겐 '최윤겸 감독'보다는 그냥 '아이돌 그룹 샤이니 민호 아빠'일 수 있다. 예전과 달리 아들의 후광이 붙는 것도 사실이다.

"K리그 복귀를 간절히 원했던 건 우리 두 아들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사건이 터졌을 때, 공교롭게 큰 애가 고3 나이었고 자연히 재수를 하게 됐다. 작은 애는 가수로서 막 데뷔하던 시기다. 부모로서 정말 미안했다. 내가 강원에서 성공하게 될지, 실패하게 될지는 몰라도 한 번 정도는 복귀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아직 대전에 사시는 부모님에게도 그렇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다."

▲ 가장으로서 지니는 책임감도 컸을 것이다. 두 아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지게 된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자식들이 각자 위치에서 곧바르게 성장한 것으로 안다.

"자랑이 될 수도 있는데. 큰놈은 계속 장학생이었고, 작은놈은 돈을 써야 할 시기에 서울서 숙소 생활하며 숙식을 무료로 해결했다. 부담이 덜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내가 한 번 도움 줄 시기가 아닌가 싶다. '전' 축구 감독 아빠보다는 '현' 강원FC 감독이라고 얘기하면 더 좋지 않겠나. 민호가 자기 엄마한테도 '아빠가 감독 돼서 언론에 나오고 하니 정말 좋다. 힘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고 하더라."

▲ 직접 말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어머니를 거치나.

"우리 부자는 그런 간지러운 얘기들 절대 못 한다.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 부천전에서 거둔 시즌 첫 승은 둘째 아들 민호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을 것 같다. 홈 개막전이라 방문 및 공연을 기대한 팬들도 있었으나, 아쉽게 오지는 못 했다.

"신곡 발표 준비 등으로 일정이 안 맞아 그전에 클럽하우스에만 잠깐 왔다 갔다(민호는 아버지 최윤겸 감독을 위해 홍보 영상까지 촬영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부천전 중간 중간에 자기 엄마한테 계속 연락하면서 '어떻게 되어가느냐'며 물어봤다고 했다. '응원 오고 싶었는데 못 왔다'고 하면서 음악 방송(MBC <쇼! 음악중심>)을 준비하는 시간에도 계속 휴대폰으로 경기 상황을 지켜봤다고 하더라."

▲ 노래 방송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담이지만, 아들이 속한 그룹 샤이니 노래는 알고 있나.

"제목은 다 안다. <누난 너무 예뻐>부터 <링동댕>? (<링딩동> 말하는 건가). 맞다 그거다(웃음). 일단 내가 노래를 잘 못 부르고, 흥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얘들 노래는 따라갈 수도 없더라. 다섯 명이 부르는 걸 도저히 흉내도 못 내겠더라(웃음)."

▲ 민호가 축구 팬들에게 익숙한 건 명절 때마다 TV에 공 차는 모습이 방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진지하게 감독 입장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팬들 사이에서 줄곧 회자되는 세레머니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말해달라.

"TV에서 나와 하는 거 보면 그냥 애들 수준에서 조금 한다는 정도? 선수들 사이에 끼면 되겠는가. '잘하려 하지 말고, 즐겨라. 열심히 해라'라고 한다. 그래도 센터포워드를 보면서 골도 넣으니 기분은 좋았다. 축구인 아들이 아버지 피를 물려받아 잘한다는 말도 들었고. 걔는 그런 쇼맨십이 있다. 축구를 원체 좋아해 골 들어가는 영상, 기사를 관심 있게 보더니 언제부턴가 호날두를 따라 한다."

▲ 그렇게 축구를 좋아했는데, 아예 이 분야에 전문적으로 몸담게 할 생각은 없었나.

"큰아들은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동아리처럼 뛰면서 U리그를 경험했고, 작은 애는 웬만한 선수나 연봉은 다 안다. 그 정도로 두 아들 모두 운동을 굉장히 원했다. 그럼에도 축구인의 삶이 피곤해 반대했다. 자기 시간도 없는 게 싫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수가 돼 1년에 몇 번 만나지도 못 하는 둘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참 안쓰럽다."


대전에서 '기적의 2003년' 만들었던 주인공은 또 다른 기적을 준비하고 있었다. 요란한 무언가 대신, 그저 선수들을 독려하고 기다리는 것.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는 말 마디마디가 곧 최윤겸표 축구였다. '샤이니 민호 아빠'가 아닌, '강원 최보스'의 등장도 여기에서 시작했다.

"야, 우리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얼마나 행복하냐. 어쩔 수 없이 운동 그만둔 애들도 많은데, 너희는 지금 여기서 돈 받고 유니폼 입고 뛰잖냐. 열심히 해서 클래식 올라가자. 아니, 더 잘하는 애들은 손흥민처럼 분데스리가라도 가라. 감독은 선수들이 만들어주는 거니까 나도 우수한 감독 만들어주고 해라. 충분히 가능성들 있다. 지금 하고 있으니 길이 열려 있는 거다."

4일 부천전에서 4-0 완승을 거두며 시즌 첫 승을 신고한 강원은 11일 경남전(FA컵)을 2-1로 이기며 기세를 탔다. 오늘(15일) 저녁 7시 속초종합운동장에서는 고양을 맞아 3연승에 도전한다.


글=홍의택
사진=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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